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히말라야 대장정 -6화

마르디히말 베이스 캠프

by 이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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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하늘의 붉은 기운이 깊고 푸른 새벽의 적막을 깨뜨렸다. 실낱같던 여명이 하늘 높이 번져갔고, 어둠에 가려져 있던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마침내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차푸차레는 힌두교 삼대 신(神) 중 신도들이 가장 많이 받드는 ‘시바’ 신이 머무는 곳으로 믿고 있고, 그래서 네팔 정부는 등산을 금지했다. 어둠의 장막을 걷고 나타난 마차푸차레는 지상에 있는 산이 아니라, 천상에 떠 있는 거대한 섬과 같았다. 나도 모르게 낮고 긴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아!" 그것은 언어가 아니었고, 의도한 묘사도 아니었다. 무의식에서 반응하는 웅대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의 표시였고, 시바 신의 신성에 대한 아득한 감탄이었다. 연거푸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가슴 밑바닥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차올랐고, 그것은 이내 눈물이 되었다. 오랫동안 나의 버킷 리스트 최상단에 머물렀던 그 꿈을 실현하고 있는 그 순간마저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마르디히말 뷰포인트는 어느새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우리 일행도 무사히 어둠을 뚫고 그곳에 도착해서, 이제 막 시작된 일출을 맞았다. 여러 국적의 언어가 쏟아졌지만, 그 말들은 번역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가 같은 감동을 말하고 있는 것이어서, 한국어로 묻고 영어로 답해도 답답함이 없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이들도 마치 그 여정을 처음부터 함께한 사람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히말라야의 일출은 그토록 영험한 것이었다.


마르디히말 뷰포인트에서 여정의 종착지인 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로 가는 일만 남았다. 일행은 다시 배낭을 둘러맸다. 여전히 바람은 차가웠고, 구름은 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역으로 흐르며 요동치는 일을 반복했다.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은 선명했지만, 가이드 람은 여전히 "비스따리, 비스따리!"를 주문했다. 벅찬 감동에 들뜬 마음이 혹시라도 방심으로 이어질까 염려하는 리더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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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일행은 또 다른 감정에 휩싸였다. 그곳이 해발고도 4,500m, 길었던 여정의 끝 지점이라는 푯말을 보는 순간,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이 몰려왔다. 하이 파이브를 하며 서로 축하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부족한 공기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던 순간, 근육의 통증으로 한 걸음 떼는 것조차 힘들었던 순간들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뷰포인트에서 보았던 타국의 여행자들도 다시 만났다. 서로 사진을 찍고 찍어주느라 분주했지만, 먼저 찍겠다는 다툼은 없었다. 국내 산행을 할 때, 정상에서 서로 인증 사진을 찍겠다며 자리다툼을 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그곳 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에서는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한 긴 줄도 없었고, 새치기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양보했고, 배려했으며, 진심으로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을 나누었다. 일행을 그곳까지 성실히 안내해 준 가이드 람에게도, 무거운 짐을 들어준 포터들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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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베이스캠프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치 그곳에 못 박힌 듯 서서 눈물을 흘렸다. 나의 언어는 마음속에서 결박된 듯,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했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작년 말, 나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업무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산행은 완전히 잊은 채 거의 매일 술에 의지하며 지냈다. 스트레스는 날로 가중되어 건강은 끝도 없는 바닥으로 치달았고, 결국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심각한 우려와 경고를 받았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히말라야에 가겠다는 의지 덕분이었고, 그런 나를 묵묵히 응원해 준 아내와 가족의 역할이 컸다. 히말라야에서 흘린 눈물은 나 스스로에 대한 다독임이었고, 아내와 가족의 믿음에 대한 깊은 고마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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