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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Dec 24. 2015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

빈섬 추억다방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은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생각나면 들러봐요

조그만 길모퉁이 찻집

아직도 흘러나오는

노래는 옛향기겠지요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 / 산울림                                                          



아내는 아직도 이 노래를 질투한다. 이 노래를 듣고 앉았노라면 불편한 표정이 되어 내 얼굴을 들여다 본다. 이 노래를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노래가 흘러나오던 시간과 그 시간 속에 유리상자 속에 머물러 있었던 환영같은 한 여자를 불편해하는 것이다. 가끔 시간은 공간의 이쪽과 저쪽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저 노래가 흐르던 시간의 저쪽을 바라보노라면 거기엔 변하지 않는 어떤 공간이 떠오르고 나는 순간이동하듯 거기에 앉아있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면 아내가 멀리 보인다. 그 슬프고 쓸쓸한 얼굴만큼 미안하다. 어쩌면 나는 시간의 어느 쪽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기우뚱거리며 걸어간 불미(不美)스런 발자국일 뿐인지도 모른다.


김창완이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라고 나즉히 읊조릴 때 내 귀는 정확히 오래 전 장밋빛 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낮고 따뜻한 목소리를 겹쳐 듣는다. 내 눈이 슬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몹시 측은해하는 눈으로 오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가지 못할 ‘인연의 운명’같은 것을 느꼈을까. 삼십 년 동안 나는 저 하모니커 간주에 가슴에 베이면서 살아왔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고 그리운 것들은 욱씬거린다. 


그도 나도, 서로 허깨비처럼 서로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응시를 놓친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를 보던 방향으로 내 넋이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가 기억으로 가는 융단처럼 풀려나올 때마다 나는 조금씩 그쪽으로 걸어갔다가 움찔 하며 돌아나왔다. 그래 봤자 모두 헛것이지만, 저 노래는 믿을 만한 목격자이다. 산울림이야 우리의 이런 곡절을 알 턱이 없지만, 그들보다도 우린 이 노래를 더욱 피와 살처럼 가졌던 것이다. 사랑이 사라지고, 사람이 사라지고, 기억이 사라진다 해도, 그것들을 완전하게 입증하고도 남는 노래 한 자락의 여운. 당신의 검고 깊은 시선이 있는, 스무 살의 풍경.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은.


이 환장할 일기예보로 환기되는 평생의 신탁(神託), 

나와 당신은 창문 너머 먼 곳을 바라보며 

꿈을 꾸듯 고요히 늙어가리라.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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