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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자향

kisshotel

스토리의 비밀

by Binsom Lee

감포에서 울산으로 가는 해변도로를 주의 깊게 운전하다 보면 ‘키스호텔’이라고 써놓은 간판을 발견할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지나치게 되어 있다. 호텔 간판 치고는 지나치게 작은데다 글씨 또한 회색 바탕에다 흰 글씨로 파놓은 영어 kisshotel이다. 두 단어를 붙여놓아서 얼핏보면 아주 낯선 단어처럼 보인다. 언제부터 이 호텔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그 호텔을 발견한 것은 한 여인과, 무척 드라마틱한 만남 끝에 거기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다. 그녀와 나는, 거기에 들어가기 전에 바닷가 모래밭 한켠에서 캔맥주를 마셨다. 가을 바람이 맨발의 엄지발가락과 검지 사이로 들어왔고, 우린 똑같이 추위를 느꼈다. 우린 따뜻한 데를 찾아나섰고, 이미 자정이 지난 시각이어서,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들른 곳이 이곳이었다. 우린 간판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것이 호텔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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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린 그곳에 투숙하는 순간부터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8층 열쇠를 받고 들어간 엘리베이터의 벽에는 이런 팁이 붙어있었다. 여러분들은 키스호텔에 오셨습니다. 아시다시피 키스호텔에선 많은 것이 허용되어 있지만 한 가지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섹스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권장되는 사랑행위는 키스입니다. 만일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는 분이라면 다시 하강 단추를 누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손님이 내려가셔서 환불을 요구하면 프론트에서는 흔쾌히 그것에 응할 것입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우린 당황했다. 물론 우리가 이 호텔에 들어올 때, 여기서 허락되는 행위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섹스가 금지된 호텔이라니...


그러나 저 엘리베이터 벽보가 권하는 것처럼 돌아서 나가는 일은 매우 민망한 일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나가자고 얘기하는 것은, 이곳에 들어올 때 섹스를 하기 위해 들어왔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얼핏 생각이 든 것은, 그렇다면, 키스 이외의 다른 행위를 한다고 하더라도 저 호텔 당국이 그걸 어떻게 적발할 것인가. 만약 그걸 적발했다면 그들은 객실 내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이 된다. 그들이 그런 불법 행위를 하는 것을 공공연히 고백할 까닭이 없으리라. 그런데 그 벽보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고객 여러분. 혹시 이 호텔의 규칙을 위반한 몇몇 분들의 불행을 알고 싶으시진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궁금하다면 아래에 비치된 책자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녀와 나는, 빙긋이 웃는 표정을 교환하면서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책자를 집어들었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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