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조언과 성장의 관계성
올해 경력직으로 들어온 나의 new 사수가 술에 취해했던 말이다. 듣기 전부터 이미 기분이 나빠지는 문장이었다. 대체 저런 젠틀하게 무례한 말은 누가 만들어낸 걸까? 기분이 나빠도 반박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아 듣자마자 반발심이 든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인데.. 연구원은 꼼꼼해야 해요. 제가 전 직장에 있었을 때 만났으면 가만 안 뒀을 텐데.. 아, 농담이에요"
첫 문장부터 쎄하더니 역시나 조언을 가장한 술주정이었다. 당시 나는 감기에 걸린 그를 대신해 일주일 동안 업무 독박을 쓴 상태였다.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지적질이라니. 그가 100% 맞는 말로 조언을 했더라도 기분이 상하는 상황이었다(심지어 나는 그보다 꼼꼼하다).
작년에 어떤 여자 선배는 "솔직히 말할게"라는 말을 시작으로 정말 솔직하게 자기의 감정을 나에게 다 쏟아냈던 적이 있었다. 듣다 보니 나도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졌다. "솔직히 선배님 입냄새 나는 거 아세요?"라고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상사가 아닌 동료의 조언에 하루종일 기분이 찜찜하고 불쾌해진 적, 답답한 동료에게 큰맘 먹고 조언을 했는데 사이가 멀어져 버린 적.
회사에서 듣는 말들 중에 물론 피와 살이 되는 조언도 있다. 반면 어떤 조언은 기분만 나쁘게 만들고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둘 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의도’는 같을 텐데 왜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낳았을까?
바로 ‘조언’이 가지고 있는 속성 때문이다.
선배들은
왜 자꾸
조언을 하는 걸까?
어른들이 자꾸 '요청하지 않은 조언'을 하거나 참견을 많이 하려는 이유는 조언을 하는 본인의 자존감이 상승하고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동아사이언스 저널 중, 박진영 작가
물론 회사생활을 하면서 조언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 그러나 그 빈도수나 강도에 따라 ‘조언을 하게 되는 목적‘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조언'을 하는 행위는 상대방을 가르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습관적으로 조언을 하는 사람은 상대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믿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실제 그 내용의 영양가와 상관없이 누군가를 조언하는 ‘행위’ 자체가 자신이 상대보다 인생을 더 잘 산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보통 이런류의 조언은 상대방이 요청하지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들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조언을 하려는 사람에게 ‘즐거움’이 따르기 일이기 때문에 자꾸 조언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일 잘하는 사람 좋아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 치고 대외적으로 일 잘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이들은 ‘나는 일을 잘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자주 뱉는다. 그래서 겸손하지 않은 태도를 갖기 쉽고, ‘나랑 일할 때 실수하지 마’라는 암묵적인 경고를 한다.
조언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해“라는 이 말 또한 상대방을 자기 뜻대로 지배하려는 욕구를 내포하고 있다.
동료 간의 조언이
도움이 안 되는 이유
그렇다면 동료 간에 조언을 가려서 ‘잘’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글쎄. 회사를 오래 다니고자 한다면, 나는 되도록 조언을 안 하는 방향이 더 이로울 수 있다고 본다.
조언은 어쨌든 아픈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조언은 상대방을 추궁, 비판, 훈계, 통제, 무시하는 태도를 암시하는 말이다. 특히 요청하지 않은 조언을 들은 당사자는 그 조언이 아무리 맞는 말일찌라도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아니, 하루종일 불쾌하다.
조언이 실제로 상대방을 개선시키는 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다. 먼저 부탁하지 않은 도움이나 조언을 받은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조언을 들은 대상자들 중 대다수가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하나” 같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 중 85%가 자신감의 하락을 겪거나 떨떠름한 기분을 느꼈고, 조언의 내용대로 개선할 의지는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진 단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단점을 들춰내는 조언을 당연히 싫어한다. 조금만 돌려서 말을 해도 알아차린다. ‘저 사람이 나의 치부를 봤구나’하고 수치심을 느낀다.
팩트일수록 맞으면 아프다. 조언을 하려거든 상대방과의 관계가 전보다 멀어질 수 있다는 점도 참고해야 한다.
