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둘러 보고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들어서자,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는 듯하다. 부드러운 조명 아래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에 올리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반가사유상이 고요하게 나를 맞이한다. 방의 입구에 적힌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문구처럼, 이곳은 문화유산을 단순히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두 점의 불상과 더불어 명상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반가사유상이 만들어진 시기는 무려 1,400여 년 전. 오랜 시간을 품은 불상이 나에게 “함께 생각해 보자”라고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했다. 순간, 묵직한 전율과 경이로움이 가슴 깊숙이 번졌다. 나는 잠시 한 쪽으로 비켜서서 두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낮고 길게 내뱉으며, 내면의 소음을 지워갔다. 예전에 명상 선생님께서 “명상은 생각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라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잡생각은 버리려 집착할수록, 오히려 더욱 많아지는 법.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네가 참 생각이 많구나”라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 짧은 순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안정과 맑음이 마음에 스며드는 듯했다.
이 경험이 더욱 깊어진 데에는 ‘사유의 방’의 건축적 의도도 한몫했다. 벽면을 따라 부드럽게 흐르던 조명,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색채,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배치된 두 불상의 조화가 내면의 평화를 찾는 데 도움을 주었고, 더욱 깊은 사유를 허락했다.
문득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미술관에서 마주했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깊은 사유의 순간을 포착한 듯하지만, 그 표현 방식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고통과 고뇌 속에서 사유를 이어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구부정한 자세와 긴장된 근육은 고뇌의 깊이를 드러내는 느낌이며, 얼굴은 고통과 번민으로 가득 차 있어서, ‘사유(思惟)’란 단순히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 치열한 과정임을 보여준다. 반면, 반가사유상은 육체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알 수 없는 미소가 돋보이는데, 마치 세상의 번뇌를 초월하고 사유의 과정을 통해 내면의 평화에 도달한 듯한 느낌이다.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문화 속에서 태어난 두 작품이지만, 결국 그들은 ‘생각’이라는 인간 고유의 행위와 ‘스스로에 대한 탐구’라는 지점에서 만난다. <반가사유상> 앞에서 느꼈던 마음의 잔잔함,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여준 고뇌의 순간을 기억하며, 나 역시 복잡한 삶 속에서 나만의 ‘사유’를 계속해야겠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여정, 그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