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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스 Apr 11. 2024

직장인이 사업뽕 맞는 4단계 법칙

Episode 8. 본업 자존감

직장인 4대 *허언이 있다고 한다.

출처: 블라인드

직장인들이 ‘하고 싶다’라고 습관적으로 말하지만 99%는 지키지 않는 일들을 희화화한 것이다. 이렇게 유머로 웃어넘길만한 허언들도 있지만, 간혹 직장에서 들리는 위험한 허언도 있다.

*허언: 사실이 아닌 말이나 빈말


바로, ‘나 사업할거야’라는 말이다.


나는 입사 4년차에 사업뽕을 맞았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를 가보면, 부(富)에 관한 책들이 10위권 내에 랭킹 되어 있다. 고전적인 베스트셀러부터 최신작까지.

출처: 헤럴드경제

선반 위에 진열된 10권의 책들이 전하는 메세지는 간단했다. “부자가 되려면 사업을 해야 한다대놓고 '사업하세요'라고 자극하지는 않았지만, ‘직장인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필 그 시점에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자발적 조기 은퇴)이 등장했다. 코로나와 함께 투자 대호황기를 맞이하면서, 30대에 조기 은퇴를 한 또래 청년들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기 시작했다.


파이어족의 행보는 대체로 비슷했다. 은퇴해도 문제없을 만큼 투자수익을 낸 다음, 하고 싶었던 사업을 하는 것이다. 결국 또 사업이다. 여기에 ‘파이어족이 되는 비결’ 콘텐츠를 판매하는 건 덤이다.


새로운 세대의 패러다임이 신기하면서도 꽤 씁쓸했다. 안 그래도 회사생활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았는데..

“나도 코인으로 한탕할까? 나도 사업이나 할까? 어차피 직장인은 남을 위해 일하는 거잖아. 한 번 사는 인생, 내 사업체 한 번 운영해 보는 게 의미 있지 않겠어?” 라는 온갖 잡생각이 늘어났다.


혹시나 내 얘긴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내가 ‘사업뽕’을 맞은 건지 아니면 진지하게 적성을 고민하고 있는 건지 증상 확인을 해보도록 하자.


증상 1단계.
회사에 불만이 많아진다


사업뽕을 맞은 사람은 자신의 미래 가치에 대한 불안감을 ‘회사 탓’을 하면서 회피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회사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단, 이직이나 퇴사 계획도 세우지 않으면서 맨날 회사 욕을 입에 달고 산다면, 회사만큼 본인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회사에 문제가 있다면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면 된다. 그런데 왜 이직은 하지 않으면서 불평을 하는 걸까? '이직해도 똑같다', '어차피 회사는 거기서 거기다'라며 자기 위안을 삼지만 사실은 이직을 할 자신도 이직해서 잘 적응할 자신도 없을 확률이 높다.

출처: 블라인드

우리 회사에도 매일같이 블라인드(직장인 커뮤니티)에 회사 불평불만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논리는 정해져 있다. '우리 회사는 동종업계에 비해서 돈을 안 준다', '연봉이 너무 낮다', '진급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등. 물론 뼈 때리는 맞는 말도 간혹 있지만 이 글을 쓸 시간에 자소서를 쓰는 편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실력 있는 인재들은 이미 현실을 파악하고 조용히 퇴사했으니까.


만약 사업뽕을 맞은 건지 확인하고 싶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만의 이면을 파악해야 한다. 현직장의 구조적 문제인지 본인의 역량이 부족한 건지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여기서 역량은 전문성뿐만 아니라 사내 인간관계도 포함된다).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면 직장 상사와 동료의 의견을 모두 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증상 2단계.
사업 관련 콘텐츠에
꽂혀 있다

"바로 이거였어, 나는 사업가 성향이야."

사업뽕에 맞았던 내가 일기장에 썼던 말이다. 일하는 게 재미없고 성과도 뜻대로 잘 안 나왔던 시기였다. '부의 추월차선'을 완독하고 '나는 4시간만 일한다'를 읽으면서 이상하게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일에 대한 열정이 식어간 나를 정당화하기 딱 좋은 책이었다. 나아가 '나는 다른 직장인들과 달라'라는 거만한 마음까지 생겼다.

출처: 월급노예 짤

귀신같이 유튜브 알고리즘이 사업을 장려하는 영상들로 도배가 되었다. 이러한 콘텐츠들의 특징이 있다. '빠른' 은퇴를 장려한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경력을 쌓는걸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 사업만이 돈을 빠르게 많이 버는 유일한 '경제적 자유의 길'이라는 인식을 전파하곤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정년 은퇴하신 고모부는 연금을 제외하고 월500만원씩 벌고 계신다. 매년 몇 달씩 해외로 골프여행도 다니신다. 회사에서 30년간 번 돈으로 착실하게 재테크 기반을 마련하신 덕분이다. 반면 사업하는 이모는 30년째 주말이 없이 살아가고 계신다.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체를 팔지 않는 이상 은퇴가 없기 때문이다.


