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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Apr 23. 2017

사랑, 오미희는 이렇게 말했다

빗방울들이 톡톡톡 부서져 내리며 서늘한 풍경을 수채화로 바림질하는 날

오후에 출근하려는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우산살 안으로 몸뚱이의 반이 채 못들어갔다. 으, 차거. 차창의 와이퍼가 반쯤 훑어준 풍경 안에 아이의 얼굴이 잠깐 보였다 흐려진다. 이마 끝에 흐르는 물방울들을 수습하며 차량들이 듬성듬성한 아파트 지상주차장을 빠져나간다. 창문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오선지 위에 춤추는 콩나물대가리들같다. 건조한 풍경을 헐겁게 열어 젖은 틈으로 소리를 흘려넣는,비의 노래. 내 하얀 자동차는 오선지의 음계를 곡예하는 젖은 음표다.

생각을 돋운 것은 오후 네시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어느 가요프로의 진행자 오미희씨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읽어주는 어느 여고생의 편지. 그 여고생은 어떤 결혼식에 갔다가 주례선생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았단다. 여고생이 주례사에 감동받았다는 상황 설정이 좀 우습잖은가. 아직 결혼을 고려하기에는 어린 나이일 그녀가, 흔히 따분하기 십상인 주례사에서 어떤 감동을 받았길래? 주례선생님은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신혼부부 앞에서 앞으로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축복하였을 것이다.

사랑이라? 그래. 주례선생님의 그 말은 신랑신부 당사자에게는 새록새록 새롭고 놀랍고 떨리는 축복일지 모르지만 거기에 몰려든 하객들에게는 그저 예식장 옆에 예약된 부페를 이용할 시간이나 축내는 잔소리처럼 들리고 만다. 그 소리가 그 소리. 뻔한 썰풀기. 그런 주례사의 일부였으리라.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지금 두분은 사랑의 염원과 열정으로 충만해있음에 틀림없겠지만, 진정 사랑의 온전한 테두리 안에 들어가 있게 되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 아주 훗날일지 모릅니다. 그날까지 인내하고 북돋우며 살아가는 일이 사랑보다 더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이런 예를 드셨단다. 제가 얼마 전 길을 가는데, 곁에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묘하게도 두 사람은 똑같이 검은 안경을 끼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참 별스럽게 멋을 부리는 사람도 다 있다 싶어 한참 바라봤는데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니라 시각장애인인듯 싶었습니다.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이 길을 잘못 들거나 실수하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것이었지요. 괜히 빤히 쳐다본 것이 민망해서 얼른 고개를 돌리고 다시 걸어가는데 마침 제가 들어온 건물로 노부부도 함께 들어오더군요. 그때 아내의 희끗한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어주면서 노신사는 안경을 벗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눈이 정상이었습니다. 그가 안경의 물기를 닦아주려 벗긴 아내의 눈은 감겨져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전 상황을 파악하였습니다. 장애자인 아내를 위하여, 그 아내에게 흔히 쏠렸을, 아까 저의 눈과도 같은 눈길들을 함께 견뎌주기 위하여, 남편도 검은 안경을 썼던 겁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을 겁니다. 아내가 어느 날 실명하고, 얼마 간의 좌절과 견딜 수 없는 불화가 스쳐갔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온전한 부부가 되었습니다. 아픔마저 똑같아지려는 그 검은 안경 속에서 그들은 따뜻한 사랑의 신방을 차렸습니다. 두 아름다운 부부도 그와 같은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고생의 주례사 이야기는 여기서 그친다. 열여덟 열아홉 심금을 울렸을 무엇은 어디에 있었을까? 아름다운 액자소설 속 눈짓처럼 가벼운 뉘앙스 하나가 오늘은 가슴을 젖게 한다.오미희씨는 그 사연을 그녀 특유의 따스하고 슬픈 목소리로 전해준다. 사랑하고자 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그 주례사는 곱게 내려와 앉으리라.

우리가 사랑이란 이름 아래 저질렀던 온갖 교만과 허풍과 사치스러움들에서 처음에 있던 사랑의 원위치로 유턴하게 하는 오후다. 빗방울들이 톡톡톡 부서져 내리며 서늘한 풍경들을 수채화로 바림질해준다. binsom@copy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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