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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자향

나무에서 나무에로

백석과 안도현과 박남준

by Binsom Lee


봄날이었네
두고 벼르던 산청 단속사지 정당매 찾는 길
백석의 정한 갈매나무를 그려보던
두 눈 가득 기다리던 설렘이 내게도 있었네
거기 매화 한 그루
한 세월 홀로 향기롭던 꽃그늘은 옛 시절의 풍경이었는가
두 탑만이 남아 있는 단속사지
텅 빈 그 꽃잎들
저 탑 위에도 꽃 사태는 일어 바람을 불러 모았으리
늙고 꺾인 수령 610년
잔설 같은 뼈만 남은 정당매여
네 앞에 서서 옛날을 기억해주랴 이름을 불러주랴
무상한 것들 어찌 사람의 일뿐일까
산중에 홀로 누웠네
별이 뜨기도 했네 별이 지기도 했네




단속사지 정당매 / 박남준




■ 지리산 자락, 산청의 단속사는 제 이름 그대로 단속(斷俗), 속세를 끊어 절없는 절이 되었다. 절이 없다 한들, 대웅(大雄)이 머물 너럭바위 하나 없는 건 아니다. 깨달음이 거닐 오솔길 하나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 벗어버린 두 탑이 어깨를 겯고 서서 신라적 햇살에 제 몸 더 내줄 게 없나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다.


강희안의 증조할아버지가 소시적에 심은 고매(古梅)는, 심은 사람보다 600년을 더 늙었지만 아직도 봄날이면 열여덟의 보오얀 속살같은 백매화를 낸다. 그 증조 강회백의 벼슬이 정당(政堂)까지 올라 정당매라는 이름을 지니게된 이 나무는 이제 잔설같은 뼈만 남았는데 단속사 탑이나 매한가지로 제몸의 절집 하나 튼 듯 하다. (갑자기 이 나무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강희안이 1417년에 태어났으니, 90년(1세대를 30년씩 잡을 경우, 그렇다) 전에 증조가 태어났다면 1327년이다. 증조의 나이 10살에 저 나무를 심었다면 1337년에 심은 셈이 된다. 그렇다면 고매의 나이는 670살이다. 세대 계산에 5년쯤 오차가 있다고 보면, 660살까지가 가능해보인다. 박시인의 610년은 어떻게 나왔을까. 강희안의 증조부가 10살 때 조부를 낳고 다시 그 조부가 10살 때 강희안 부친을 낳고 다시 그가 10살 때 강희안을 낳았을 경우라야, 증조부가 10살 무렵 그 나무를 심을 수 있다. 매화에게 주민등록증이 없으니, 이런 불심검문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강희안은 이 정당매화를 심심치 않게 보았을 것이다. 집안의 자부심이자, 세대를 넘나드는 문향(聞香)이 그의 감성을 키웠을 것이다. 용비어천가를 주석하고 동국정운 28자를 해석한 천재이긴 하지만, 게으른 게 흠이었다는 이 사람은, ‘600년 동안 잊히지 않은 인상적인 게으름’을 무기로, 인생을 한거(閑居)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그림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가 그 증거이다. 한참 바라보기만 해도, 영혼의 웰빙이 저절로 되는... 절간 뒤에 매화를 심은 증조부의 향기를, 3세대 뒤에 그 증손자가 맡고는 고사(高士)의 그 표정으로 빙긋이 웃는다, 시간을 넘은 염화시중의 미소가 단속사지 정당매 주변과 고사관수도 속에 숨어있다.


박남준 시인이 고마운 것은, 시간의 냄새가 나는 매화등걸에 백석의 갈매나무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 땅의 현대시들을 진동시킨 시 한 편을, 매화등걸에 걸어두는 바람에, 정당매는 박남준 특유의 은유의 숲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백석의 시부터 데려와보자.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베개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는 면 뒷 산 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신의주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 백석






지극히 외롭고 내성적이며, 또 고독하고 추운 한 사람이, 싸락눈이 창을 때리는 어느 저녁에 생각하는, 눈맞는 갈매나무의 이미지는, 백석 이후의 언어들을 모두 포옥 덮었다. 갈매나무의 마른 잎에 싸락눈이 떨어지며 쌀랑쌀랑 소리를 내는 그 풍경과, 그 드물고 굳고 정한 나무가 맞는 외로움과 어둠은, 백석을 먼저 덮고, 또 안도현을 덮고, 박남준을, 나를 덮으며 소리없는 흰 숲이 되었다. 시(詩)는 이 희디흰 눈맞는 소리들의 전염병이다. 박남준은 정당매화 꽃잎 앞에서, 눈맞는 갈매나무에 귀를 연다. 안도현의 탄성을 들어보자.




일생 동안 나무가 나무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하늘의 햇빛과 땅의 어둠을 반반씩, 많지도 적지도 않게 섞어서
자기가 살아온 꼭 그만큼만 그늘을 만드는 저 나무가 나무인 것은
그늘이라는 것을 그저 아래로 드리우기만 할 뿐
그 그늘 속에 누군가 사랑하며 떨며 울며 해찰하며 놀다가도록 내버려둘 뿐
스스로 그늘 속에서 키스를 하거나 헛기침을 하거나 눈물을 닦거나 성화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말과 침묵 사이, 혹은
소란과 고요 사이
나무는 저렇게
그냥 서 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듯 보이는
저 갈매나무가 엄동설한에도 저렇게 엄하기만 하고 가진 것 없는 아버지처럼 서 있는 이유도
그늘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빈한한 집안의 지붕 끝처럼 서 있는 저 나무를
아버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때로는 그늘의 평수가 좁아서
때로는 그늘의 두께가 얇아서
때로는 그늘의 무게가 턱없이 가벼워서
저물녘이면 어깨부터 캄캄하게 어두워지던 아버지를
나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눈 내려 세상이 적막해진다 해서 나무가 그늘을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쓰러지지 않는, 어떻게든 기립자세로 눈을 맞으려는
저 나무가
어느 아침에는 제일 먼저 몸 흔들어 훌훌 눈을 털고
땅 위에 태연히 일획을 긋는 것을 보게 되는 날이 있을 터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 / 안도현





안도현의 시를 읽으면, 푹, 무릎이 꺾일 만큼 내 손에 쥐어준 이미지의 무게가 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석이 마치 속에 든 이미지를 붓으로 털어내듯 슬쩍 보여준 갈매나무는, 안도현에겐 잘 짜맞춘 목재처럼 들어앉아, 꼭 들어앉고 싶은 집 한 채가 된다. 그래서 좋지만, 그건 갈매나무가 아닌 것 같다. 이름 붙이자면 안도현나무다. 어쨌거나, 나는 그 목향(木香)까지 다 맡을 수 있는 시(詩)집을 거닌다. 강희안의 게으른 낙원에서, 여기 안도현의 아버지의 그늘까지.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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