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디히말 베이스 캠프, KARMA
하이캠프에서 마차푸차레 뷰포인트로 가는 길, 바위 위에 '카르마'라고 적힌 글귀를 보았다. 산스크리트어로 '행위'나 '행동'을 뜻하는데, 불가에서는 '업(業)' 또는 '업보(業報)'로도 풀이된다. 세상 모든 인연이 과거의 카르마로 인해 맺어진다고도 한다. 누가 하필 기나긴 트레킹 코스가 절정으로 치닫는 길목에, 무슨 이유로 이 단어를 적어 놓았을까. 아마도, 당신은 어떤 연유로 지금 여기에 와 있으며, 이 길을 걸음으로써 앞으로 펼쳐질 삶을 생각해 보고, 이 길을 걷는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았다.
직장 생활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과 다르지 않게, 나 또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의 조그만 부품 같은 삶을 살았다. 앞만 보고 달린 덕에, 회사로부터 역량과 성과를 인정받아 동료들이 부러워할 만한 좋은 기회도 주어졌고, 덕분에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에도 풍족하진 않았지만 부족함은 없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염원했던 위치에는 끝내 닿지 못했다. 그 언저리를 맴도는 동안 나의 몸과 마음은 마모되었고, 결국 삐걱거리는 소리를 낼 지경에 이르렀다. 히말라야는 바로 그때 내게 마치 구원처럼 제안되었고,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제안에 응했다. 아내와 가족은 행여나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 걱정은 지지와 응원의 또 다른 표현이어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마르디히말 트레킹 코스를 걷는 동안 많은 여행자를 만났다. 네 살짜리 아들과 함께 트레킹을 왔던 프랑스인 부부는, 지금은 태국에 살고 있지만, 트레킹을 마치면 고향인 프랑스 남부로 돌아갈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프랑스 남부는 나에게도 추억이 깃든 곳이다. 1995년 여름, 프랑스 보르도 대학교에서 여름학기를 보내며 주말을 이용해 기차를 타고 아를, 아비뇽, 엑상프로방스, 마르세유, 칸, 그리고 니스 등지를 여행했다. 30년 전이라 까마득히 잊고 살았는데, 프랑스인 부부의 말에 잊혔던 기억이 소환되면서, 나는 잠시 스물다섯 살 그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이번 트레킹이 그 부부에게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그리고 네 살짜리 아들에게는 마음속 깊이 각인될 소중한 경험으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포레스트캠프에서 만난 미국인 남성과 오스트리아인 여성 커플은, 이곳에 오기 전 인도에서 요가 수업을 같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요가 수업 중에는 서로 말 한마디 섞지 않았고, 호텔에서 체크아웃하며 아는 얼굴끼리 인사를 나누다 서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친구가 되어 이곳까지 함께 트레킹을 왔다. 굳이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의 관계를 '저스트 프렌드'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그 두 사람은 곧 연인 사이로 발전할 가능성이 엿보였다. 두 사람은 우리 일행과 걷는 속도가 비슷해서, 트레킹 내내 쉼터나 캠프에서 연거푸 만났는데, 베이스캠프 정상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우리 일행의 일부처럼 느껴질 만큼 친근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소중한 인연의 의미를 절감하게 된 것은 바로 우리 일행이었다. 여행작가학교에 등록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이들인데, 삼 개월 동안 수업을 들으며 서로의 얼굴을 익혔고, 그 인연이 히말라야까지 이어졌다. 함께 걷는 동안 때로는 울고 웃으며, 때로는 떠들고 침묵하며, 힘들 때는 서로를 격려하며 히말라야 봉우리만큼 높고 단단한 우정을 쌓았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는 그 길에 들어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길을 걷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한 명도 대형을 이탈하거나 낙오하지 않고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 덕분이다. 여기에 가이드 람과 포터 시바, 수바시, 그리고 순카시의 헌신적인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순수한 그들의 미소와 따뜻한 몸짓에서 치유를 얻은 것도 사실이다.
‘카르마’라는 단어로 인해 자칫 흘려보낼 뻔했던 것들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성찰하고, 그 길 위에서 마주친 인연들을 기억하며, 지금 이 순간의 행위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빚어낸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곳에 마치 낙서처럼 그 단어를 남긴 사람이 이런 심오한 의도를 품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는 히말라야 고봉에서 느꼈던 경외감과 벅찬 감동에 더해 또 다른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