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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Apr 23. 2017

라마크리슈나

진정 이해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침묵 뿐이다

라마크리슈나는 19세기 인도의 구루이다. 미국과 유럽까지 그의 이름은 알려졌다. 그는 소유물 하나 없이 소박한 삶을 살았다. 특히 금과 은을 너무나 혐오한 나머지 단순히 몸에 닿는 것 만으로도 몸서리치곤 했다. 정규교육은 전혀 받은 바 없었고 산스크리트어나 영어도 몰랐으며 체계적으로 철학이나 신학을 공부한 적도 없었다. 그가 아는 모든 것은 성인들의 삶을 살피며 깨달은 것들과 기도를 통해 얻은 것들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새로운 신앙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낡은 것을 가르칠 뿐입니다." 





그가 세계의 종교에 기여한 위대한 점은 모든 종교의 핵심을 들여다보면 같은 신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준 것이었다. 같은 호수의 물을 떠놓고 힌두교도들은 '잘'이라 부르고, 이슬람교도들은 '파니'라 부르며, 기독교도들은 '워터'라 부른다. 이름이 다를 뿐인 그것의 실체는 하나일 뿐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내 종교만 진실이고 다른 종교는 거짓이라는 태도는 좋지 않다. 올바른 태도는 이런 것이다. '나의 종교는 옳다. 그러나 다른 종교들이 옳은지 그른지,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인간이란 신을 깨닫지 않고는 신의 진정한 본질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라마크리슈나의 '두 아들 이야기'는 영성(靈性)에 관한 유명한 통찰이다. 몇 년 동안 브라만의 지혜를 배우고 온 두 아들에게 아버지는 주문한다. 네가 무엇을 배웠는지 내게 말해줄 수 있겠니? 그러자 큰 아들이 베다의 귀절을 암송하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작은 아들에게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작은 아들은 아무 말도 않고 그저 방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라마크리슈나는 이렇게 말한다. "진정 이해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침묵이다." 





라마크리슈나는 어린 시절 마을 앞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자주 보았고, 마을 여인숙에 머물고 있는 금욕주의자들과 종교에 몸담을 이들을 만나 여행과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여섯 살 때부터 그는 힌두교 서사시를 외며 놀았으며,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들판에서 종교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이를 테면 어린 시절부터 그런 '끼'가 있는 아이였던 모양이다. 열여섯살 때 학교를 경영하는 형에게 가서 교육을 받았으나 곧 공격적이고 탐욕스러운 교육 방식에 회의를 품고 스스로 퇴학했다. 그 뒤는 사원의 성직자로 일하는 다른 형에게로 갔는데, 병에 걸린 그 형이 자신의 임무를 대신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성직자가 되었다. 그가 접했던 신은 칼리 여신이다. 이 신은 목을 벤 머리와 피묻은 칼을 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여신이다. 만물의 어머니이자 파괴자를 상징하는 이 신은 삶과 죽음, 기쁨과 고통을 함께 주는 모순의 집합체로 일컬어진다. 라마크리슈나는 이 사원에서 금식기도와 화장실 맨손청소, 그리고 거지들이 먹다남긴 음식 찌꺼기 먹기 등을 실천했다. 

부모들은 가끔씩 무아지경에 빠져 간신히 깨어나는 라마크리슈나가 귀신에 홀렸다고 생각해, 그에게 '정상적인' 삶을 찾아주려 결혼을 시켰다. 하지만 그에게는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는 당시 인도의 관습에 따라 은자가 되었다. 한때 묘지였던, 그래서 귀신이 들끓는다는 숲에서 12년 동안 혼자 살았다고 한다.






그는 영성을 가진 지도자가 초능력을 뽐내는 걸 경계했다. 이런 얘기를 한다. 어린 시절 집을 떠나 성직자가 된 형이 오랜 뒤에 아우를 만났다. 그때 아우는 묻는다. "형은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얻었습니까?" 그러자 형은 아우를 데리고 근처의 강으로 가서, 물 위를 걸어 반대편 기슭으로 가는 기적을 보여준다. 그러자 아우는 사공에게 돈 몇 푼을 집어주고는 배를 저어 형에게 가서 말한다. "그렇게 고행을 해서 얻은 게 내가 돈 몇 푼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런 따위의 일이 고작입니까?" 그는 종교인들의 부드러움과 겸허를 자주 강조하고 있다. 그의 성찰들의 매력은 아주 쉬운 언어와 재미있는 비유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생애 마지막 7년 동안 그는 방문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글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1885년 그는 후두암을 진단받고 의사로부터 더 이상 방문객과 말해서는 안된다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그 지시를 거부하고 이듬해까지 많은 방문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암으로 죽은 게 아니라, 종교적인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에서 고요히 영면했다고 한다. 

라마크리슈나가 남긴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 한 성자가 도시의 어느 길에서 험상궂은 사람의 발을 밟았다. 그 사람은 순간 격노했고 성자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그가 씩씩거리며 가버린 뒤 제자들이 달려와 성자의 몸을 주물렀다. 그리고는 스승에게 묻는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저희들이 누구인지 알겠습니까?" 이때 성자가 대답한다. "그럼, 알고 말고. 바로 나를 친 그 자가 아닌가." binsom@copy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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