방어기제 5 : 나르시시즘
Hey you
뭘 보니? 내가 좀 Sexy Sexy 반했니
Ye you
뭐 하니? 너도 내 Kiss Kiss 원하니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미모가 쉬지를 않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부셔 빛이 나네
Oh 저기 언니야들 내 Fashion을 따라 하네
아름다운 여자의 하루는 다 아름답네
-(여자)아이들, Queencard 가사 중
몇 달째 자기애와 자존감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들이 차트를 석권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이 가진 매력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가사가 인기에 한몫을 하는 듯하다. 소위 ‘자뻑'하는 가사를 들으면 오그라들면서도 괜히 더 당당해지는 기분이 든다.
자기애가 높은 사람을 흔히 나르시시스트라고 말한다.
자기애가 담긴 노래는 인기가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기애의 상징인 ‘나르시시스트', '나르시시즘'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멋있지 않다. 왜 그럴까? 나르시시즘이 담긴 노래는 좋아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싫다니.
잘못된 자기애를 가진 나르시시스트들이 '나르시시즘'에 대한 인식을 망쳐놨다고 본다. 이들은 곧 자기애를 방어기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나르시시즘 자체는 성격 결함이나 정신 질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나르시시즘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성향이다. 오히려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곤 한다. 종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이유도, 나만의 영혼의 단짝을 찾고 싶어 하는 소망도 모두 자기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자기애 혹은 자뻑은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건강한 자기애와 잘못된 (방어적) 자기애는 무엇이 다를까? 나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지 아니면 방어기제로 자신을 속이고 있는지 사례들을 통해 알아보자.
금수저임을 호소하는 A군
A군은 어딜 가나 눈에 띈다.
좋은 차, 좋은 시계 게다가 (자주 바뀌는) 아름다운 여자친구까지. 언뜻 젊은 나이에 크게 성공한 사업가처럼 보이지만 A군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A군은 좋은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외동아들로,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는 회사는 취미로 다니고 곧 가업을 승계받을 다이아몬드 수저로 소문이 나있다(이 모든 소문은 A군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주말마다 그림을 사러 전시회를 간다는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명품 중에서도 희귀한 아이템들을 착장 한 사진이 프로필 사진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실상은 이번 달에도 카드값이 연체되어 카드사 독촉 연락들이 쌓여있다. 곧 대부분의 신용 카드는 정지 상태가 될 예정이다.
A군은 왜 이렇게 가짜 인생을 살게 된 걸까?
애써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
#나르시시스트 #SNS중독 #허세
나르시시즘에도 정도에 따라 스펙트럼과 다양한 유형이 있다. 이 중 A군과 같이 '나는 남들과는 달라'라는 거만함이 느껴지는 나르시시스트들을 외현적,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라고 한다.
외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나르시시스트로 온갖 소동을 일으키는 장본인이다. 이들은 허영심이 많고 눈에 잘 띈다. 재산을 과시하고, 매 순간 주목받으려고 애쓰고, 직장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무자비하게 자리다툼을 벌인다. 이렇게 외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은 부, 성공, 인기, 교양, 성적 매력 등에서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고 과시하는 사람들이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또한 남보다 자신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본능적으로 비판을 두려워해서 사람들을 피하고 자기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꺼린다. 이런 사람들은 겉보기에 소심하고 조심성이 많아서 전혀 나르시시스트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대다수의 사람들과 기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알아주길 '거부하는' 세상을 원망하며 분노에 차있다.
'자기애' 방어기제를 만든 내면아이
건강하지 못한 나르시시스트들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 이들에게 '허세'와 '포장'은 사랑받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된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인정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외현적 나르시시스트의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리고 자녀의 성취를 부풀리곤 한다. 모든 게 아들딸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만, 그들에게 완벽하고 특별하고 재능 있는 아들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자녀들은 자신을 부풀려야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학습한다. 잘못된 나르시시즘이 그들에게는 사랑받는 방법 그 이상으로 버림이나 부정당하지 않는 '생존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과 고충을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아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 만약 진실을 고백하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이 겪는 모든 고통스러운 감정 중에 '수치심'이야말로 가장 괴롭고 견디기 힘든 감정일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무의식적인 수치심에 대한 일차적인 방어기제다. 자신이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굳이 스스로 떠들지 않고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늘 뭔가를 증명해 보이려 애쓴다. 자신을 부러워하게끔 애쓰면서도 어딘가에는 자신이나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수치심 가득한 추악한 자아가 있다. 수치심에 시달리는 사람은 내면의 손상을 의식하지 않고 부정하기 위해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초자아)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렇게 애써서 포장을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최악의 남자만 만나는 B양
B양의 별명은 쓰레기컬렉터다.
전 남자친구는 바람둥이였는데 이번에는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 남자다. 역사적으로 B양은 어느 것 하나도 그녀보다 나은 점이 없는 남자들만 만나왔다. 친구들은 '네가 부족한 게 뭐가 있다고 쓰레기들만 만나냐', '똥차 그만 만나고 이제는 벤츠 좀 만나라' 등 B양을 연애를 말리지만 B양은 이런 '쓰레기' 유형의 남자들을 끊지 못한다.
