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아들, 손녀의 남해 여행기
딸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1년간 휴학을 결심한 딸아이는 요즘 인턴 자리를 알아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러 곳에 지원하고 면접을 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속상해하더니, 최근 드디어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따뜻해진 봄 날씨에, 인턴 자리도 확보해놓았으니, 여행을 떠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가 왔다.
첫 번째 목적지는 어머니가 계시는 함양, 그리고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찾는 남해다. 금요일 오후, 서둘러 퇴근하고 짐을 챙기는 순간부터 마음이 들떴다. 어머니의 따뜻한 집밥도 기다려졌지만, 함양까지 가는 세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설레었다.
딸아이가 운전을 하겠다고 나섰고, 덕분에 나는 세상 편한 자세로 조수석에 앉았다. 고속도로에 약간의 정체는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차창 밖 가까운 풍경은 빠르게 흘러갔고, 먼 산은 저무는 하루 해를 여유롭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차 안에서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면접 후일담을 발랄하게 풀어냈고, 나는 그녀의 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 기울였다.
세 시간 반을 달려 고향집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저녁 식탁에 봄내음 가득한 쑥국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비지찌개를 올려놓으셨다. 어머니는 늘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를 구해와 쿰쿰한 냄새가 날 때까지 묵혔다가 신김치를 넣고 들기름으로 볶아주셨는데, 나는 생콩을 갈아 만든 것보다 삭힌 특유의 향이 나는 이 비지찌개를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웠지만 나는 이 비지찌개만 있으면 밥 두 그릇은 거뜬했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와 딸아이와 함께 남해로 향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우리 마음은 쾌청했다. 팔순의 할머니와 이십 대 초반의 손녀는 차 안에서 끊임없이 웃고 떠들었고, 오십 대 중반의 아들은 그냥 흐뭇한 미소만 지었다.
남해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찾은 곳은 왕지벚꽃길이었다. 5 Km 남짓한 구간에 1,170여 그루의 왕벚나무가 해안선을 따라 벚꽃터널을 이루고 있었는데, 노란 유채꽃과 분홍빛 벚꽃이 옥빛 바다와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냈다.
가로수로 심는 왕벚나무는 우리나라 자생종인 산벚나무 뿌리에 일본왕벚나무를 접목한 재배종이라고 들었다. 산벚나무의 뿌리 때문일까. 나는 우람한 왕벚나무를 볼 때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떠올랐다. 경판 제작에 사용된 나무 중 산벚나무가 64%를 차지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산벚나무는 물관이 나이테에 골고루 퍼져있어서 수분 함유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그래서 잘 건조했을 때 뒤틀림이나 갈라짐이 적다고 했다. 또한 한반도 전역에서 자라는 자생종이어서, 목재를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왕지벚꽃길을 천천히 감상한 후, 남해읍을 지나 서면사무소를 거쳐 1024번 지방도를 타고 작장리로 들어서자, 길가에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동백의 붉은 꽃송이가 융단처럼 깔린 길 위로 화사한 벚꽃이 만개했다.
동백은 추운 겨울을 인내하며 이 길에 푸르름을 더하고, 붉은 꽃을 피워 스산함을 녹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붉은 꽃송이를 툭! 떨구고 벚꽃에게 새로운 봄을 맞을 준비를 시켰을 것이다.
마치 자신의 소임을 다한 이와 새롭게 시작하는 이가 교대하는 듯 했고, 죽은 자와 산 자가 시간을 이어가는 듯했다. 겨울에 피는 동백과 봄에 피는 벚꽃은 서로에게 주어졌던 시간을 번갈아 풍미하며 이 길을 지켰고, 누군가 베어내지 않은 한 앞으로도 계속 순환을 이어갈 것이다. 팔순의 할머니와 오십 대 중반의 아들, 그리고 이십 대 초반의 손녀 또한 각자의 시대를 살아내고 흐름을 이어갈 것이다.
이튿날 아침, 금산 보리암을 찾았다. 주차장에서 보리암까지 오르는 언덕길이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께는 무리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내가 느그랑 가는데 그 까잇거 몬가긌나?"며 아들의 걱정을 일축하셨다. 아들, 손녀와 함께 추억 만들기에 그 정도 불편함은 잊으신 듯했다. 어제 본 동백이 생각났다. 동백은 세 번 핀다고 했다. 나무에서 한 번, 지상에서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슴에서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