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5. 방어기제 해체 그 이후, 고유명사로서 살아가기
지금까지 내 이름 석자로 살아왔는데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데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살고 있지 않다. 자신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나 자신이 고유명사로서 존재한다는걸 의미한다. '대체불가'하다는 말이다.
현재 다니는 학교와 직장에서 내가 절대 대체될 수 없는가? 10명 중 9명은 아닐 것이다. 전문직이면 달라질까? 세상에 절대로 대체될 수 없는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은 없다(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 그래야만 한다).
내 이름으로 산다는건 '나답게' 살아가는 생활 양식을 뜻한다. 처음 이 시리즈의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 부연 설명을 하겠다. 나의 자아대로 사는 사람 곧 '나답게'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빛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소속된 환경과 가지고 있는 사회적 스펙은 중요치 않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을 꾸밈없이 바라볼 줄 알고 고유한 잠재력을 키워 '자아실현'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이다. 아이슈타인의 말처럼 물고기가 나무에 오르는 능력으로만 평가 받았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무능하다고 여길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대로 곧 본질대로 살아갈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나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 믿는다. 매거진을 마무리하며 '나답게 자아실현'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태도 두 가지에 대해 강조하도록 하겠다.
'공허함'
포착하기
자아실현 욕구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구가 아니다.
'행복하고 싶다' 혹은 '부자가 되고 싶다'처럼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심리적 욕구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자아실현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상위 욕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매슬로우 욕구 피라미드에 의하면 사람은 '단계'별로 욕구가 강화된다. 이 중 1~4단계(생리, 안전, 소속, 인정)까지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욕구들이다. 단, 가장 상위 단계인 자아실현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특별한 욕구다.
https://brunch.co.kr/@binnis-insight/7
*매슬로우 욕구 관련한 필자의 이전 글
모든 욕구가 그렇듯 자아실현 욕구도 채워지지 못하면 내면이 갈증을 느끼게 된다. 대표적으로 '공허함'이 찾아온다. 삶에 흥미가 떨어지고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욕구들과는 달리, '공허함'이라는 감정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지만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일까? 4단계인 인정 욕구까지만 충족해도 살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아실현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1~4단계의 욕구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공허함'을 마주하는 순간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바로 이때가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적기이기 때문이다(단, '불안함'이 공존하는 상태라면 하위 욕구가 결핍되지 않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공허함'은 자아실현 욕구를 체감할 수 있을 만큼 하위 욕구가 안정적으로 충족되었다는 신호기도 하다. 그래서 성공할수록 가진 게 많을수록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공허함'이라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따라가다 보면 자아실현의 길이 열린다. 하위 욕구들을 단계별로 충족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이 쌓인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편안한 것과 불편한 것 등 자신에 대한 이해가 넓은 사람일수록 자아실현을 해낼 준비가 되어 있기 마련이다.
나아가 삶이 다사다난할수록 나만이 가진 잠재력을 찾을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난다. 공허함이 찾아온다면 이제껏 쌓아온 나에 대한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나'를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자. 탐구 방법은 이어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습관
인생은 자기 자신에 대한 노정이라고도 한다.
무엇인가를 탐구할 때 그 시작과 끝은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기억은 왜곡이 쉽지만 기록은 변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보다 정확하게 알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꾸준히 기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록해야 할까?
일기처럼 하루 일과를 적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감정'을 기록하길 추천한다. 머리는 자신을 속일 수 있지만 (느껴지는) 감정은 솔직하기 때문이다. 감정 중에서도 격렬한 감정일수록 그 가치는 커진다. 극도로 화가 나거나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내면의 상처와 결핍을 알 수 있다.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들은 깊은 내면의 상태를 대변하기도 한다.
여기서 핵심은 '실시간'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점이다.
감정은 휘발성이 강하다. 특히 방어기제를 세운 감정일수록 나중에 기억이 왜곡되기 쉽다.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온 순간의 환경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써보자.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될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실마리(방어기제의 원인)가 풀리게 되면 비로소 자기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마음의 편안함과 설렘을 따라가는 노정이 나의 영혼이 안내하는 자아실현의 길이다.
다른 문을 열어 따라갈 필요는 없어
넌 너의 길로, 난 나의 길로
하루하루마다 색이 달라진 느낌
밝게 빛이 나는 길을 찾아
-아이브, 'I AM' 중
모두가 같은 곳으로 뛰면 등수가 정해지지만 모두가 각자의 길을 뛰면 모두가 1등이 된다. 우리 모두는 각자 빛날 수 있는 때와 자리가 다르다. 위로의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하나의 화합물도 분자량이 '1'만 달라져도 성격이 변하고 그에 따라 쓰임이 달라진다(필자는 화학 연구원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오죽할까. 실감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나만의 길이 있다'라고 믿는 신념만큼은 근자감으로 갖길 바란다.
자아실현 욕구가 대중적이지 않은 이유는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고 외로운 싸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답게'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모든 독자들은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우직하게 걸어 나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그 길에 이 글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