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히말라야 대장정 -5화

마르디히말 베이스 캠프

by 이창근
능숙한 가이드 덕분에 위험 구간을 안전하게 통과

트레킹 나흘째 새벽, ‘바달단다캠프'(3,200m)에서 히말라야 봉우리들 사이로 일출 빛이 부챗살처럼 퍼지는 순간을 경험했을 때, 일행들 가슴에는 트레킹을 완주하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커졌다. 견고하게 다져진 의지와 부푼 희망은 다음 목적지인 ‘하이캠프’ (3,900m)로 향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러나, 일행의 밝고 쾌활한 기운과는 달리, 길은 위태로웠다. 천 길 낭떠러지 벼랑길을 지날 때마다, 가이드 람은 연신 뒤를 돌아보며 조심을 당부했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갈수록, 사방은 구름 속에 갇혔고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히말라야의 수목한계선을 지난 것인지, 숲은 사라지고 고산 초원이 펼쳐졌다. 순간, 앞쪽에서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짙은 운무 속에서 야크 떼가 불현듯 나타났다. 모두가 놀랐는데, 야크들의 놀라움은 우리보다 더한 것 같았다. 느닷없이 그들의 길을 막아선 사람들 때문에 야크 무리는 우왕좌왕했다. 놀란 야크들이 자칫 사람에게 해를 끼칠까 염려한 목동은 ‘핫핫!’ 소리를 지르며 야크 무리를 능숙하게 몰아 사람이 없는 쪽으로 갈랐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목동의 노련함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태연하게 야크 무리를 모는 목동의 뒷모습을 보았다. 고단함이 묻어났지만 믿음직스러웠다. 마치 젊은 시절의 내 아버지처럼.

아버지를 연상하게 했던 야크 목동


마침내 이번 트레킹 코스의 마지막 롯지 촌(村)인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고도가 높은 탓인지 캠프의 공기에는 한기가 느껴졌고, 시야는 구름에 갇혀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마차푸차레 봉우리와 다른 히말라야 고봉들은 손에 잡힐 듯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태웠다. 바달단다를 떠나기 전 선명하고 아름다운 히말라야 봉우리의 자태를 볼 수 있었던 것이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었다.


희미함과 또렷함은 결국 인식의 차이


하이캠프에서 중간 기착지인 ‘뷰포인트’(4,200m)까지 두 시간 정도를 걸어야 하고, 최종 목적지인 ‘마르디히말베이스캠프’(4,500m)까지 다시 두 시간을 더 이동해야 한다. 나는 은하수와 일출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포터 한 명과 함께 새벽 두 시에 출발하고, 나머지 일행은 새벽 세 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차갑고 알싸한 새벽 공기가 정신을 맑게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로지 랜턴 빛에 의지한 채, 나와 포터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전날 하이캠프에 도착 후, 한 시간가량 준비 산행을 했던 효과가 나타난 건지, 걸음은 가벼웠고, 고소임에도 불구하고 호흡은 편안했다.


구름은 하늘의 일부가 아니다

뷰포인트에 올라서자 먼 하늘에 은하수가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재빨리 카메라를 설치했다. 은하수는 수직으로 서서 나를 반겼는데, 구름이 많아 전체를 담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밤하늘의 은하수는 늘 새롭고 신비로운 것이어서, 구름이 일부를 가려도 내 눈에는 온전히 다 보이는 듯했다. 언젠가 명상을 배울 때,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구름은 하늘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때로 일어나고 사라진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그러하니, 잠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구름이 하늘을 가려도 하늘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나는 하늘이다.”


붉게 번져오는 여명과 공명을 이루다

은하수를 촬영하는 동안 바람과 함께 추위가 몰려왔다.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남았는데, 가져간 두꺼운 외투도 습기 가득한 추위가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포터와 나는 따뜻한 물과 에너지바를 나눠 먹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덕분에 포터와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순박한 스물두 살 네팔 청년과 쉰다섯의 한국 아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어느새 마차푸차레 봉우리 옆으로 붉은 여명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히말라야의 진동이 내 안의 진동과 만나 공명을 구축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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