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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자향

'오히'정신

세상의 말들

by Binsom Lee


세상의 많은 문제들 앞에 선 사람들은, 둘로 나뉘기 쉽다. 예스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노라고 말하는 사람들. 이 두 개로 나눠지는 방식은, 세상의 '보수'와 '혁신'을 낳은 인간의 원형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물론, 예스와 노는 문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채택되는 것이기에, 그 자체가 인간 태도의 전형적 특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고 말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는 일본 보수의 성취와 자부심을 한 마디로 드러냈지만, 어쩌면 그렇게 말하고 있을 그 무렵이 '노(no)'를 잃어가는 무렵이었다는 진단도 있다.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이이에(いいえ)'라고 하지 않고 '노'라고 쓴 것 또한 오랫동안 입방아를 찧었다.


변증법은 '노(no)'의 힘을 활용한다. 상식과 이성과 합리와 논리와 관행과 전통과 권력과 규율과 가치와 같은, 이미 잘 짜여져 있는 프레임들이 '예스'와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을 주목한다. 굳어있는 세상을 깨고 흔들어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상식과 이성과 합리와 논리와 관행과 전통과 권력과 규율과 가치 같은 것들에 대해 '일단 노'를 함으로써 고정된 분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존의 모든 상식과 가치를 의심하는 것. 그 부정(否定)이 가려지고 숨겨지고 폐기된 옳음을 되살려내어 진실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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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계는 어떤 나라의 '노(no)' 때문에 간을 졸였다. 바로, 그리스다. 이 나라는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하여 유럽 채권단들이 내놓은 국제금융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최악의 상황'으로 직진할 수도 있는 '노'를 선택해버렸다. 그들이 '노'를 선택한 것은,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한 합리적인 행동일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oxi)'의 추억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1940년 10월28일 이탈리아 베니토 무솔리니는 알바니아를 점령한 뒤 기고만장한 목소리로 그리스정부를 향해 선택을 요구했다. "이 조무래기야. 우리 군대가 들어가는 것을 환영해줄래? (아니면 우리한테 총 맞을래?)" 이렇게 리얼하게 말했을 리야 없지만, 톤은 비슷했을 것이다. 당시 그리스는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나라의 체면을 구기더라도 국민의 희생을 줄이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국치만은 피해야 하는 것이냐. 그 고민 끝에 내놓은 해답은 이것이었다. "오히(oxi)!" 요즘 말로 표현하면 "난 반댈세!"이다. 이 '반댈세'로 그리스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혹독했지만 그 정신만은 국민들의 가슴 속에 깊이 내장됐다. 그들은 전쟁이 끝난 후 이 날의 용감한 결정을 기념하기 위해 '오히데이'를 만들었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자존심은 꺾지 않는다는 그리스의 '오히' 배짱이, 이 참담한 경제전쟁 속에서 재연된 셈이다. 국가부도가 이런 배짱만으로 이겨낼 수 없는 것임을 우리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렉시트(그리스의 이탈)로 유로존 붕괴로 가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채권국들의 고민을 그리스가 역이용한 것일수도 있다.

예스와 노는, 세상을 격동시키고 분발시키는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하고, 불행과 고통과 전쟁을 낳는 결정적 분기점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오히'는, 국가 속에 흐르는 DNA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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