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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작가 Feb 23. 2023

자연에서 얻은 진리

늘 배가 고팠던 아이

부모님이 동대구역 근처에서 식당을 하셨기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꽤 부유하게 살았다. 아버지가 아프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헛것이 보인다면서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전국에 좋다는 약은 다 먹어 보고 굿도 하면서 전 재산을 아버지에게 쏟아부었지만 차도가 없으셨다. 그때부터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니면서 아버지 대신 엄마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당시 우린 4남매였고 늦게 막내가 태어나면서 2남 3녀가 되었다. 위로 줄줄이 딸이었고 난 5남매 중 둘째 딸이다.      


엄마는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뭐든지 해야만 했다. 풀빵 장사를 했고 짜장을 볶아 찜통에 담아 시장 길바닥에서 팔았다.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 살았다. 딸린 자식이 많으니 단칸방을 내어줄 착한 주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방을 구하기 힘들어지자 팔공산 백안동이라는 시골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엄마는 밭일이나 허드렛일을 하셨던 거 같다. 늘 썩은 부사를 한 소쿠리씩 들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다. 당시 내 나이 12살이었다.




     

아버지는 신을 받지 않기 위해 늘 당신 자신과 싸우며 기도를 하셨다. 산속 깊은 곳이나 동굴 안에서 오랫동안 기도를 하시고 가끔 집에 왔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건 마른 체구에 쓸쓸하게 돌아서 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아버지의 등은 거대한 산 같았다. 과묵하셨지만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산에 들어가시면 한참 동안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집 안은 적막했다. 아버지의 존재는 그때 내 마음에 어떤 신념 같은 씨앗을 남기셨다.      


언니는 국민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갔다. 어린 동생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언니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되었다. 엄마가 하시는 밭일로는 자식들 학교 수업료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동생들은 대우가 달랐지만 딸들은 학교 갈 때 도시락조차 없었다. 학교에 내야 하는 회비나 준비물조차 가져가지 못했기 때문에 늘 말없이 조용히 지냈다. 5학년이었던 난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자연스럽게 운동장으로 나갔다. 운동장 한쪽에 수도가 있었는데 거기서 일단 수돗물을 실컷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수돗가 옆에 산으로 올라가는 자그마한 뒷문이 하나 있는데 그 문을 열고 산을 올랐다.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만 오르면 늘 앉았던 자리가 보였다. 난 거기 웅크리고 앉아 동네를 내려다보면서 점심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학교 앞 문구점에 가면 군것질할 불량식품이 많았다. 쫀드기, 아폴로, 꾀돌이 등 침이 고이게 하는 과자가 널려 있었다. 50원만 있어도 사 먹을 수 있는 건데 그 돈조차 없어서 마른 침만 삼키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가면 아무도 없었다. 엄마도 아버지도 언니도 없었다. 장독 뚜껑을 열어 큼지막한 무를 젓가락으로 푹 찔러 꺼내서 물에 만 밥이랑 대충 먹고 나갔다. 늘 허기가 졌다. 혼자 산으로 들로 돌아다녔다. 그때는 나에게 유일한 친구가 자연이었다. 냇가에 가면 물고기와 시냇물 소리가 친구였고 강아지풀과 개나리꽃이 나에게 말을 걸어 주었다. 고개를 푹 숙인 할미꽃은 또 어찌나 이쁘던지. 털이 송송 나 있는 할미꽃을 쓰담으면서 “할머니~ 할머니~” 하고 부르며 놀았다. 동네에서 조금 벗어나면 애추 나무가 있었는데 설익은 애추를 참 많이도 따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날엔 신주머니 한가득 따놓고 배를 채울 때도 있었다.      


백안동 마을과 학교 가는 길 사이에 큰 도랑이 있었는데 그 도랑을 따라 내려가면 마을에서 멀어지면서 들길 따라 주변이 모두 산이었다. 인적도 드물고 약간 무섭지만 그 산을 가끔씩 찾아갔다. 조금만 오르면 딸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딸기도 모르게 서리해 먹고 물렁한 복숭아도 따서 먹었다. 껍질을 벗겨 먹으면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그때 난 이미 알았던 것 같다. 자연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내어 주는지 말이다. 풍족한 먹거리와 아름다운 것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그렇게 자연 안에서 만족과 행복을 느끼며 지냈다. 자연은 내가 가난하고 부족해도 다 받아주었다. 겨울에는 논두렁에 쌓아놓은 볏짚 사이에 들어가 놀았다. 요즘은 볏짚을 동그랗게 말아 놓지만 그때는 그냥 쌓아두었기 때문에 나에게 아주 훌륭한 아지트가 되어주었다. 볏짚 안은 까칠하고 따뜻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혼자 그렇게 자연을 알아가고 자연을 느끼면서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아주 큰 씨앗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연 안에서 나의 정신은 배부르게 살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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