모든 조언자는 자기만의 색안경이 있다
때로는 무심코 던진 조언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 있다. *조언자 입장에서 상대를 위한다고 한 말이 상대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언자는 주로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말이나 행동을 지적한다. 하지만 조언자의 눈에 거슬린다고 해서 상대의 특징이 곧 ‘단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조언자: 조언을 하는 사람
팀장님께서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에게 ’어수선하게 일한다‘라는 피드백을 하신 적이 있다. 같은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그 친구를 지켜봐 온 결과, 나는 그가 왜 어수선하게 일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한 가지에 몰두하면 주변을 못는 천재 캐릭터였다. 그만큼 몰두한 일에 대해서는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가지고 왔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팀장님의 조언이 그를 주눅 들게 만들어버렸다. 남다른 집중력의 효과를 뽐내던 그가 ‘정리를 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업무 몰입도는 깨지게 되었고 그는 그저 다른 동료들과 비슷한 수준의 성과를 가져오는 사람이 되어 갔다.
한 사람의 장점과 단점은 연결되어 있다. 단점을 없애려고 할수록 장점은 희석된다. 상대에 대한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지적하면 그 사람이 가진 잠재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만약 상대에게 아쉬운 점을 말해주고 싶다면 그 사람을 위해 보다 더 신중하게 조언을 하길 바란다.
후배들이 듣고 싶은 조언은?
후배들이 모든 조언을 듣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회사에서 성장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동료 선배의 객관적인 평가와 조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후배들이 원하는 조언은 무엇일까? 앞에 말한 조언들과 무엇이 다를까? 말장난 같지만, 우리는 ‘조언 같지 않은 조언’을 바란다. 어차피 임직원은 모두 회사를 위해 일하는 동료(co-worker) 아닌가. 위에서 아래에게 지시하는듯한 조언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모든 언행이 곧 최고의 조언이다.
김책임님은 후배들에게 유독 인기가 좋다. 말투가 따듯한 편도 아니고 밥을 잘 사주시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분과 함께 일하다 보면 ‘책임님 같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김책임님을 오랜 시간 관찰해 본 결과, 그분은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
첫째는 동기부여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동기는 제각각이다. 그래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나 열정, 성실함 등을 주제로 정신교육하면 꼰대라는 말을 듣기 쉽다. 김책임님은 이러한 ‘정신’이나 ‘태도’를 강조하지 않았다. 대신 후배에게 업무의 본질을 뚜렷하게 알려주신다.
만약 후배가 중요한 검토 사항을 누락하면 ‘꼼꼼하지 못함’을 지적하지 않았다. 이 일은 왜 꼼꼼하게 봐야 하는지 큰 그림을 그려 설명해 주시면서,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만들어주신다.
두번째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알려주신다. 모든 실무에는 실수 포인트들이 있다. 주니어들이 놓칠만한 실수도 있고, 시니어들도 자주 하게 되는 실수도 있다. 김책임님은 이러한 실수들이 최대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도구(tool)를 만들어서 업무를 시스템화하는 데에 능숙하셨다.
이러한 김책임님의 내공을 보면 ‘대단하다’라는 감탄과 함께 묘하게 위로를 받았다. 나의 부족한 점을 ‘고치라’는 조언이 아니라 보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선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김책임님이 다른 선배들과 특별했던 점은 후배가 설령 일을 잘 못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를 지적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그 사람이 갖지 못한 역량을 꼬집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필요한 조언을 예의 있게 건네었다는 것이다.
‘뭐가 없다’ ‘뭐가 있어야 한다’ 등의 말로 끝나는 조언이 아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겸손함에 많은 후배들이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6년차 선임인 나는 아직 전문성도 내공도 부족하다. 아니, 애매하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안한다.
물론 어설픈 경험을 토대로 조언같은걸 해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은 선배들처럼 조언을 할만한 경험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동료로서 ‘이 친구의 부족함을 어떻게 하면 보완해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며 후배와 자주 소통을 했다. 나의 이런 작은 노력들을 알아챘는지 후배가 어느날 편지를 써왔다.
“선배님같은 따듯하고 멋진 선임이 되고 싶어요.”
그 때 알았다. ‘멋지면서 따듯한 사람’이 바로 내가 바랬던 선배상이었던 것을. 안그래도 전쟁터같은 회사에서 말 한마디까지 날카롭게 오갈 필요가 있을까? 굳이 따끔하게 조언을 하지 않아도, 도와주려는 손길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선배로서 귀감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