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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Apr 23. 2017

보랏빛 라벤다와 연애하기

나의 생에 걸려있는 당신의 향기와 빛깔

아무도 없는 방 안에 아주 맑은 정신으로 가만히 있으면 사물들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이 비밀을 발견한 사람은 프랑시스 잠이었다. 

안녕하세요? 잠氏. 

장롱은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연애를 건다 할 때의 그 '걸기'와 말을 건다 할 때의 '걸기'는 아마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혼자선 걸 수 없다. 어떤 대상이 있고 걸기 위해 무슨 수작을 하는 행위자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연애를 걸고 말을 거는 게 보통이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건다는 건 못처럼 튀어나온 물건에, 걸릴 수 있는 자락이나 고리를 가진 것이 서로의 형상에 의지하여 함께 붙어있는 걸 말한다. 대체로 거는 행위는, 안전하고 쉬운 자리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고 가파르고 불편한 자리에서 서로의 몸을 빌려 어떤 자세를 유지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연애를 거는 일이나 말을 거는 일도 그럴까. 그 두 가지 일이, 대체로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은, 바로 그 불편한 위치를 말함일까? 어쨌거나 건다고 반드시 잘 걸리는 건 아니다. 그리고 거는 것은 양쪽이 마음을 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혼자서 걸 순 없다. 

그렇다면 아무도 없는 방 안에 아주 맑은 정신으로 가만히 있는 나에게, 오늘 저 보랏빛 라벤다가 말을 걸어온 건, 무엇이 불편했기 때문일까. 그가 말을 건 건 오늘이 처음이었을까. 그가 거울 위에 걸린 건 한 두 달 쯤 됐을까. 그 전에는 창가의 벽에 걸려 있었다. 저 거울을 들여오면서 그는 저기에 자리를 잡았다. 저 빛깔을 보랏빛으로 말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오늘이었다. 나는 저 빛을 바라보면서도 저것을 무슨 색이라고 해야할 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냥 저기 규정되지 않은 색을 하고 걸려 있었다. 그에겐 그게 불편했을까. 그것보다는 이 고요가 불편했는지 모른다. 아니 아무도 없는 방의 정적이야 그에게 익숙한 것이겠지만, 한 사람이 들어앉아 있는 방이 이토록 고요한 것은 그에게 낯설었을 지도 모르겠다. 보통 정적이 계속될 때 그것을 깨는 어색한 헛기침처럼 그는, 내게 쿨럭이며 말을 걸었다. 나를 좋아하세요? 섬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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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보다 깜짝 놀라지 않았다. 의인(擬人)동화에 나오는 개미가 말을 걸었을 때 갑자기 "어? 개미가 말을 하네?"라고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아이처럼 굴지는 않았다. 그냥 그 보랏빛 마른 꽃을 바라보았다.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그런 말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문득 마음도 몸도 한가로워진 내가 거울 앞에 서서 한참 그 꽃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들여다보고 있었다기 보다는 향기를 맡고 있었다. 아직도 향기가 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쪽으로 코끝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때 내 얄팍한 속셈 속에 떠오른 것. - 저 꽃이 가진 향기의 총량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 꽃에서 풍겨 나올 수 있는 향기 또한 끝이 있을 것이다. 저 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여기서 향기를 풍겨왔고 내가 코끝을 갖다댈 때마다 기대한 것 이상의 냄새를 전해주었다. 그런데 아직도 멀쩡하게 전과 다름없는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 꽃이 마른 채로 아직도 향기를 생산하는 내부 공장을 갖추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 그런 기분으로 코를 킁킁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꽃은 그걸 자기에게 연애를 건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랑이란 늘 이렇게 오해로 시작되고 오해의 연속이고 또 오해로 끝난다는 것 쯤은 나도 안다. 저 보랏빛 여자 또한 그 회로를 돌다가 심연으로 사라질 것이다. 나를 좋아하세요?? 뒤쪽의 물음표는 내가 다시 찍은 물음표이다. 그 질문에 대해 다시 반문을 했단 얘기다. 향기를 맡는 행위는, 그 향기에 대한 호감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것을 응시하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해 관심을 높이는 일도 그렇다. 무엇보다 그것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것의 색깔을 이야기하는 일, 게다가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시시콜콜이 쓰는 건, 호감 그 이상의 감정이다. 그걸 저 라벤다가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연애에서는, 추측한 정보 백 가지보다 상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한 마디가 훨씬 힘이 있다. 그러니 그는 그 말을 해놓고는 내가 대답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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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을 가지고 본다면 이 꽃은 괜찮은 매력을 여럿 가지고 있다.우선 다발줄기를 동여맨 얇은 망사같은 띠를 보라. 멀리서 본 그물눈같은 천에선 금빛 광채가 난다. 그러나 아주 노골적인 황금의 기색은 아니고 살짝 겸손하게 채도를 내린 노랑색이다. 띠의 가장자리에는 빛나는 심을 넣어 멋을 부렸는데,  곱게 차린 기생의 옷고름같기도 하나, 내 기억에는 저런 당옷을 입은 사람은 고향마을에 살았던 무녀였다. 그녀는 저 잠자리 날개같은 옷고름을 한 저고리를 입고 마당에 식칼을 꽂으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어린 마음에는, 입 속에 가득 물을 넣어 뿜듯이 뱉는 그 무녀가 공포스런 존재로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갸름한 흰 얼굴에다 귀밑머리가 아름다웠던 청상(靑裳)의 여인네였다. 그런데 저 라벤다양이 그녀의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닌가. 무녀의 옷고름처럼 나풀거리지는 않지만 다발을 묶고난 뒤 살짝 돌려내린 품이 그녀의 춤동작과 그리 다르지 않다. 

