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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Oct 14. 2015

사랑해요

사랑하라, 희망없이


"사랑해요."

그게 무슨 말이었어요? 정말 그렇게 말하신 거예요?
무슨 뜻인지는 알고 계시는 거죠? 너무 늦은 밤이었나요?
너무 외로웠나요? 너무 혼란스러웠나요?

느닷없는 암전(暗轉)
온몸에 흘러드는 전류
저릿저릿 감전된 밤이었어요.
당신이란 사람에 관한 생각들 생각들.
내 이미 굳어버린 곳곳을,아니 추억의 구석구석을
기립시키는
알 수 없는 황홀과 아픔.
절망같은 행복이었어요.심장을 쿡쿡 쑤시는
기쁨이었어요.

달빛을 봤어요? 어젯밤
뺨을 때리는 찬 바람,지상에 오직 하나
외로운 사람으로 서있게 하는
희부연 달빛,돌아본 숲은 안개 속에
가렸어요. 문득 당신의 꿈 속을
거닐고 있는 것 같았어요.
가도가도 달빛 뿐이었어요.

마음의 풍경이 혀를 움직인 것일까요?
당신과 나를 나누던
시간과 거리와 차이를 단박에 넘어선,
그 환한 구어체는
어쩌면 내 삶의 한 굽이를 트는
놀라운 직지(直指). 도주하는 외디푸스의 등을 추격하는
예언같은 것이었어요.

내가 거듭 고개 흔들어오던 것들의
또렷한 정체를,피할 수 없는 운명을,
당신은 언어의 굳은 껍질을 깨고
보여주었어요.
떨리는 품 속에서 반짝인
오랜 은장도 하나.

스스로를 껴안는
그 언어. 너무나 비현실적인
짧고
놀라운 말.
뜻밖의 우연으로 벼락처럼 맞닿은
정념의 궁합같은 것이었을까요?

사랑해요.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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