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라,희망없이

by Binsom Lee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데도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에게. 소통의 한쪽이 끊긴 캄캄한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언젠가 사랑과 우정의 차이를 얘기했던가. 우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관계의 중간에 놓이는 것이고, 사랑은 사람과 사람 그 각자의 마음 속에 깃드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정은 혼자 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사랑은 혼자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사랑의 비극은, 혼자 가질 수 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혼자 가지고 있으면서도, 두 사람이 가졌다고 믿는, 미친 상념이라고.


사랑은 어쩌면 영원히 서로 내통할 수 없는, 자기 카드에 관한 기억일 지 모른다고. 각자 자기 카드를 꺼내보며 상대의 카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에 블과하다고. 가장 행복한 사랑과 가장 불행한 사랑의 차이는, 그 틀린 카드를 마음이 꿰맞추는 봉합 솜씨의 차이에 다름 아니라고. 끝내 이룰 수 없는 사랑, 한쪽에서 더 이상 다른쪽으로 나아갈 수 없는 정념을 위로할 수 있는 건, 모든 사랑이 저토록 가엾은 자기 기만일 뿐이라고 속삭여 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스무 살 나를 본다. 사랑하면 할 수록, 사랑한다고 말하면 할 수록, 사랑을 강변하면 강변할 수록,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달아나고 숨던 그 사랑.


사랑은 쥐는 순간 도망가려 미친 듯이 발버둥치는 어린 새같이. 나는 쥐었고 그는 날개깃 몇 개를 내 손에 남겨둔 채 날아가 버렸다. 이후 내내 나는 그걸 나의 사랑이라 믿었고, 그 날개깃을 그가 나를 사랑한 흔적이라고 믿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가슴 속에 화르륵거리는 자기 사랑만 보인다. 오직 나를 아름답게 한 것은, 나의 청춘과 나의 슬픔을 아름답게 한 것은, 저 날개깃 하나의 기만이었음을. 그의 마음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내 상상의 너울과의 사랑. 결국 나를 사랑한 나에 다름 아니었음을./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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