물론 저 여인의 매력은 그녀를 두른 띠에서 그치는 건 아니다. 저 꽃은 우리 집에 온 뒤에도 수천 떨기가 떨어졌을 것이다. 실수로 꽃을 스치기만 해도 화르르 떨어져 방바닥에 내려앉는 청자빛 낙화. 꽃을 옮길라치면 숫제 푸른 꽃길이 만들어지는 판이다. 그렇게 떨어졌는데도 아직도 수많은 꽃잎들이 서로 꽃뺨을 부딪치며 줄기다발을 지키고 있다. 저 줄기의 가지런함도 감탄할 만하다. 이 하나의 꽃다발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꽃대들이 잘려나갔을까. 질서라는 말 속에는 늘 열외자에 대한 박해와, 일탈을 잘라낸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 이 꽃다발은 수많은 라벤다들의 아우성 속을 통과해온 빈섬유겐트들이다. 

향기에 대해서도 기록해둘 만하다. 저 작은 꽃송이 하나에서 나는 향기는 보잘 것이 없으리라. 그러나 그것이 백 송이 천 송이가 모이면 달라진다. 한 송이 곱하기 백하고 천하면 그 향기가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둬야 한다. 한 꽃의 향기는 다른 꽃의 향기에 화답하고 다른 꽃의 향기와 버무려져 꽃송이와 꽃송이 사이를 감돌며 다닌다. 꽃향기가 꽃향기를 물고 뒤흔들며 꽃향기를 꽃향기가 다시 간질여 그들 속에는 마치 향기의 거대한 아수라장같은 심연이 생겨난다. 그것들의 일부가 이 방안에 감돌고 내 코끝에 살짝 다가와 앉는 셈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는다. 나를 좋아하시는 거 맞죠? 미스터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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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현실적인 얘기를 해야겠다. 연애란 언제나 뜬구름 잡는 일이지만, 가끔은 영화구경도 가야하고 또 모텔비용도 필요하다. 저 꽃을 얼마 주고 사왔는지를 말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저건 외국 어딘가에서 온 꽃이다. 얼마 전 내가 블로그에 써놨던 '바로 그 김선생님'이 어느날 그의 집에서 놀다 나오는 길에, 내 손에 선물로 쥐어준 것이다. 그때 저 꽃의 고향을 얘기해줬는데 미안하게도 나는 그걸 잊어버렸다. 호주였니? 아니면 동남아 어디? 이제 막 내게 말을 건 라벤다양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마치 처음 보는 여자에게 나이를 묻는 것처럼 실례를 범하는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혹시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꽃한테 고향을 묻네?더구나 이건 '의인동화'도 아닌데 라벤다에게서 그런 소릴 듣는 건 정말 창피한 일이다. 나중에 김선생님에게 다시 한번 묻는 방법도 있겠으나 그 질문을 받으면 그 분은 내 주의의 산만함에 대해 속으로 끌탕을 차실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말로 대략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저 꽃에게는 아주 머나먼 고향이 있고 거기선 지금과는 다른 살아있는 꽃이었다. 아, 미안해. 그렇다고 지금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야.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고 아름다워. 지금은 말하자면 엘리어트가 그의 시 황무지 앞에 예화로 들고 있는 '쿠마에의 무녀'를 닮았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지금은 영생을 살고 있는 거지. 신의 사랑을 받은 그 무녀가 그랬듯이, 지금은 죽고싶어도 죽을 수 없는, 기나긴, 사물의 생을 살고 있는 셈이지. 그런데 그땐 빛도 필요하고 물도 필요하고 공기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고 성기(性器)도 필요한 시절이었지. 그때 얘기지. 그때 너는 그 이국에서 미친 듯 바람을 피우고 살았지. 그때 너의 삶이란 건 바로 그 미친 듯한 바람끼가 전부였지. 누군가를 빨리 만나 화분을 전해주고 다른 꽃을 만들어내는 생의 스케줄을 실천하느라 바빴지. 그때 사진이 좀 필요하겠군. 잠깐 앨범을 들춰보자구.



