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디히말 베이스 캠프
‘칸데(Kande)’를 출발한 것은 오후 세 시였다. 이날은 ‘오스트레일리안 캠프(Australian Camp)’에서 하룻밤 묵어갈 계획이었고, 칸데에서 캠프까지는 2.5km가 되지 않는 짧은 거리,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는 없었다. 길은 순탄했다. 칸데의 고도는 1,770m이고,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는 2,060m여서, 오르막은 숨 가쁘지 않았고, 등산로는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등산로 중간에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높은 산줄기에 갇힌 듯 옹송그린 마을은 오히려 산자락에 기대앉아 안정된 모습이었다. 긴가민가하지만 학교로 보이는 건물도 있었다. 길가로 마당을 열어놓은 농가는 우리나라의 시골집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정감이 갔다. 안주인은 집 뒤에 붙은 밭에서 무언가를 한창 거두고 있었다. 식구들을 먹이려는 어머니의 부지런한 손놀림 역시 우리나라 어머니의 모습과 닮아 애틋했다.
오르막길에 숨이 차오를 즈음, 찻집 하나가 나타났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고양이 한 마리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녀석은 오가는 여행객들을 많이 봐서인지, 아니면 이 동네 사람들이 짐승에게 각별한 정을 주는 것인지, 사람에게 먼저 다가왔고, 마치 사진을 찍어달라는 듯한 몸짓으로 교태를 부렸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는 원래는 가축의 방목지였는데, 1980년대, 오스트리아의 탐험대가 이곳을 방문하고 캠프를 꾸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 이름이 ‘오스트리안 캠프’가 아닌 ‘오스트레일리안(호주인) 캠프’로 불린다는 점이다. 네팔 현지인들이 ‘오스트리안’을 발음하기 힘들어서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쉽게 믿기에는 의심스러운 구석도 있지만, 네팔 사람들의 입에 쉬운 대로 이름이 굳어졌다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 캠프는 트레킹 구간에 있는 다른 캠프촌에 비해 접근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엔 나선 이들뿐 아니라, 편안한 휴식을 얻기 위해 찾아오는 여행자들의 발길도 잦은 곳이다. 그날 만난 러시아에서 온 두 여인도 트레킹 목적이 아니라, 이곳에 머물며 요가와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내가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 도착한 날,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안나푸르나 남봉의 웅장함도, 물고기의 꼬리를 닮은 마차푸차레 봉우리의 자태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고, 캠프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조망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아쉬움이 히말라야의 품에 안겼다는 감동을 흐리게 만들지는 못했다. 다만, 점점 더 얄궂어지는 날씨가 애를 태우기 시작했는데, 저녁 식사 무렵부터 시작된 비는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거세졌다. 산장 지붕을 때리는 빗줄기가 점차 굵어졌고, 천둥과 번개마저 요란하게 울어댔다. 이러다 내일 아침, 예정된 트레킹을 시작조차 못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히말라야에서 첫날밤은 그렇게 요란하게 지나갔다.
이튿날 아침까지도 빗줄기는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물었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가야죠!” 그의 말에서 망설임 없는 확신과 강한 의지를 느꼈다. 바깥을 보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어제는 형체조차 희미했던 먼 산의 풍경이 어렴풋이 다가왔다. 가이드의 단호한 어조 때문이었을까. 내 눈에는 그 희뿌연 풍경마저 또렷하게 박히는 듯했다.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배낭을 꾸리고, 포터들에게 나눠줄 짐을 정리했다. 트레킹 2일 차인 오늘은 다음 숙영지인 ‘포레스트 캠프(Forest Camp)’까지 12km 정도를 걸어야 하고, 고도는 2,550m까지 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