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스코틀랜드 속으로
고색창연한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건물들 사이에서 풍겨나오는 음습한 냄새들은 호기심을 돋울 만하다. 역사의 행간 속에 파묻혀있는 미스터리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 거기엔 약간의 담력과 기억과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여행가방 안에는 얇은 역사책 한권 쯤이 필요하다.
1. 살인 - 런던 타워 미스터리
1674년 영국 템즈강변에 있는 요새이자 감옥인 런던 타워에서 2세기 전에 살해된 두 왕자의 유골이 발견된다. 이들은 에드워드 4세의 아이들이다.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당시 궁정의 복잡한 음모와 갈등이 그들의 죽음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 의견은 대체로 두 가지로 갈라진다. 하나는 이들의 숙부인 리처드 3세가 죽였다는 주장이고, 또 하나는 이들의 매부인 헨리 7세가 살인자라는 견해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는 앞의 주장에 힘을 보탠다. 리처드 3세는 사악한 곱추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런 견해에 대해, 장미전쟁에 이르게 한 두 가문인 요크셔가(하얀 장미)와 랭커스터가(붉은 장미)의 암투가 개입된 이 살인이 일방적으로 리처드를 매도하는데 이용되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복잡하게 얽힌 스토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두 왕자의 아버지 에드워드 4세는 바람둥이였다. 한 여자와 결혼한 뒤 그녀의 정조를 뺏고는 다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이른 바 중혼(重婚)이다. 두 왕자는 중혼한 왕비인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태어났다. 왕실 법규로 보자면 적통(嫡統)이 인정되지 않는다. 에드워드는 이같이 겹치기로 결혼을 한 사실을 숨겼다. 그런 가운데 엘리자베스는 아들에게 왕위를 계승시키려는 꿈을 키운다. 그런데 에드워드에게는 동생이 둘이 있다. 그중 하나는 반란죄로 처형을 했다. 막내 동생인 리처드는 어질고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에드워드가 갑자기 죽게 되었을 때, 그는 막내에게 왕실과 왕자를 보호할 권한을 준다. 그는 왕비의 음모를 눈치챘는지, 엘리자베스 일족들이 득세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고는 숨을 거둔다. 에드워드 사후에, 리처드와 엘리자베스 간에 ‘왕자 쟁탈전’이 벌어진다. 왕자를 옹립하는 쪽이 권력을 잡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경쟁에서 리처드가 한발 빨랐다. 리처드는 두 소년을 데리고 런던으로 와서 대관식을 치른다. 그런데 소년 에드워드가 왕이 된 지 사흘 만에 의회에서, 리처드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의회가 왜 그랬을까. 이 대목에는 명쾌한 답이 없다. 아마도 에드워드 4세의 중혼 사실이 밝혀져, 소년 에드워드에게 왕위계승권이 없다는 판단이 나온 듯 하다. 소년들은 리처드의 명령에 따라 런던 타워의 ‘왕실아파트’에 살게 된다.
이후 리처드 3세는 2년 정도 집권을 하다가, 엘리자베스와 결탁한 헨리 튜더가 일으킨 모반에 죽게 된다. 헨리 튜더는 헨리 7세가 된다. 리처드와 헨리가 정쟁을 벌이는 와중에, 런던 타워에 사는 왕자들에 대한 소식은 역사 속에서 슬며시 사라진다. 그러다가 200년 뒤에 화이트 타워(백탑)의 계단 아래에서 뼈로 발견된다. 과연 누가 죽였는가. 오랫 동안 리처드가 죽였다는 것이 정설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데 리처드는 에드워드 4세의 중혼이 밝혀진 상황에서 왕자들을 죽일 이유가 없다. 자격 미달의 그들이 왕위를 노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헨리가 죽였을까. 그럴 가능성이 있다. 헨리는 엘리자베스의 딸과 결혼을 했다. 왕위계승권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리처드의 중혼’을 밝힌 의회의 법이 문제였다. 헨리는 이 법을 무효화하려 했다. 그런데 리처드가 중혼을 한 게 아니라면 왕자들의 왕위 계승권이 되살아나게 된다. 자신의 아내가 복권을 하는 건 좋은데, 오빠들이 왕의 적통이 된다면, 그간의 노력이 아무 소용도 없지 않겠는가.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살인이 채택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영국에선 이 문제를 놓고 심심하면 논쟁을 벌인다. 1984년 런던의 텔레비전에서는 변호사와 판사들을 출연시켜 리처드 3세에 대한 모의재판을 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재판에서 제출된 증거들을 검토한 배심원들은 그가 무죄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문제의 핵심은 리처드가 왕이 된 직후에 왕자들이 죽었는가, 아니면 헨리가 왕이 된 뒤에 죽었는가이다. 이 시기가 2년 정도 된다. 리처드가 죽였다면 12살, 10살이며, 헨리가 죽였다면 14살, 12살이다. 1933년 런던병원의 의사가 뼈를 분석한 결과 12살과 10살로 나왔다. 이후 그 나이 소년들의 뼈 치고는 너무 크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그리고 에드워드가 골수염을 앓고 있어서 치아 성장이 지체되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1897년 런던고고학회는 이 왕자들의 뼈로 봐서 13살, 11살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살인자는 리처드다. 그런데 골수염이 나이를 1년 지체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반영한다면 다시 살인자는 헨리가 된다. 왕자들이 갇혀 있던 곳은 블러디 타워(혈탑)였고, 죽임을 당해 묻힌 곳은 화이트 타워(백탑)이었다. 혈탑과 백탑 사이에서 일어난 미스터리를 따라가며 세기의 음모와 피냄새를 맡아보는 일, 으스스하지 않은가.
