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덕유산

야속했지만 감사했던 산행

by 이창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제공하는 실시간영상 서비스를 통해 덕유산 정상에 상고대가 피었음을 확인하고, 기상 정보를 제공하는 앱에서도 분명 다음 날 여명 무렵 하늘이 맑을 것이라는 예보를 보고 출발했다. 새벽 4시, 구천동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별도 초롱초롱 반짝거렸고, 6km 지점의 백련사를 지날 때도 역시 하늘은 맑았다. 그래서 순백의 상고대를 전경으로 놓고 붉은 여명과 황금빛 일출을 담고, 해가 뜨고 난 후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사슴의 뿔과 같은 상고대를 맘껏 카메라에 담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은 더욱 상승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상인 향적봉에 다가갈수록 구름이 몰려오더니 급기야 온 하늘을 덮어버렸다. 일출빛은커녕 여명빛조차 볼 수 없었다. 매서운 삭풍을 등지고 얼어가는 발을 동동 구르며 하늘이 잠시라도 열리기를 기다렸지만, 일기는 나의 바람을 매몰차게 외면하고 있었다.

구름 속에 갇힌 향적봉 정상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을 때, 먼 곳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고, 답답했던 시야가 아주 잠깐 열렸다. 서둘러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고 몇 컷을 찍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빛은 다시 사라지고 또다시 흑백 세상이 되고 말았다. 구름이 야속했지만 자연의 일을 인간인 내가 어찌할 수는 없었다. 또다시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철수하기로 했다. 손발과 몸이 이미 얼어붙어 더 이상 버티기도 어려웠다.


사진에서 말하는 '우연한 발견'은 사전적인 의미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길 가다가 동전 하나를 줍는 그런 우연도 카메라가 없으면 사진으로 담을 수 없고, 특히 산에서의 좋은 풍경은 같은 산을 몇 번을 올라야 겨우 한 번 정도 만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우연이 아니라 집요하게 그 산의 숨겨진 풍경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산 사진의 어려움이자 재미이기도 하다.


철수하기로 결정을 하고 하산을 시작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오색의 여명과 파란 하늘은 보지 못했지만, 덕유산 상고대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으로 올라 향적봉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의 입에서도 감탄이 흘러나왔다. 산불방지기간이 끝나면 넉넉한 덕유의 품에 다시 안겨, 중봉을 지나 남덕유산까지 걸어볼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얼었던 손과 발에 온기가 돌면서 몸이 다시 데워지는 기분도 들었다.


동행했던 친구는 덕유산이 처음이었다. 겨울 산도 처음이었고, 상고대도 처음 본다고 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던 친구의 여유는, 좋은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던 나의 욕심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덕유산(德裕山: 덕이 넉넉한 산)에 이미 물든 듯했다. 자연이 주는 만큼에 감사하고, 또 오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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