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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Oct 14. 2015

진여(眞如)

툇마루


 

 


불교에서 말하는 매력적인 개념 중에 '진여'라는 것이 있다. 산스크리트 말의 타다타 타트바를 번역한 말이라는데, 쉽게 잡히지 않는 말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비슷할 것 같지만, 이데아는 아니다. 이데아는 현상계와 대립항으로 놓아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을 비추는 진실한 저쪽'이지만, 진여는 현상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현상 자체의 본질에 가깝다. '지금 여기'의 문제 속에 있는 무엇이다. 

 

'지금 여기'는 한결같은 것이 없고(無常) 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없고(無我)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을 지속시키는 고갱이는 무엇인가. 그게 진여이다. 고갱이라고 해서 속에 들어있는 핵심칩같은 것으로 보면 안된다. 만상으로 퍼져있는 형상과 현상과 변화 전체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진여가 구현된 것이며 진여이기도 하다.

 


원효는 마음을 두 가지로 보았다. (대승기신론소) 참되며 한결같은 마음과 생기고 사라지는 마음이다. 이것은 다른 마음이 아니라 같은 마음의 본질적 측면(理)과 현상적 측면(事)이다. 이중에 진여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분석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말 할 수 없이 지극하지만 그렇다고 모호한 것이 아니라 확연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진여는 불교가 대중을 보는 관점을 멋지게 보여준다. 불교의 소통은, 초월자가 어리석은 중생에게 뭔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진여가 스스로 발현하도록 돕는 일이라는 얘기이다. 누구나 진여를 지니고 있으며 무엇이나 진여를 지니고 있다. 그 진여는 만물 전체가 지닌 것이며 또한 모든 문제와 현상을 일으키는 그 연기(緣起)에서 초연히 벗어나 있다. 그걸 찾아 스스로 일으키기만 하면 되는,마음 속의 눈부신 부처라는 얘기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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