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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Oct 14. 2015

가벼움의 시대

생각의 풍경

노자의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의미를 생각하다 보면 그게 인터넷 문명을 예언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빛과 어울리고 먼지와 함께 한다. 권력과 민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지식인의 이중적 태도를 고무하는 것이라고 비난받기도 하는 이 구절은, 사실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허공에 머문 빛과 지상에 머문 먼지들을 대비한 뜻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어떤 상징이며 그것과 화(和)하고 동(同)하는 일이란 어떤 의미인지 ‘노자’ 자신이 와서 설명한다 해도 논란이 풀리지 않으리라. 다만 그 여러 가지 해석과 견해들의 의미값들을 살펴 광범한 함의를 느끼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컴퓨터에서 쏟아져나오는 빛들, 그리고 그 빛을 물고있는 메모리 반도체들. 그것을 광(光)과 진(塵)으로 읽는 건 망발일까. 그렇게 읽을 때, 화광동진은 1과 0으로 되어 있는 이 디지털문명의 가벼움을 웅변한다. 

사실 이 시대에 가벼움은 유연함이란 미덕으로 상찬되기도 한다. 고식적이고 굳은 생각들을 눅이는 창의의 힘은 바로 저 가벼움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가벼움에 대한 많은 비웃음들은, 인간의 자부심이 양적인 것에 있었을 때 터져나왔다. 기술이 집적되고 첨단화하면서 문명은 더 없이 가벼워졌다. 가벼움이야 말로, 인간이 다가가야할 유토피아로 느껴질 정도다. 

빛과 함께 놀 만큼 빠르고 가벼움. 먼지가 나부끼듯 살랑이는 경박단소. 광케이블과 무선은 바로 빛과 어울림이고, 모니터 위에 깜박이는 커서와 수많은 화소와 문자들은 먼지와 함께함이다. 

이 가벼움은, 전시대의 중력에 눌려있던 인간을 풀어놓는다. 사상도 예술도 문학도 언어도 관계도 가벼워졌다. 이 가벼움은, 인간의 값어치까지도 가볍게 만들지 모른다. 인간 복제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획기적으로 가볍게 할지 모른다. 빛을 쏘듯, 먼지가 빨려들 듯, 가벼움으로 달려가는 세상. 이거, 재앙일지 모른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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