런던 타워 가는 길 ;
테임즈 강변에 있다. 런던 동쪽의 타워 브리지 앞에 우뚝 솟아 있다. 지하철 ‘타워 힐 서클’(Tower Hill Circle)과 버스 42, 78번을 타면 갈 수 있다.
입장료 ; 8.30 파운드.
2. 괴물 - 네스호 미스터리를 찾아가다
스코틀랜드의 인버네스에 있는 컬로덴 하우스는 1788년에 지어진 고색창연한 호텔이다. 컬로덴은 하일랜드군이 잉글랜드군과 싸우다 불과 40분 만에 참패하고 퇴각한 수치스런 장소다. 컬로덴 하우스는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아주 널찍한 정원을 앞에 두고 단아한 자태로 서 있다. 호텔의 관계자도 스코티시들이라 이 전쟁에 대해 오래 언급하는 것을 싫어하는 표정이었다. 다만 밤의 객실에서 푸른 창 밖으로 추적이며 우는 빗방울 소리가, 지나간 시대의 원혼들의 울음처럼 들려왔다. 건물 위에서 가을마다 물들 핏빛 담쟁이는 그저 무심한 자연의 풍경 만은 아닌 듯 하다.
인버네스(Invernss)의 인버(Inver)는 ‘하구(河口)’라는 의미다. 인버네스는 ‘네스 강 하구’이다. 네스 강은 바로 네시가 출몰한다는 그 강이다. 이 지역은 네시 특수를 누리는 곳이다. 어린 시절 월간잡지인 ‘소년중앙’이나 ‘어깨동무’에서 우린 네시를 만났다. 35년이 훌쩍 넘은 시절의 얘기다. 그러니까 네시는 우리에게 더 이상 ‘괴물’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오랜 친구같은 존재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교차하는 뒤엉킨 감정으로 괴물에 열광했다. 이제 그 괴물의 주소지로 찾아와, 문득 닥쳐올 미지와의 조우를 두려워하며 호수가를 서성거린다.
네스호는 길이가 약 35킬로 미터이며 폭은 1.8킬로 미터로 길쭉한 호수이다. 스코틀랜드의 양쪽을 마치 케익 자르듯 나누고 있는 ‘그레이트 글렌’(거대한 골짜기)이 이 호수의 모양새다. 깊이는 무려 290미터에 이른다. 인간이 속속 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그래서 한강보다는 ‘괴물’이 서식하기에 좋아보이는 물 속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인버네스는 호수의 북쪽 끝이다. 이곳에서 남쪽 끝인 포트 오거스터스까지 도로가 놓인 것은 1933년이었다. 그 전까지는 이 호수는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이었다. 길이 생긴 그해 4월 14일 오후 3시경에 호텔 주인인 맥케이와 그의 부인이 인버네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맥케이 부인이 호수를 가리키며 말한다. “존. 저게 뭐죠?”
호수의 한 복판에서 수면이 마구 어지럽혀져 있다. 오리가 놀고 있다고 보기에는 소용돌이의 면적이 너무 넓었다. 맥케이도 걸음을 멈췄다. “어? 저게 뭐야?” 마구 흔들리던 강의 수면 한 복판에 거대한 동물같은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동물은 부두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등에 두 개의 혹이 비뚤배뚤하게 나있는 것을 목격했다. 동물은 한 바퀴 쓰윽 돌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맥케이 부부는 이 놀라운 장면에 대해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웃었지만, 호수의 관리인으로 일하던 알렉스 켐벨이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는 ‘인버네스 쿠리에’의 현지 통신원이었다. 맥케이 부부의 네시 목격담은 1933년 5월 2일자에 처음 신문에 실린다. 기사를 본 그 신문의 편집장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들이 말한 대로의 크기라면 그것은 정말 괴물이다.” 네스 호의 괴물이란 말은 이런 과정을 거쳐 생겨난다.