B양 자신조차 왜 매번 이런 나쁜 남자들에게만 끌리는지 의문이다. 분명 이런 연애가 행복하지 않은데 반복되는 연애 패턴에는 자신의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책을 하지만 오늘도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준비한다.
수치심을 동정심으로 위장한 사람들
#에코이스트 #쓰레기컬렉터
나르시시스트와 상반되는 에코이스트들이 있다.
이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특별히 사람들을 잘 보살피고 잘 이해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믿으면서, 관심을 받는 쪽이 아니라 관심을 주는 쪽을서 자신의 위치를 귀하게 여긴다. 즉, 동정심을 느끼고 실현하는 모습을 통해 자존감을 챙기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에코이스트의 부모들은 자녀가 자부심이나 꿈이나 성취감을 갖지 못하게 방해한다. 이들의 자녀들은 자신이 욕구를 갖는 데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며 성장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욕구를 증오하고, 욕구를 사람들의 삶을 파괴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마음'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렇게 에코이스트들은 내면 깊숙이 자신의 욕구를 부정당한 수치심을 안고 살아간다.
에코이스트의 부모 특히 어머니가 자녀를 방해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현실'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을 심는 경우다. 예를 들어 화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왜 그렇게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냐, 네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쓸모 있는 일을 해야 한다'라며 자신의 꿈이 부정당하다 못해 해로운 일이라고 학습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해 잘못 학습한 에코이스트들은 자신이 흠이 있고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자신을 비하하거나 평가절하함으로써 수치심을 '확증'해주는 사람과 모욕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나아가 자기 대신 수치심을 떠맡을 자존감 낮은 상대를 찾아 나선다. 수치심 가득한 흠 있는 자아를 상대에게 투사한다. 그러면 그 상대는 승자-패자 관계에서 열등한 쪽이 된다. 우월한 쪽이 자기혐오를 품고 표출하는 방식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신에 상대가 나약하고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면 비웃으며 경멸감을 드러낸다.
자기애 방어기제
해체하기
사람은 누구나 자기애를 가지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기애적인 모습이 방어기제로부터 기인했는지를 자가질문을 통해 확인해 보자.
Q. 순간적으로 굴욕감이 확 느껴졌던 때를 떠올려보자. 얼굴과 두피가 갑자기 불쾌하게 화끈거렸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버렸거나 아니면 상대와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몸에 나타나는 이런 징후는 수치심을 드러낸다.
Q.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존재만으로 당신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있는가? 그들의 어떤 점 때문에 이런 기분을 느끼는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깊은 열등감 나아가 수치심을 느꼈던 원인의 요소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갖고 있더라도 표면적으로만 취한) 그들은 가지고 있는 점을 본능적으로 내면아이는 발견해 낸다.
Q. 파티와 같은 사교 모임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당신이 자기소개를 어떻게 하는지 주의를 기울여보라.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정도를 넘어서 당신 인생을 실제보다 더 멋있게 포장하려고 든다면 진실을 창피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나아가 건강한 자기애를 갖기 위해서는 건강한 나르시시스트들이 부모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이들은 마음 깊숙이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고 있었다. 장래에 관한 다양한 계획을 세웠지만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은 늘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다시 떠올리곤 했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건강한 나르시시스트의 부모들은 자녀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게 해 주고 그렇지만 반드시 자녀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음을 느끼게 해 줬다. 또한 이들은 부모와 고민을 나누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 부모가 자녀 인생에 직접 개입하려고 하기보다는 힘든 마음을 이해해 주는 든든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끔 부모도 실수를 했다. 하지만 절대로 자녀로 하여금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는 기분이 들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안정된 사랑을 받으면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기 훨씬 쉽고, 있는 그대로 자기 모습을 좀 더 자유롭게 나눌 수 있다. 원대한 꿈을 갖도록 권장하되 강요하지 않고, 사랑과 친밀함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가정. 이것이 바로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만드는 방법이다.
나르시시즘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죽음을 택한 오만한 젊은 남성의 최후'로 알려져 있는 나르키소스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이 시대에는 오히려 이러한 나르시시즘이 필요해 보인다(단, 방어적인 자기애를 해체한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의미함).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렌즈를 끼고 살아간다. 살아온 경험에 따라 자기만의 렌즈로 세상과 나 자신을 바라보고 판단하게 된다. 나 자신을 어떤 시선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내 안에 있는 아름다움이 위축될 수도, 증폭될 수도 있다.
이왕이면 나르키소스처럼 자신의 아름다움에 집중해 보는건 어떨까. 인생을 살면서 무엇인가를 성취할 때(혹은 성장할 때) 내가 가진 결핍을 연료로 삼는다면 자기애는 지구력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제는 자기애(나르시시즘)에 대한 오해를 벗고 제대로 나를 마주하고 사랑해보자. Love your self!
*Reference)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 조지프 버고, '나르시시즘 다시 생각하기', 크레이그 맬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