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는 전설이다’
우리는 아직도 바이러스와 대치 중이다. 이 가운데 만들어진 빠르게 만들어진 백신이 어느 정도 방어막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백신이 문제가 되어 변종 바이러스가 확산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러한 상상은 70여 년 전 미국의 극작가 리처스 매드슨(Richard Matheson)이 1954년에 내놓은 걸작 ‘나는 전설이다’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영화에서 실현됐다. 영화는 암 백신으로 개발된 약이 변종 바이러스를 일으켜 사람들을 변종 인간으로 변화시키고 세상의 종말이 시작된다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시작된다.
획기적인 암 백신이 만들어낸 변종 바이러스, 인간 멸종의 시작이 되다
세상이 끝났다. 주변에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 분)은 세상이 끝난 지금 몇 남지 않은 생존자 중 하나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체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변종 인간들뿐이다. 인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인간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려 부숴버릴 수 있는 괴력을 지닌 변종 인간이 바로 그가 함께 숨 쉬며 살고 있는 ‘이웃’이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인간이다. 인류가 멸종하기 3년 전, 암을 정복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된다. 획기적인 암 백신이 개발된 것이다. 인류가 암을 정복하다니. 사람들은 너도나도 새로 개발된 암 백신을 접종했다. 하지만 이 백신은 오히려 변종 바이러스가 되어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인간은 죽고 새로운 변종 인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감염자가 득실대는 뉴욕을 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뉴욕은 곧 사람들이 없는 유령도시가 됐다.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은 텍스트로 존재하던 소설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 인간이 사라진 도시의 모습은 이런 모습일까. 아무도 없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개 한 마리와 홀로 살아가는 네빌의 모습은 처연하다. 그가 연출한 영화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2007)’은 단순히 좀비 영화가 아니다. 영화 인간이 왜 살아야 하고 왜 서로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묻는다. 로버트 네빌이 허공을 향해 골프공을 치는 장면이나 침대가 아닌 욕조에서 홀로 쪼그려 잠드는 모습은 우리에게 인간이 왜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명장면이다.
인간이 없는 지구,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어야만 할까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군인이자 과학자다. 그는 변종 인간이 가득 찬 미국 뉴욕에 남았다. 변종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그가 홀로 이 세계에 남아있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외롭다. 인간은 홀로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이 영화 곳곳에 남는다. 네빌의 목표는 한시라도 빨리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종 인간을 잡아 혈장을 채취해야 한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변종 인간은 사람을 물어 피를 빨고 사람들을 먹는다. 더욱이 이 변종 인간은 보통 생각하는 좀비나 뱀파이어와는 다르다. 두 종의 혼종이라고나 할까. 보통 좀비는 느리게 걷는다. 생각하는 지능도 낮다.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과는 다른 점이다. 또한 이들은 뱀파이어처럼 밤에만 활동하지만 뱀파이어처럼 홀로 다니지 않는다. 뱀파이어는 괴력을 가지고 있고 높은 지능으로 인간들을 사냥하고 인간들을 피해 다니지만 군집 생활을 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홀로 움직인다. 하지만 이 변종 인간은 괴력을 가지고 있고 피를 빨고 밤에만 움직이지만 지능이 인간 이상으로 뛰어나며 리더에 의해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고도의 훈련병처럼 움직인다. 네빌이 홀로 변종 인간을 사냥해 치료제 개발을 하기 어려운 이유다.
네빌은 낮에 활동하지 않는 약점을 노리기로 한다. 그는 마네킨을 이용, 어두운 그늘로 변종 인간을 유인해 생포하는 데 성공한다. 변종 인간 무리의 수장인 리더는 자신의 무리가 실험대상으로 잡은 것을 알고 분노한다. 그는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부하들을 움직인다. 인간보다 더 강력한 괴력과 체력으로 집을 둘러싸고 벽을 타고 오르며 네빌을 위협한다.
영화에서 변종 인간은 인간 중심의 시각으로 봤을 때 무서운 ‘괴물’이다. 하지만 괴물이라는 정의 자체가 인간 중심의 사고로 만들어진 용어일 뿐이다. 하지만 정말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지적인 생명체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사랑하는 이를 잃은 변종 인간의 울부짖음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람이 전부 죽고 변종 인간만이 살아 있다면 홀로 남은 네빌도 변종 인간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영화는 관객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하지만 이런 철학적 질문은 관객들에게 맡긴 체 영화는 지극히 ‘인간적인’ 결말을 도출한다. 네빌은 변종 인간의 혈액을 채취해 치료제를 만들고 사람들을 구한다. 물론 그는 이 세상에 없다. 변종 인간들과 함께 화염 속에 사라진 뒤다. 네빌을 변종 인간들에게서 구해준 또 다른 생존자인 안 나와 그의 어린 아들 에단이 인류의 희망이 됐다. 그들은 네빌이 생명을 다해 구한 변종 인간의 혈액을 안전지대의 의료진에게 건네고 의료진들은 혈액으로 치료제를 개발한다. 원작의 결말에서 네빌은 변종 인간들에게는 바로 자신이 괴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반전이다. 하지만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 공식 그대로 인류를 구한다는 시시한 영웅 서사시로 서둘러 결론 낸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지금과 같은 현실 상황에서는 영화 속 ‘뻔한 해피엔딩’이 맘에 쏙 든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이고 모든 최후의 승자가 인간이길 바라는 나로서는 무엇이든 현재 코로나19를 퇴치할 수 있는 백신과 치료제만 성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