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차는 텅 빈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낮 동안 그렇게 붐비던 서울이, 지금은 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하다. 이 시간에 스스로 이불 밖을 나온다는 건, 솔직히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알람이 울릴 때만 해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하는 망설임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런데, 막상 차에 올라타면 묘한 쾌감이 번진다. 모두가 꿈속에 머무는 동안, 나만 현실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먼저 빠져나온 기분이다.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해 산길을 오른다. 발밑만 밝히는 작은 빛, 그리고 점점 거칠어지는 숨. 몇십 분 전까지 분명 서울이었는데, 휴대전화 신호가 약해지는 만큼 머릿속 잡생각도 함께 잦아든다. 빌딩 숲 대신 진짜 숲의 냄새가 폐부에 스며들고, 자동차 경적 대신 내 거친 숨소리가 고요를 채운다. 서울 속에서 이런 완벽한 고립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꽤 괜찮은 특권이다.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시야 끝에 낯선 색이 스며든다. 바위틈에 핀 진달래다. 따뜻한 평지가 아닌, 이 거친 능선을 선택한 꽃. 공원의 진달래가 ‘가꿔진 꽃’이라면, 이곳의 진달래는 ‘스스로 버텨낸 꽃’이다. 흙 한 줌 변변치 않은 자리에서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끝내 꽃을 피워냈으니. 이 시간,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눈길을 마주치자 “잘 왔다”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다. 어쩐지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이윽고 해가 떠오른다. 거대한 바위들이 천천히 주황빛으로 물든다. 매일 뜨는 해인데도, 산에서 만나는 풍경은 다르게 다가온다. 숨을 몰아쉬며 여기까지 올라왔기 때문인지,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더 또렷하다. 그제야 속이 비어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내려가서 뜨끈한 국밥이나 한 그릇 먹어야겠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살아갈 힘이 채워진다.
백운대 아래를 내려다보니, 서울은 아직 구름 속에 잠겨 있다. 빌딩과 아파트들이 무거운 이불을 덮은 듯 조용하다. 곧 다시 시끄러워질 도시지만, 지금은 완전히 ‘음 소거’된 상태다. 저 아래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분주히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 텐데, 그 소란은 이곳까지 닿지 않는다.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산은 거창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잠시 ‘로그아웃’할 틈을 내어준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힘을 슬쩍 쥐여준다. 다음에도 새벽 알람이 울리면 “내가 미쳤지”라고 구시렁거릴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또다시 이 ‘비정상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까. 이토록 고요하고 다정한 서울의 반전을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