이건 대학 졸업여행 때의 단체사진이야. 저마다 다 자기가 가장 잘난 것처럼 허리에 손을 차고 찍었지. 함부로 서있는 것 같지만 잘 보면 S자로 굽어진 줄이 보일 거야. 삶의 질서들은 죽은 자들이 오와 열을 맞춘 것처럼 그렇게 정연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지켜서 모두가 편해지는' 질서의 내재율을 가지고 있었지. 그런 시절이었어. 



자, 이건 처녀 때의 독사진이야. 치마를 들어올리고 부끄러운 것을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두는 것이, 너희 꽃들의 특징이지. 사람은 가림으로써 유혹을 더 키우지만, 너흰 그런 농담을 하기엔 너무 경쟁자가 많고 시간이 짧아서 이렇게 속옷 없는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지. 그렇다고 인간들의 사랑이 너희보다 품격이 높다거나 진화되었다거나 하는 말은 하지 말기를...사랑은 진화하는 것이 아니고, 순도의 문제일 뿐이지. 꽃은 위선의 사랑이 없어. 늘 순도 100%야. 보랏빛 살결 참 고운 걸?  한때 저런 시절이 있었다고. 이제 빈섬 방에 팔려와 하루의 대부분을 독수공방으로 보내지만, 저 옛날 사진 한 장 만으로도 다시 수십년을 더 견딜 수가 있다구. 사랑이란, 진행되는 욕망 그 현재형에 있는 게 아냐. 늘 떨어진 곳에 있는 무엇에 대해 고개돌리는 일이지. 라벤다들의 향기는 저 먼 곳의 사랑을 향해 자신의 편지를 전해줄 우편배달부에 지불하는 '화대'같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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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보랏빛이란 지금 한때의 빛이 아니고 오래 전 이국의 햇살 아래서 키워낸 빛깔이라 이거지? 저 작은 꽃송이 하나하나마다 기억은 있겠지. 하나하나마다 태평양을 건너온 파란만장이 있겠지. 그러고 보니 네 꽃빛들이 보랏빛 파도를 이루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네가 여기 온 건 그 보랏빛 때문이 아니란다. 오로지 네가 가지고 있는 그 향기, 그것에 대한 인간의 선호가 너를 붙잡은 것이란다. 향기가 없이, 그 형상 그 빛깔 그대로 어느 이국 땅에 서 있었다면 넌 여기에 오지 않았겠지. 그러니 네가 내게 건네는 그 향기야 말로, 의인동화가 아닌 현실적인 연애걸기이겠지. 

향기에 덤으로 따라온 네 존재 모두를 느끼는 것, 그것은 바로 연애의 프로세스가 아닐까 싶어. 자동차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옆모습이 너무 좋아 한 평생 같이 살기로 한 여자처럼, 혹은 테니스를 치다가 콧속이 땀에 범벅된 한 소녀가 티슈로 코를 푸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당장 연애로 돌진한 희한한 러브스토리처럼, 사랑이란 작은 무엇이 촉발하여 존재 전체를 사로잡는 그런 '비약'의 게임같은 게 아닐까 싶어.그러니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또한 네 향기를 취하기 위해 공연히 부풀리는 말이 아니란 걸 알겠지? 그러니 향기는 사랑의 통로이며 네 존재 전부는 그 사랑이 들어앉는 집이라는 거지. 이때 라벤다는 말한다. 사실 내 향기도 끝나가요. 당신이 정말 내 전부를 사랑한다면 내 향기가 모두 휘발되어버린 후에도 지금처럼 말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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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는 미안해졌다. 그녀의 말이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영혼을 사랑한다고, 그녀의 영혼의 보랏빛을 사랑한다고, 그녀의 앙증맞은 몸과 삶 전부를 사랑한다고 섣불리 말하는 일이란 얼마나 우스운가. 저 라벤다 향기가 사라졌을 때, 그리하여 저 꽃이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는 완전한 정물이 되었을 때, 그때도 내가 오늘처럼 긴 라벤다연서를 쓸 수 있을까. 저 작은 사물 하나에게도 이렇게 연애가 콱 막히는 판인데, 어찌 내가 감히 사랑을 말하랴. 보랏빛 라벤다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그럼 그렇죠. 당신이 날 사랑할 리가 있겠어요. 다만 내가 여기 존재하는 것이고 당신은 거기 존재하는 거겠죠. 우린 잠깐 이렇게 만나서 말을 걸었고, 내가 여기 걸려있듯 당신의 생 또한 내 생의 어딘가에 걸려 있는 순간이겠죠. 그래도 좋아요. 내 보랏빛 그리움을 다 가져가세요. binsom@copy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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