둘 중에 누가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일찍이 경제적 자유를 이룬 회사원도 있고 평생 노동만 하게 되는 사업가도 있다. 이것이 책 밖에서 본 현실이었다.


증상 3단계.
회사원을 무시한다


사업 콘텐츠들에 중독이 되면 자기 정체성이 '회사원'에서 '사업가'로 바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퇴사하지 않고 한참 동안 계속 회사를 다닌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업 아이템이 구체화될 때까지 회사에서 월급 루팡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심보가 '마음이 붕 뜬 상태' 곧 사업뽕 맞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사업뽕 제대로 맞은 사람들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선후배를 보면 비웃음이 나온다. 아니, 동정심까지 든다. '저 사람들은 평생 저렇게 노동하면서 살겠지?', '저 재능을 차라리 사업하는 데에 쓰면 좋을 텐데..', '남의 일만 하다가 은퇴해서 연금이나 겨우 받고 살려고? 자기계발서라도 추천해 줄까?'라는 시건방진 생각들이 맴돈다.


이들은 이미 '회사는 나에게 맞지 않는다'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상사와 선배의 조언을 아예 무시해 버린다.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자기계발과 성장은 관심 밖이다. 희한하게 이런 사람들이 회사에 제일 불만이 많고 인센티브 적게 나오면 제일 말이 많다. 즉, 증상 1~3단계가 순환하며 나타난다.


증상 4단계.
당당히 근무태만 한다


증상 3단계에서 악화되면 태도가 점점 더 뻔뻔해진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남을 위한 무가치한 시간'으로 여기고 근무시간에 어떻게든 딴짓을 한다. 딴짓의 종류도 다양하다. 주식창을 하루종일 보기도 하고 부업 계정을 관리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상사나 동료의 눈치라도 봤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근무태만 한다. 사업뽕을 심각하게 맞아 양심까지 마비가 된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정작 사업 준비는 안 한다는 것이다. 사업뽕도 직장인 허언 중에 하나인 결정적인 이유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리스크도 크고 책임감의 무게도 직장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간절함'이 있어야 감히 뛰어들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월급 주는 직장도 있고 (일도 안 해서) 몸도 편한데 간절함이 생길 리가 없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짤리고 난 뒤에야 사업을 시작하려는 것 같다.


사업뽕 디톡스
희박한 성공 가능성을 가진 초경쟁 사회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일구어내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한다. 그들의 놀라운 성공 스토리는 우리의 창업 DNA를 여지없이 자극한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당신은 사업가입니까?', 캐럴로스

만약 위 증상들 중 본인에게 3가지 이상이 해당이 된다면, 잠시 디톡스 후에 사업을 꿈꿔보는 걸 추천한다.


직장인이 사업뽕을 맞는 건 본업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본업 자존감이란 현재 직무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를 말한다. 즉, 회사에서 자신의 전문성이 불안정할수록 사업뽕을 맞기 쉬워진다. 본업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해 눈이 자꾸 딴 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회사는 스펙과 경력 등에 기준을 두고 연봉을 산정한다. 반면 사업은 다른 직업과 달리 표준화되고 효과적인 검증 프로세스가 없다. 그래서 모두가 뛰어들 수 있고 모두가 망할 수 있는 분야다. 희망적으로 보면 High Risk, High Return이고 냉정하게 보면 High Risk, Low Probability(확률)이다.

출처: 당신은 사업가 입니까?

사업을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 혹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수단'이라고 단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그 이면에 있는 현실도 함께 참고해야 한다.


혹시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게 맞지 않아서 사업을 생각하고 있는가? 사장은 맨 위가 아니라 맨 밑에 있는 입장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사업을 하고 싶은가? 정작 시급으로 치면 직장인이 더 높을 수 있다. 주말과 퇴근이라는 개념 없이 자기만의 일을 책임질 각오가 있는지 진지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 회사일을 못하는 경우는 종종 봤다. 그러나 역의 관계(회사일을 못하면 사업을 잘한다)는 성립되기 어렵다. 


회사에서 '나'라는 기업부터 잘 운영해 보는 것이 나의 사업성을 확인해 보는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이다. 회사에서 일을 해보면 내가 가진 장담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곧 회사는 나의 일머리와 감각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회사생활이 잘 안 맞아서 사업을 꿈꿔볼 수 있다.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악(惡)이 아니다. 다만 아직 직장인 신분이라면, 회사 일에 집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추후에 사업을 하더라도 높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다. 사업가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듯이 말이다.


이상 사업뽕에서 벗어난 직장인의 회고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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