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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Oct 16. 2015

영화 '인턴'과 함정훈선배

빈섬의 시네마모텔

영화 '인턴'과 함정훈선배 - 이빈섬.


근 2년전 우리 신문에서 특별한 경력기자 공채 공고를 냈다. 은퇴한 시니어 편집기자를 '현업'으로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알림이 나가자, 놀랍게도 이 방면에서 상당히 저명한 '선배'들이 지원을 해왔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일은, 서울신문과 국민일보의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현역 당시 파격적인 헤드라인과 지면으로 '걸어다니는 편집의 전설'이라 불렸던 함정훈선배가 당당히 지원서를 내신 일이다. 


70대의 대(大)기자가 작지만 야심찬 신문사에서 다시 일하고 싶은 포부를 밝힌 글을 읽을 때 내 가슴이 뛰었다. 간부로 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기자로 와서 제작 일선에서 오직 '편집'을 하고 싶다는 그분은 이제 우리 신문의 멋진 2년차 기자가 되어 계신다.


영화 '인턴'의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는 미국판 '함선배'이다. 전화번호부를 제작하던 공장의 부사장을 지낸 40년 경력의 벤은,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쇼핑몰 회사의 인턴이 된다. 알고보니 이 회사는 벤이 예전에 전화번호부를 만들던 그 사옥이었다. 이런 우연의 배치는 이야기의 회로를 살짝 의미심장하게 해준다.  


우리 시대의 슬픔은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세대간의 소통이 심각하게 방해받고 있다는 점이다. 저 시니어 인턴은 디지털문명의 핸디캡들을 함선배처럼 나날이 극복해가며, 말년의 '문명'에 훌륭하게 진입한다. 하지만 인턴이란 게 뭔가. 우리와 미국의 경우가 서로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기술이나 머리 없이 보잘것 없는 일을 보조하는 파리목숨과 박봉의 비정규직인 점이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사장 벤은, 옛날 생각을 깨끗이 접고 새로운 자기 위치와 역할을 잘 지켜낸다.


아무리 현기증 나는 속도의 문명이라 할지라도 한꺼풀 껍질을 벗기면, 그 안에는 비슷한 인간의 고뇌와 번민과 고독과 당황과 차질이 있다. 벤은 쇼핑몰의 30대 사장 줄스 오스틴(아름다운 앤 해서웨이)의 일을 도와주는 인턴이 되지만, 주제 넘게 이것저것 다 알려고 한다는 인상 때문에 한때 다른 곳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하지만 여사장은 벤이 지닌 경륜과 친화력, 다양한 임기응변력과 따뜻한 어른의 매력같은 것에 빨려든다. 


스토리는 시니어 인턴의 성공기가 아니라, 허접한 자리를 묵묵히 감수하고 앉아서 기업의 현장의 숨가쁜 결정들과 일상의 고뇌 해결을 도와주는 '오래된 지혜'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처럼 느껴진다. 인턴은 가장 낮은 곳에서 여사장의 '문제'를 풀고 회사를 정신적으로 이끌어가는, '섬기는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준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동방순례'에 나오는 '예수를 닮은 노예'가 생각나는 영화였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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