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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Dec 28. 2015

뭐눈에는 뭐만 보인다






저 뭐와 뭐가 무엇인지는 익히 짐작하리라. 우린 개차반(개에게 차반같이 귀한 음식이 뭐겠는가)을 찾는 개를 비웃지만 사람도 그리 다르지 않다. 도시를 거니는 의사의 눈에는 병원만 보이고 약사의 눈에는 약국만 보인다. 미용사의 눈에는 미용실만 보이고 슈퍼주인의 눈에는 슈퍼만 보인다. 술꾼의 눈에는 술집만 보이고, 꽃장수의 눈에는 꽃집만 보인다. 신문쟁이 눈에는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지역 어느 곳에 가도, 신문 읽는 사람과 신문사가 보인다. 형사의 눈에는 범죄자만 보이고 범죄거리를 찾는 자에게는 어수룩한 범행대상이 눈에 쏙 들어온다. 눈이 잘못 되었는가. 우리 눈은 모든 곳을 공평하게 보아주게 되어있는 것 같지만, 자신이 잘 알거나 알고싶은 것을 중심으로 시야를 구성한다.




논쟁을 벌이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 중에서 틀린 점을 찾아내는데 집중한다. 그것이 논쟁의 승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툼을 벌이다 보면, 그의 말 속에 들어있는 옳은 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자신의 말 속에 들어있는 모순점을 인정하지 않게 되며, 이 논쟁의 전체그림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게 된다. 

난 두눈 뜨고 있어. 난 다 보고 있어. 난 다 알고 있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대개 함정이다. 우린 전혀 다 보고 있지 못하며 다 알고 있지도 못하다. 그러면서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자주 심각한 문제를 부른다. 내가 본 것들, 내가 알아낸 것들, 내가 알고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것들은, 대개 내가 보고싶은 것과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을 자의적으로 편집한 것일 뿐일 때가 많다. 내가 아는 지식, 내가 이해하고 있는 세계조차도 그렇다. 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겠는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눈과 다른 사람의 판단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뜻은, 그에게도 그런 권리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오류, 우리의 오류, 삶의 오류를 수정하거나 줄이는 길은 그것 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은, 내 생각만큼이나 옳을 수 있다. 내 눈이 틀릴 수 있다는 잠정적 유보야 말로, 세상의 소음을 줄이고 인간사회 전체의 생각들을 좀더 균형잡히고 건전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어제도 오늘도 우린 자주 놓친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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