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샘 가신 날에, 그 소주 한 잔을 올리고 싶은 마음
신영복선생님의 부음을 들은 밤, 가슴이 휑해지면서 목이 칼칼해졌습니다. 그 영전에, 당신이 보통사람들의 술을 위해 흔쾌히 써주셨다는 '처음처럼' 글씨가 꿈틀거리고 있는 소주 한 잔을 부어 올리고 싶어졌습니다. 그 고결한 뜻이 눈이 쏟아지는 날에 부재의 그리움을 돋워, 이 소주의 매출이 문득 올라갈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문득 '처음처럼'이란 말의 뜻을 헤아려 봅니다.
*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 선고를 받을 때의 신영복선생.
초심(初心)은 처음에 품는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의 설레는 마음과 깨끗한 열정, 그리고 아름다운 의도와 힘있는 의욕. 잘될 것이라는 낙관과 자기를 여미는 조심스러움, 그런 것들에 대한 예찬인 줄 알았습니다.
처음을 잘 지키는 일의 소중함, 어려울 때 처음을 되새기고 잘못 든 길을 수정하고 약화된 의욕을 추스르는 그런 마음의 등대가 초심인줄 알았습니다.
초심은 가장 어리고 순결한 시간에 생겨난 고결한 영혼의 빛, 나의 어머니와도 같은 완전한 샘물, 나를 태동한 역사의 첫장, 고개 돌리면 거기 언제든지 나를 향해 미소짓는 시간의 반려같은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초심은 나의 과거 어느 일점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먹는 마음이란, 흘러가버린 마음이 아니라, 내가 가려고 하는 미래의 지향점에다 점찍어놓은 마음이기에, 어쩌면 늘 내 앞에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초심은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에 했던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고난을 겪고 실패를 하고 문제를 만나면서 점차 매조져지고 점차 또렷해지는 눈 앞의 별빛이었습니다. 초심은 처음에는 어렴풋하게 보였던 것의 의미를 깨닫는 긴 행로를 비추는 별빛이었습니다.
초심은 내가 품은 생각이 아니라 내 길에 나타난 별이 내게 알려주는 빛이었습니다. 나는 때로 길을 잃고 나는 때로 눈앞이 캄캄하고 나는 때로 울며 불안해했지만, 나의 가장 먼 미래에 있는 나의 처음을 생각하면서 다시 걸을 수 있었습니다. 나를 이끄는 진북의 별. 처음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영원의 영원한 깜박거림같은 것. 그 '처음'이 늘 '처음'인 것이 바로 '처음처럼'이었습니다. 첫마음의 미혹들이 한겹씩 걷히면서 조금씩 완전해지고, 처음에 좋았던 것들의 그렇지 않은 진상을 확인하면서 조금씩 깨단해지는 사랑. 삶이란 어쩌면 초심에서 초심으로 이어진, 별들의 길입니다. 저 초심의 먼 미래에서 나는 희망을 빌려 씁니다.
이를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저 먼 미래에까지 닿아있는 첫사랑입니다. 처음에는 희미하던 빛이 갈 수록 밝아지며 마침내 내가 그 빛에 속하게 되는, 새벽길같은 것입니다.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존재를 이끌고 완성하는 내면의 빛입니다. 초심은, 내가 무엇이며 내가 왜 여기에 태어났는가에 대한 질문에 천천히 답하는, 누군가의 대답같은 것입니다. 생각할 수록 고마운, 단 한번의 기회가 계속 주어지는 일입니다.
내 가장 마지막까지 가 닿는 첫 설레임의 말,
처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