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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Oct 18. 2015

우물쭈물하다가 어쨌다고?

I버나드 쇼는 그런 묘비명을 남기지 않았다


  함정훈선배는 평생 제목을 다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편집기자는 자신의 묘비명에 무엇을 쓸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자신의 생과 그 생을 통한 깨달음을, 한 마디로 뭐라 할 것인가. 자신이 죽고나서 죽은 자로서 산 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절절한 헤드라인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아직도 내 제목을 달지 못했다"라고 말할 심산인지, "제목을 달다가 제 목이 달아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라고 달 건지.


  묘비에 새겨진 문구로, 익살과 재기를 과시한 사람 중엔 아일랜드 출신의 노벨문학상 작가, 버나드 쇼(1856-1950)가 손꼽힌다. 그가 직접 주문한 비명(碑銘)은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였다는 것이다. 이같은 번역문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어린 시절 읽었던 명언집에서도 보았던 것 같다. 1984년 동아일보 김중배 세평(世評) 칼럼 '그게 이렇지요'('권력자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나갔다)에도 보인다.  


  묘지에 쓰인 영어 원문은 이렇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라는 번역은 stay around에서 나온 것 같다. 이 말은 어느 곳의 부근을 어슬렁거리며 멀리 떠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평생 말솜씨로 먹고 산 작가의 고도로 계산된 위트가 있는 문장이니만큼 대충 해석해서 그 묘미를 즐기려고 하는 것은 맹인모상(盲人摸象)에 가깝다. 저 문장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와 같은 우리식의 구어체로 번역하는 것은 오역이다. 문제는 이 오역이 버나드 쇼의 대표적인 개그처럼 우리나라의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직역을 하면 이렇다. "내가 비록 충분히 오래 어슬렁거렸다 하더라도, 이같은 일이 일어날줄 나는 알았다." if를 even if로 읽으면 그렇다는 얘기다. 버나드 쇼는 95세까지 장수한 사람이다. 내가 이 세상을 얼쩡거리며 오래 살았다고는 하지만, 결국엔 이와 같은 일(죽음)이 닥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작가가 우스개로 집어넣은 말의 핵심은 something like this에 있다. 죽음을 '이 따위 것'이라 표현한 것이다. 아무리 오래 산다해도 죽음은 느닷없이 닥치며 동의없이 찾아온다. "내가 비록 오래 살긴 했지만 이 따위 것이 결국엔 닥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정도의 유머다.


  인생을 우물쭈물하며 산 것이 포인트가 아니며. '이럴 줄 알았다'는 방식의 후회를 의미하는 것도 아닌 듯 하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죽음 앞에다 장난끼 가득한 목소리로 써놓은 것일 뿐이다. 오역에서 교훈을 얻으며, 섣부른 깨달음을 전파하지 않는 게 우스꽝스런 언어오염을 줄이는 길이 아닐지.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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