1933년 11월 네시는 처음으로 사진에 찍혔다. 영국 알루미늄 회사에서 일하는 휴 그레이라는 사람은 일요일 맑게 갠 아침에 네시를 목격하고는 카메라를 들이댔다. 200미터도 안되는 거리였다. 괴물이 50센티미터 쯤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셔터를 눌렀다. 선명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괴물은 카메라 속에 들어와 있었다. 5번 셔터를 눌렀는데 한 장을 제외하고는 너무 흐렸다. 이 사진은 12월 6일자 스코틀랜드의 ‘데일리 레코드’지와 ‘데일리 스케치’ 지에 게재됐다. 이날 사진에는 전혀 수정한 흔적이 없다는 코닥 필름사의 주석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이를 본 글래스고 대학의 동물학 교수 그람 커는 “살아있는 동물의 사진으로 보는 건 넌센스”라고 반박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네시 진위논쟁의 시작이다.
1959년 팀 딘스테일이란 항공 기사는 16밀리 영상 카메라를 들고 네스호를 찾는다. 그는 5일간 허탕을 쳤다. 돌아가기 전날 포이어즈 호텔 근처에서 물 위를 움직여가는 무엇인가를 보았다. 쌍안경으로 살펴보니 등의 혹이 보였다. 영상 촬영기를 꺼내 들었다. 헤엄쳐 달아나는 동물을 찍었지만 곧 필름이 얼마 없었다. 괴물은 15미터의 필름 속에 들어있었다. 이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소개되었고 관심은 증폭되었다. 이해 6월 대대적인 과학조사팀이 파견됏다. 음향측정기와 카메라 장치를 갖춘 이 팀은 괴물의 먹이가 될 만한 곤들매기 떼가 수심 30미터에서 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듬해에는 모터보트를 탄 가족 앞에 괴물이 나타났다. 그들은 보트를 향해 직진하는 통에 충돌할 뻔 했다고 주장한다.
네시에 대한 목격담들은 괴물의 형태와 크기를 짐작하게 하지만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다. 혹이 달린 연체의 거대한 달팽이나 뒤집힌 보트같은 형상이라는 의견도 있고 얼굴이 불독을 닮았다는 주장도 있다. 형상과는 상관없이 이상한 공포감이 밀려오는 점 또한 인상적인 대목이다. 이런 관점을 토대로, 괴물은 어떤 형태의 투영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믿음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홀로그램같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쨌거나 네시는 스코틀랜드의 신비감을 돋우는 둘도 없는 관광상품이며, 이 고장의 훌륭한 수입원이기도 하다. 네시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어딘가에 존재하는 미지의 생물에 대한 경외감이 만들어낸 이 시대의 신화일지 모른다. 인버네스 부근의 호텔들은 네시를 보려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세계의 나그네들이 강변의 창을 요구하며 날마다 들어온다. 네시호는 당장이라도 배를 가르고 괴물을 내놓을 듯이 철썩이며 으르렁거린다.
인버네스와 클로덴 하우스 가는 길 : 런던 히드로 공항 - 20분- 게트윅 공항(국내선 전용) - 1시간 55분 - 인버네스 공항 - 1시간(택시로 이동) - 컬로덴 하우스
숙박료 ; 싱글룸 175파운드, 더블룸 240파운드, 가든 맨션 하우스 280파운드
(스코틀랜드식 아침식사 포함)
전화 01463 790461 인터넷 사이트 www.cullodenhouse.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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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폐허 - 발포어 캐슬에서의 핏자국
스코틀랜드의 북부해안에서 6마일 쯤 떨어진 오크니 제도는 바다 속의 보석같은 섬들이다. 70여개의 섬 중 사람이 사는 곳이 20곳이다. 오크니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은 메인랜드라고 불리는데 중심지인 커크월(공항이 있는 주도(州都))과 스트롬니스(중심 항구가 있는 곳)는 거기에 있다. 스트롬니스에서 약 20분 가량 배를 타고 들어가는 샤핀세이(Shapinsay) 섬에 있는 발포어 캐슬(Balfore Castle)은 수수께끼같은 성이다.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고 지도상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스코틀랜드 최북단의 캐슬 호텔이다.
