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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Apr 23. 2017

뚱뚱한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

생체시계에 대한 의학적 소견




뚱뚱한 사람의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 어느 러시아 생의학(?)자가 쓴 책의 제목입니다. 생체시계에 대한 의학적 소견들을 담았더군요. 왜 뚱뚱한 사람의 시간은 더 빨리 흐르느냐? 뚱뚱한 사람의 몸은 더욱 빠르게 노화를 진행하고, 더욱 빠르게 질병에 취약해지는 현상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저 표현의 핵심은, 모든 사람에게 흐르는 시간의 속도가 같지 않다는 것일 겁니다. 우린, 막연히 반대로 생각해왔거든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시간이란 아주 평등하게 같은 속도로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뚱뚱한 인간과 야윈 인간은 다른 속도의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겁니다. 시간이란 모두에게 일정한 흐름의 간격이 아니라, 몸과 정신에 적용되는 규칙들의 표현이란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 몸은 늙습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 천천히 늙고 빨리 흐르면 빨리 늙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뚱뚱한 사람의 시간에 대한 관찰들은, 우리의 시간이 맞추고 있는 시침과 분침의 속도를 재고하게 합니다. 우리의 몸은 마음보다 빨리 늙어가고, 우리의 마음은 몸보다 또 빨리 늙습니다.


자주 허클베리 핀의 시간을 얘기합니다. 사실 시간이란 개념은 매우 역사적이고 관습적이고 사회적인 ‘인식’의 표현입니다. 우린 시간이 흐르면 늙어죽는다는 걸 압니다. 그 시간으로 수명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매우, 상대적인 문제라는 걸 자주 까먹습니다. 허클베리 핀은 어느 날 가출하여 미시시피 강변에 팔을 베고 누워 잠자고 깨어나고 다시 잠듭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눈금도 없이 펼쳐진 광막한 벌판같은 것이란 걸 깨닫습니다. 그는 제 멋대로 시간을 씁니다. 빨리 가고 싶으면 빨리 움직이고 느리게 가고 싶으면 느리게 움직입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는 배꼽시계면 충분합니다. 졸리면 눈을 감는 눈꺼풀시계면 충분합니다. 그게 허크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잠깐만 시간의 초침과 분침을 풀어놓으니, 참으로 시간이 무한하더라는 겁니다. 아무리 써도 줄지 않고 쓴 테가 나지 않는 바로 그 무한시간. 그게 삶에게 원래 주어진 시간이라는 겁니다. 시간을 알뜰하게 쓰고 아껴 써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참으로 덧없이 늙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옛날 중국영화를 보면서, 참 흥미로운 게 있었습니다. 그들은 칼을 맞고 화살을 몸에 꽂은 상태에서, 참으로 많은 얘기를 합니다. 인생 철학에서부터 지금 당면한 문제의 핵심과 앞으로 나아갈 길과 옆에서 울먹이며 듣고있는 사람들이 해야할 미션과, 그들이 챙겨야할 보험의 문제까지 다 이야기한 뒤에야 죽습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그 유언 듣다가 먼저 죽을 상황입니다. 나는 거기에 중국인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 말은 다 하고 죽어야 하기에, 할 말을 다 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죽습니다. 임종을 지켜보던 자식들이 짝다리를 짚고 여러 번 왼쪽 오른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 뒤에야 드디어 눈을 감습니다. 급박하던 한 사람의 시계 태엽을, 임종에 가서야 느리게 풀어놓았던 그 중국인들은, 시간의 비밀을 알고 있었을까요.


누구나 같은 시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끝나면 죽는다,라고 생각하는, 산술적 시간은 기실 '시간의 진실'을 놓치게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뒤돌아보는 순간에야 화살처럼 흘러간 시간을 느끼며 무상해합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흘러가버린 시간을 되찾는 꿈을 꿉니다. 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적인 눈금이 아니라 다만 시간대(帶)를 형성한 지리적 공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는 '전날의 시간'을 찾아 갑니다. 이 소설은 시간의 불가역성(不可逆性)을 의심합니다. 흘러가는 시간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면 그때의 삶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시간이 멈춘 어느 곳에 낙원을 설계해온 상상력이기도 하였습니다. 낙원에는 대개 시간이 흐르지 않거나 아주 긴 시간이 압축파일처럼 주름진 채 담겨있습니다. 

 어떤 시간을 사느냐의 문제는, 우리 삶에서 가장 긴요한 과학이며 철학이라고 가끔 생각해 봅니다.시간의 길이보다 시간의 품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시간을 조각조각 나눠서 써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낼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바쁜 삶은, 산술적 시간 개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저는 오히려 쓸데 없는 시간을 좀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쓸데 없는 시간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야 말로 각자에게 존재하는 고유한 시간을 찾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쓸데없다고 생략해버렸던 그 시간 속에 사실은 생략할 수 없는 무엇이 숨어있지 않나 하는 겁니다. 시간을 느리게 사는 지혜는, 시간에다 붙여놓은 의식적인 눈금을 지워버리는 일입니다. 쓸데 없는 시간 만으로 채워진다면, 그것이 오히려 낙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합니다. 요즘 부질없이 바쁘다 보니, 불쑥불쑥 생겨나는, 쓸데 없는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binsom@copy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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