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히말라야 대장정 -4화

마르디히말 베이스 캠프

by 이창근

트레킹 3일 차에 접어들자, 본격적인 고산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포레스트캠프(2,550m)'에서 ‘바달단다캠프(3,350m)'로 가는 5km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고산증세가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한다는 해발 고도 3,000m 대역을 통과하는 길이기 때문에, 가이드 람은 일행에게 더욱 천천히 걷기를 강조했다. 이 구간에서 고소에 적응해야만 고도 4,000m 이상을 넘어야 하는 트레킹 구간에서 고산증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간밤에 내렸던 비로 길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내 다리가 내딛고 밀어내는 힘은 길바닥에 견고하게 닫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졌다. 람의 재촉이 없었더라도, 길 위의 낙엽이나 돌멩이, 그리고 돌출된 나무뿌리들이 걸음을 더디게 묶었다. 발바닥에 와닿는 길의 촉감은 축축했고, 때론 끈적였으며, 이따금 부드러웠다. 한 걸음 한걸음에 온 신경을 쏟는 동안, 대원들은 각자 자신에게 몰입하고 있었다. 사람의 언어는 히말라야 숲속에서 실종되었고, 숲은 새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등산화가 물기 머금은 흙길에 잡혔다가 떨어져 나갈 때 희미하게 나는 ‘쩍!’ 소리만 남았다. 평화롭고 아늑했다. 히말라야에 오기 전까지는 시린 눈길을 걷는 상상뿐이었는데, 이렇게 깊은 숲길이라니. 이 느낌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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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흔들며 바람이 불어왔다. 순간 길 왼편에서 ‘휙’ 소리와 함께 새 한 마리가 솟구쳤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그 모습을 놓칠세라 황급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실낱같은 순간, 티베트의 장례 문화인 ‘천장(天葬)’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조장(鳥葬)’이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독수리에게 내어주고 뜯어먹게 하는 것이다. 고인의 영혼이 그 육신을 먹은 새와 함께 하늘로 떠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하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미간이 찌푸려질 만큼 끔찍했다. 하지만, 땔감이 부족한 고산 지대에 화장(火葬)이 어려워 선택한 그들의 문화이고, 더욱이 시체의 처리를 야생동물에게 맡기는 자연주의적 발상이라는 점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힌두교 신자가 칠십오 퍼센트인 네팔은 대부분 화장을 택한다. 그래서, 카트만두에 있는 힌두교 최대의 성지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파슈파티나트’ 사원에는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이곳은 고산 지대이니, 혹시 화장 대신 천장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싹한 기분이 들면서 호기심도 발동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여섯 시간 남짓을 걸어 오늘의 목적지인 바달단다캠프에 닿았다. 흐렸던 날씨는 도착과 동시에 억수 같은 비를 쏟아냈다. 비 내리는 해발 3,350m의 바달단다캠프는 낭만적인 분위기에 잠겼다. 맑은 날이면 안나푸르나 남봉과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는데, 이날은 무거운 비구름이 시야를 막았다. 사람들은 캠프 유리창 가에 서서 눈을 감은 채, 날씨가 맑았다면 보였을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을 눈꺼풀 안쪽에 펼쳐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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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과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일찍 잠이 들었다. 새벽녘, 화장실에 가려고 방문을 열고 나선 순간, 비는 이미 멎었고 하늘엔 별이 초롱초롱 박혀 있었다. 하늘을 가로질러 엷은 막 같은 것이 보였다. 은하수였다. 포카라 시내의 불빛이 방해되었지만, 내 눈엔 그 어느 곳보다 더 또렷하게 은하수가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은하수와 나는 가까워졌다. 이때 나는 더 이상 이방인도, 관찰자도 아니었다. 광활한 우주 그 자체가 되고, 히말라야의 일부가 되었다. 나의 의식 또한 히말라야에서 동떨어진 개별자가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로 작동했다. 이는 곧 내가 우주이고, 내가 히말라야가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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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관찰하느라 잠은 설쳤지만,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화창한 날씨에 어제 보지 못했던 안나푸르나의 남봉과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선경(仙境)이었다. 지난 사흘간의 트레킹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 봉우리들이 바로 눈앞에 보란 듯이 펼쳐졌다. 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4,500m)까지 기필코 가야겠다는 욕구가 다시 샘솟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마르디히말 뷰포인트(4,200m)까지만 가고, “거기서 거기지 뭐!”하며 300m 더 높은 베이스캠프까지는 포기한다는 말을 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이 풍경을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더 큰 모습으로 담아내겠다는 의지는 이때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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