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디히말 베이스 캠프
“비스따리, 비스따리!” 가이드를 맡은 람(Rame)이 트레킹 내내 외치던 말이었다. 우리말로는 “천천히!”라는 뜻이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2,060m)에서 포레스트 캠프(2,550m)까지 가는 12km 구간은 때로는 순했지만, 때로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급경사를 오르내려야 했다. 천천히 걸어야 고소에도 적응할 수 있고, 체력도 안배할 수 있기 때문에, 람은 늘 그렇게 일렀다.
람은 포터로 팔 년, 자격증을 따고 산악 가이드로 이십 년, 모두 이십팔 년을 히말라야의 길에서 여행자들을 이끌었다. 마흔여덟의 그는 대원들의 체력과 코스의 상태에 따라 행렬의 속도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는 베테랑 가이드이자 리더였다. 나는 자원해서 후미를 맡았는데, 뒤를 돌아보며 대형을 살피는 람과 눈빛을 마주칠 때면, 처지는 사람 없이 잘 진행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를 만난 지 겨우 이틀이 지났는데, 오랜 벗처럼 신뢰는 깊었고, 교감은 빨랐다.
포레스트 캠프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숲이었다. 키 큰 나무와 짙은 풀숲은 마치 정글 속을 걷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굽어진 숲길을 돌아서는데 갑자기 시커먼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났다. 물소 두 마리였다. 야생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는데, 녀석들은 사람이 코앞을 지나가도 아무렇지 않은 듯 큰 눈을 껌뻑이며 태연하게 되새김질만 거듭했다. 생김새도 색깔도 달랐지만, 순한 눈빛은 어딘가 우리 소와 닮아 있었다.
고도를 높여 조망이 트이는 개활지에 다다르자 멀리 운해가 펼쳐졌다. 한참을 서서 느리게 움직이는 운해를 바라보았다. 숨을 고른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들었다. 눈을 감는다고 풍경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감은 눈꺼풀 안쪽으로 더 넓은 풍경이 펼쳐졌고, 그곳에서 구름에 가려져 있던 히말라야의 설봉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언어는 할 일이 없었다, 어떤 언어와 문장으로 그 풍경을 들추어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나의 언어는 그런 풍경을 담을 재주가 없었다. 그곳에서는 누구라도 과묵해지고 여유로워질 듯했다. 산장을 지키는 개조차 먼 운해를 바라보며 무위자연을 실천하는 것 같았다.
다시 길을 나서고 온몸이 땀으로 후줄근하게 젖을 무렵, 오늘의 목적지인 포레스트 캠프에 도착했다. 해발 고도 2,550m. 우리나라의 한라산이 1,950m, 지리산이 1,915m이니, 나는 지금 태어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높이에 와있는 것이었다. 몸이 무거웠고 졸음이 밀려왔다. 포레스트 캠프는 구름 속에 갇혀 더욱 나의 시야를 흐리게 했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나에게는 고산증이었다.
저녁 식사까지는 시간이 남아 동행으로부터 ‘어반 스케치’를 배웠다. 처음엔 그녀가 그려가는 그림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의 손놀림은 날렵하고 거침없었고, 선이 그어지는 대로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어 갔다. 나도 그녀가 건넨 엽서 크기의 도화지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눈앞의 풍경 한 조각을 프레임에 넣는 것은 사진을 찍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셔터를 누르는 것은 찰나의 행위라면, 그림을 그리는 것은 확장된 시간 속에서 지속적인 움직임이었다. 처음이라 서툴고 힘들었지만, 사진보다 훨씬 깊이 기억에 각인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림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고산증세도 말끔히 사라졌다. 어반 스케치는 나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층 특별한 경험으로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