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저는 타고 타기를 워낙이 예민하고 시도 때도 없이 감정이 요동치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저의 본질을 부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진행 중 일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제가 저의 마음을 들여다본 건, 고요한 섬에서 작은 돗자리를 지키고 있던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있어 사막을 걸었던 순간이자 ‘나’의 마음속 깊은 감정의 샘물을 무한정으로 퍼내던 나날들이었습니다.
당시엔 출구가 보이지 않던 나날들에, 그 나날에 덮쳐진 아픈 이별에 제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화면 속 작은 기록의 창고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애써 기운을 내 삶을 살아가지도, 괜찮은 척 웃지 않아도 됐기에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저의 감정을 털어내러 방문하곤 했습니다.
그전에는 일기를 쓰더라도 있었던 일들의 나열, 최대한 감정을 뺀 글을 썼습니다.
눈치를 많이 보는 탓이었을까 혼자 사는 집인데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나의 일기를 누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의 감정을 거름망에 거르고 또 걸러 너무나 미세해 그 정체가 무엇인지 보이지 않은 채 손 끝으로 써 내려갔던 시절이었죠.
그게 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가장 사실적으로 ‘나’를 볼 수 있는 내가 그렇게 바라보다 보니 갈수록 타인의 눈치를 보기 바쁜, 가면을 쓴 ‘나’로서만 존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감정의 길은 익숙해져 습관적으로 그 길을 찾았습니다.
익숙했지만 잘못된 길을 계속해서 가는 것만 같았죠.
이런 제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걸 인지한 건, 첫 직장에서 1년쯤 지났을 때입니다.
입사 초반 그 곳에서의 저는 제가 싫어하는 모습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힘들어하며 눈을 쳐다보는 것도 힘들어했던 붉은 방울토마토 같은 사람이었다고 할까요.
하지만 저는 그곳에서 성장하고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저에게 그 뻔한 단어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주 좋은 직장도, 그렇다고 많은 돈을 버는 곳도 아니지만, 작은 회사에서 총 3명이 전부인 작은 팀에서의 경험과 감정들이 저를 있는 그대로의 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저를 억누르는 환경이었다면 종착지가 다른 곳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해가던 저에게 희미한 마침표를 찍어주었다고 볼 수 있겠죠.
이곳을 지나치지 않아도 변할 저였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 저는 여기서 일도 사람으로서의 성장도 진행 중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 감정의 골짜기에서 헤매던 나, 현재는 감정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나.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진정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절이 지나오는 동안 인지하지 못하였지만,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행복을 느끼던 나를 되돌아보고 곱씹어 보는 요즘입니다.
저의 넘치는 감정과 생각들을 억누르며 지내오던 나날들, 그래야만 나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나날들, 그래서 떠오르는 잔상들을 감정의 바다에 풀어놓지 못하고 심야 저 밑까지 꾹꾹 눌러대던 그 보이지 않는 손을 이제는 거두어 보려고 합니다.
골짜기를 헤매게 만들었던, 출구를 찾지 못해 맴돌던 그것들을 보내기 위하여.
2025.06.05
시간이 많이 남은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