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길리엄(Terry Gilliam) 감독 영화 ‘12 몽키즈’(Tw
“바이러스가 없는 신선하고 아주 좋은 공기에요.”
남자는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1996년도의 밤공기를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영화 속 브루스 윌리스(제임스 콜)는 세상 이처럼 맛난 것이 없다는 듯이 숨을 들여마셨다.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지금 우리의 상황이다. 밤마다 운동하려고 밤 산책을 나오면서 사람들이 없는 중간에 마스크를 한번 살짝 들어 나무냄새, 바람냄새를 맡는다. 이렇게 공기가 맛있고 달콤했던 것이었나?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지금의 상황이 믿겨지지 않는다.
브루스 윌리스는 미래에서 왔다. 그가 온 미래에서는 공기로 전염되는 바이러스로 인해 지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자는 바이러스가 창궐했던 시간을 지나 미래에서 왔다. 테리 길리엄(Terry Gilliam) 감독의 영화 ‘12 몽키즈’(Twelve Monkeys)는 지금으로부터 14년 후 미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서기 2035년의 지구는 바이러스로 인류의 99%가 멸망하고 1%만이 살아남은 상태다.
바이러스로 인류가 멸망한 미래, 백신을 만들려는 과학자들
남자는 자꾸 반복된 꿈을 꿨다. 남자의 이름은 제임스 콜. 꿈속에서 그는 공항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남자를 눈앞에서 직면한다. 남자는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고 아름다운 여인 한 명이 남자에게 절규하며 뛰어간다.
꿈인지 정신착란인지 알 수 없는 이 상황. 영화는 암울한 미래의 교도소를 비춘다. 서기 2035년. 꿈을 꾼 남자는 국가 공권력에 대항해서 25년 형을 받은 죄수다. 그는 자신의 형을 감형받기 위해 특별한 임무를 완수하기로 한다.
1996년과 1997년 사이에 인간에게만 감염되는 치명적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했다. 50억 명의 인구가 죽었고 아주 소수의 인간만이 지하세계를 만들어 생존을 이어갔다. 인간이 사라진 지상 세계는 야생동물들의 천국이었다. 사자는 고층빌딩 위에 올라가 포효했고 곰들은 도시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과거 백화점이었던 거대한 건물에는 올빼미들이 어둠을 응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영화는 마치 신종 코로나감염증바이러스-19(COVID-19·코로나19)으로 도시를 봉쇄한 유럽 및 미주 국가에서 일어난 모습을 재현한 듯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지 않자 야생동물들이 도시에 출현했다. 멸종 위기의 거북이들이 해변가에 나와 짝짓기를 했고 아이들이 떠난 놀이터에는 산양들이 놀이기구를 탔다.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영화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지구도, 자연도, 동물도 모두 행복한 환경이다. 인간은 지구에 해를 끼치는 존재다. 인간이 사라지면 다른 생물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생각을 가진 이가 바이러스를 뿌린 장본인이었다.
그는 세균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의 조수다. 그는 인류를 말살함으로써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다. 종말론에 미친 과학자가 뿌린 바이러스로 전 세계 사람들은 2년 사이에 목숨을 잃었다. 증세는 작은 미열이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됐다. 열이 오르고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어갔다.
과거의 행동으로 미래는 바뀔 수 있을까
사람들이 전부 죽고 지상에는 사람의 자취가 끊어진지 40여 년. 지하세계의 사람들은 지상으로 올라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인지를 탐사하고 바이러스가 어떻게 퍼지게 된 것인지를 연구할 수 있는 죄수를 고른다. 그 죄수는 바로 제임스 콜이었다.
제임스 콜은 지상에서 ‘12 몽키즈’라는 정체불명의 표식을 찾고 미래 과학자들은 ‘12 몽키즈’와 바이러스와의 연관성을 알기 위해 제임스를 사건이 일어난 1996년 과거로 시간 이동시킨다.
사실 제임스 콜이 반복해서 꾸는 꿈은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과거에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이었다. 총을 맞은 남자에게 달려가는 여자는 1990년도로 돌아와 자신이 정신병원에서 처음 만난 정신과 의사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기도 했다.
미래의 과학자들은 완벽하지 못했다. 1996년에 보내야 할 제임스를 1990년에 보내기도 하고 포탄이 떨어지는 1차 대전 한복판에 벌거벗은 그를 보내기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1996년도에 도착한 제임스는 '12 몽키즈'가 사실 바이러스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미래에 알린다. 무사히 임무를 완수했건만 그는 매일 꾸던 꿈에서처럼 총을 맞고 사망한다.
제임스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던 영화는 마지막 비행기 탑승장면에서 새로운 반전을 만들어낸다. 과거의 행위로 인해 미래가 바뀔 수 있을까? 영화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결론 내린다.
왜 인간에게만 이런 바이러스가 감염되는 것일까. 1996년도에도 인간이 환경과 자연, 동물에게 크나큰 해악을 끼치고 있어 인간들을 멸종시켜야겠다는 설정은 24년이 지나 코로나19가 창궐해 인간만 죽고 있는 현실과 닮아 소름이 끼친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제임스가 1996년도로 돌아와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기분 좋아하는 표정이다. 이 장면은 과거에는 별생각 없이 봤을 장면인데 우리에게도 마스크 없이 마음껏 공기를 마실 수 있었던 코로나19 이전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며 짠한 감동을 준다. 코로나19를 예견했다고 재조명 받고 있는 영화 '12 몽키즈'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인간만 감염되는 바이러스라는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