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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작가 Feb 23. 2023

길을 가다

나의 첫 개인전

너무나 긴 시간 동안 졸업을 하지 못했다. 미대 갈 학비가 없어서 처음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를 지원했고 2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대구대학교 학점은행제 회화과(서양화)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다. 학점은행제는 학점이 누적되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학위 취득이 가능하다. 일반 대학교와 다르게 형편에 따라 과목을 들을 수 있고 학점이 쌓여 140학점 이상이 되면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일해가면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졸업하기까지 8년이 걸린 셈이다. 다른 학생들은 학점은행제 출신을 부끄러워하며 곧바로 일반대학원에 가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하지만 난 대학원이 아닌 작가의 길을 택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든 올바른 선택이었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대학교 시절엔 실기실에서 밤새워 그림 그리는 일이 일상이었다. 100호에 유화물감으로 길을 그리고 있었는데 회색을 명암만 다르게 하여 계속 덧발랐다. 내가 그리는 길은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삶의 길이었다. 당시 실기실 분위기는 사진을 보고 그대로 재현하는 사실주의나 스킬을 사용하여 감각적인 색상을 구사하는 이른바 표현주의가 대세였다. 교수님의 터치 한 번으로 그림이 멋지게 완성되었기 때문에 서로 경쟁과 질투로 잘 보이기 위한 노력에 꽤 어수선했었다. 교수님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다닌다고 해야 할까. 그 와중에도 난 단색조를 사용했고 사진의 보이는 풍경이 아닌 보이지 않는 내면의 길을 나타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당연히 교수님의 도움은 필요 없었고 주로 혼자 밤에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난 말이 없었고 함께 밥을 먹지도 않았고 모자를 푹 눌러 쓴 얼굴에 손목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그림만 그렸다. 처음엔 독종으로 불렸고 나중엔 작은 거인이라 불리었다.      




2007년 졸업하기 전과 후를 합쳐 약 3년간의 시간을 야외로 스케치하러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거의 사람이 없는 곳을 배회하고 다녔다. 한적한 시골 마을을 다니며 노인들을 스케치하거나 산, 바다, 들녘 같은 한적한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길과 나무와 바람과 노인들, 그리고 가끔 만나는 소나기가 전부였지만 실기실에 박혀 죽은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숨통이 트였다. 자연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살아있는 그것들을 직접 보고 느끼며 그리고 싶었다. 여름엔 비를 맞아가며 그렸고 겨울엔 손이 얼어 가는 줄도 모르고 그렸다. 무엇이 그토록 내 심장을 뛰게 하고 미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토록 원했던 나의 길 말이다.     


졸업하자마자 전시 계획서와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문화예술회관을 찾아갔다. 대구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전시장이었다. 하지만 2005년부터 그곳에서 자주 전시를 했었고 내가 학생들 대표로 전시 집행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익숙한 곳이었다. 일하는 직원분들과도 친하게 지냈으니 내 집처럼 편하기도 했다. 1층 3전시관을 신청했고 전시 날짜가 2008년 7월 15일로 잡혔다. 첫 개인전이 의외로 수월하게 잡혀 가슴 뛰게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함도 밀려왔다. 재료에서 오는 갈등 때문이었다. 유화로 그림을 그렸지만 두껍게 물감을 올려가며 바르는 게 싫었다. 남들은 마티에르가 느껴져 유화 그림을 무척 좋아하지만 나에게 유화는 그냥 불투명 그 자체였다. 계속 덧발라서 올리거나 스킬을 사용하여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싫었다. 마치 가식처럼 느껴졌다. 난 있는 그대로의 투명하고 맑고 거짓 없이 순수한 것을 추구했다. 그래서 온전히 내가 느끼는 내면적인 것과 나의 관념을 꾸밈없이 나타낼 적합한 재료를 찾고 있었다.   


   

                   연필로 구불한 선을 중첩하여 그린 첫 작품_122x244_합판위에 연필_2006


야외스케치 다니면서도 그 느낌을 표현하는 데 있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료 연구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수채화, 오일 파스텔, 연필, 볼펜 등 여러 가지 도구를 활용해 보았고 캔버스뿐만 아니라 판넬, MDF, 종이 등 다양한 재료를 탐색해보았다. 매일 꿈에 나타나는 이미지를 그리면서 나에게 맞는 재료를 고민했다. 그때 세필로 수채물감을 찍어 선을 구불하게 나타냈다. 우연하게 최민식 사진집을 보게 되었는데 흑백사진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연필로 구불한 선을 중첩하여 사진에 나오는 인물들을 엮어 그리기 시작했다. 가로 122cm에 세로 244cm의 대형 사이즈였다. 전쟁의 피해로 갈 곳을 잃었거나 피난을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우는 아이, 간절히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 절망스럽게 앉아 있는 남자를 그렸다. 선으로만 그렸을 뿐인데 명암의 조절이 가능했고 구불한 선들이 슬픈 감정을 깊숙하게 이끌어 내고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좀 더 가늘고 섬세한 도구로 볼펜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답답하게 덧바르지 않고도 명암이 표현되고 고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맑은 상태, 그것은 빈 여백에 대한 추구였다. 빈 여백의 미는 비움과 침묵의 의미가 있다. 비어있지만 채워져 있고 긴 시간 공을 들여 채웠지만 비워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꽉 찬 동시에 텅 빈 상태, 그렇게 볼펜 그림이 탄생되었다. 보통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3개월에서 6개월이다. 볼펜 0.38mm의 아주 가느다란 심을 이용하여 구불한 선을 계속 중첩해 나간다. 중첩의 강도로 명암을 나타냈고 완성하고 나면 중첩된 선들은 점이 되어있었다. 내 그림은 배경과 이미지가 하나이다. 배경을 어떤 공간이라고 한다면, 그 공간 속에 이미지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이미지 속에 공간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수없이 반복하여 선을 그리는 동안 어쩌면 영혼의 기운이 들어갔을지 모른다. 자연과 세계와 우주의 기운이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 기운은 공명으로 울림을 주는 것이지 어떤 모습도 형태도 아니다. 비움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그 안에 들어올 수 있을 테니까. 나의 세계는 그렇게 존재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고뇌와 고통과 진성성으로 말이다. 내가 걸어온 길,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첫 개인전에서 발표했다.  


                                      아직도 가야 할 길_종이에 볼펜_82x122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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