이 성은 데이비드 발포어(David Balfour)라는 사람이 1796년에 지은 여름 별장이었다고 한다. (발포어 선언을 한 영국 외상 이름은 아더 제임스 발포어(Arther James Balfour)인데 같은 가문인듯 하나, 관계는 알기 어렵다.) 이 집은 1848년에 ‘캘린더 하우스’로 개축된다. 일주일을 상징하는 7개의 탑과 12개월을 상징하는 12개의 문, 그리고 365개의 창문을 달았다. 여름 한때를 즐기기 위해 이토록 장중한 성을 지을 정도라면 그 집안의 권력과 재산이 가히 짐작이 간다. 1960년 발포어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 죽었을 때 그의 네 아내에게는 자손이 없었다. 성은 폴란드인 기병부대 출신인 타데스 자와드스키(Tadeusz Zawadski) 대장에게 넘어간다. 소련군이 1940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폴란드인 25,700명을 카틴 숲(Katyn Forest)에서 학살했을 때 그는 그곳을 탈출했다. 그리고 걸어서 유럽을 횡단하여 이듬해에 영국으로 왔다. 그는 망명한 폴란드 부대에 다시 들어가 오크니 섬에 주둔하게 된다. 이 섬에서 그는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고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널려있는 낚시터들을 사랑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스코틀랜드 여자와 결혼을 한다. 이들은 폐허로 허물어져가고 있는 성을 사들인 뒤 정성껏 수리를 해서 현재의 호텔로 바꿨다. 호텔을 실제로 맡아 운영하는 사람은 페트리샤(Patricia Lidderdale)라는 처녀이다.
일행이 머무른 객실 하나는 귀공녀가 머무르는 숙소였다. 귀엽고 화려한 침대와 아기자기한 방의 꾸밈새들. 여기에 머물렀을 어느 소녀의 사각이는 옷깃 소리가 들릴 듯한 분위기였다. 내가 잠을 잤던 방은 바다가 잘 보이는 가운데 방이었다. 널찍한 욕조에서 바라보는 커크월 부두(Kirkwall Bay)는 한가로움을 느끼게 했다. 바깥에서 보는 성은, 나그네를 겁주기에 딱 알맞지만 안에서 내다보는 풍경은 칸칸마다 한 편의 그림처럼 예뻤다.
페트리샤는 밤 늦게 우리 일행과 벽난로를 피워놓은 거실에서 발렌타인 위스키를 마셨다. 천정 부근의 높은 벽을 돌아가며 옛 사람들의 조상(彫像)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너울거리는 불빛을 받아 음산한 기운을 발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유령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 고성(古城)에서 일어난 일이란다. 한 남자가 잠을 자는데 침실 밖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 깨었다. 일어나서 문을 열어보니 복도 저끝에 잠옷 차림인 듯한 낯선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호기심에 그는 따라가 본다. 그녀는 어느 새 침대에 누워있다. 다가가서 그녀를 본 순간 그는 기겁을 한다. 그녀는 목이 없었다. 이런 얘기가 나오자 페트리샤와 함께 일하는 짐은 이 호텔에선 가끔 유령을 만날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오랫 동안 버려둔 성이라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아직도 정확하게 다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발포캐슬의 주인 자와드스키는 이곳에 온 뒤에도 카틴에서 일어난 대학살의 악몽에 시달렸을 듯 싶다. 성의 어둑한 자리마다 낯익은 얼굴들이 유령이 되어 서있지 않았을까. 그가 본 환영(幻影)들은 곧 캐슬의 유령으로 소문이 났을 법하다.
복도 곳곳에 있는 동물상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들, 먼지와 썩어가는 나무냄새 그리고 놋쇠의 녹 냄새가 섞인 듯한 퀴퀴한 냄새들, 계단이나 회랑의 나무들이 내는 삐꺽이는 소리들, 그리고 벽마다 걸린 대개 우울한 표정의 초상화들이 고성(古城)의 쓸쓸하고 눅눅한 정취를 더했다.
위스키에 취해 방으로 돌아가는 길, 계단 아래에 접혀 엎드린 내 그림자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여기엔 우리 일행만 있는 것 같지 않다. 지난 200여년간 이 성에 머무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시간의 주름 사이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동거하고 있는 느낌이다. 방 안에 들어온 나는 소파에 앉아 밤바다를 바라본다. 문득 등에 걸쳐진 천을 뒤집다가 기겁하듯 놀란다. 낡은 천엔 핏자국 같아 보이는 얼룩들이 가득하다. 공포감이 엄습해온다. 방 밖에서 문득 쿵쾅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지금이 여름이던가.
발포어 캐슬 가는 길 ;
오크니 섬에 있는 커크웰 공항 - 항구까지 택시로 7분 - 샤핀세이까지 배로 25분.
전화 01856 711282 이메일
balfourcastle@btinternet.com
하루 숙박료는 100파운드에서 120파운드이다. (약 19만원 정도. 저녁과 아침식사 포함.) 어린이는 30% 할인되고 사흘 이상 머무르면 10% 깎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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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Canon DIGITAL IXUS 75 (1/8)s iso800 F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