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단절을 꿈꾸다

겨울 계방산에서

by 이창근

지난 2월 어느 날 새벽, 강원도 계방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랜턴 불빛에 의지한 채 인적 끊긴 산길을 걸었다. 몸의 모든 감각이 날을 세웠고,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긴장감이 몸속 모든 신경의 끝까지 퍼졌다. 움츠린 몸속으로 스며드는 추위는 세상과의 단절을 더욱 심화시켰고, 고도를 높여갈수록 고립감이 증폭되었다.


1. 계방산 정상에서 맞이한 황금빛 일출.jpg 계방산 정상에서 맞이한 황금빛 일출

숨소리마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운 날씨 속에서 거친 호흡을 반복하며 걸었다. 잔설이 남아있던 정상에 다다랐을 때, 백두대간의 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졌다. 산과 산들이 억세게 흘러 국토의 등허리를 향해 힘차게 뻗어나갔고, 차가운 눈 아래에서도 뜨겁게 펄떡이는 대간의 박동이 느껴졌다. 동쪽 하늘에서 시작된 황금빛 일출은 차갑고 푸른 기운이 가득한 산맥과 명확한 대비가 되어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2. 계방산 정상을 오르는 계단길.jpg 계방산 정상을 오르는 계단길

길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이 나는지 생각해 보았다. 과연 길이 시작되고 끝이 나는 물리적인 지점을 찾을 수는 있을까? 찾을 수 없을 것이란 결론을 내릴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길이 시작되는 곳은 내가 출발하는 바로 그 지점이고, 끝나는 지점 역시 내가 멈추는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의지에 따라 길이 시작되고 끝난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멀리 갈 것인지도 내가 정한다. 운명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외부에서 정해져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루하루 그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3. 계방산 돌탑과 정상석.jpg 계방산 돌탑과 정상석

계방산 정상석 옆 한편에 자리한 돌탑은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듯 굳건하게 서 있었다. 누가 쌓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거센 비바람 눈보라에도 미동조차 없을 정도로 돌과 돌 사이의 결기가 좋아 보였다. 아내의 곁을 무심한 듯 지키고 있는 지아비의 모습 같기도 했고, 막내의 손을 잡고 걷는 믿음직한 큰형 같기도 했고, 자애로운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 같기도 했다. 혹독한 추위인데도 갑자기 주변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4. 계방산의 희열을 즐기다.jpg 계방산의 희열을 즐기다

나는 주기적으로 자발적 고립과 단절을 지향해왔다. 일상을 벗어난 고립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하고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벗어나 고요한 공간을 탐험하는 시간은 내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을 때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주었다. 계방산 정상을 오르는 고통의 시간 동안, 정상에서 장엄한 일출을 맞이하는 동안, 그리고 웅대한 백두대간의 등줄기를 맞이한 순간이 모두 나에겐 고립이었고, 단절이었고, 희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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