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마지막 드리는 편지

by 이창근
사랑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가 저희 곁을 떠나가신지 3년이 흘렀습니다. 슬픔도 시간 속에 풍화되어 사라져 간다는데, 저에게 3년이란 시간은 슬픔을 풍화시키기엔 너무 짧은가 봅니다. 따뜻한 손으로 제 얼굴을 만져주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마치 방금 전의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제 슬픔은 아직 극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포근했던 기억은 식어가는 차의 향기처럼 점차 희미해져갈 것을 알기에, 그 앎이 또 다른 슬픔이 되고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더해져, 이제 제 슬픔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술에 취한 날 밤이면 아버지를 부르고 그리다 잠이 듭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요령없고 미련한 농사꾼이었던 아버지, 자전거에 키보다 큰 짐을 싣고 시장터를 누비던 아버지를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거칠었던 수염도, 크고 딱딱한 손도, 몸에 배인 땀냄새도 싫었습니다. 족보가 뭔지도 모르는 저에게 너는 전주이가 덕천군파 17대손이라고 끊임없이 주입시켜던 것도 부질없다 생각했습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시골 촌구석이 싫었고,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늘 대처로 나가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었지요.


그런데, 나이 쉰을 훌쩍 넘긴 지금, 그토록 싫어했던 모든 것들이 그립고 향기롭게 느껴지는 건, 어릴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버지의 따뜻함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찾으러 갔던 주막집에서 아버지께 처음으로 사이다 탄 막걸리를 받아 마시던 일, 반딧불 날아다니던 여름 밤에 상림 냇가에서 아버지와 같이 멱 감던 일, 전기도 안 들어오던 과수원 집에서 호롱불 켜고 아버지와 저녁밥을 짓고 먹던 일, 깜깜한 밤에 랜턴 하나 들고 아버지와 과수원 순찰을 하던 일, 과수원에 약을 칠 때 키도 덩치도 작은 놈이 줄 잘 잡아당긴다고 아버지께 칭찬받던 일 등등, 아버지와 함께 했던 수많은 일들이 저를 키웠고 그런 소중한 추억이 이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산행을 하다보면 가끔 커다란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몸을 곧추 세운 소나무들을 발견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저 혼자 살기도 벅찬 세상에서 가족을 등에 업고 그 척박한 바위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려 굳건하게 자리잡은 아버지의 얼굴이 겹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제게 그런 소나무였고, 산이었고, 강이었습니다. 그 나무 그늘 아래 평안하게 쉴 수 있었고, 그 산의 품은 따뜻했으며, 그 강은 언제나 평화로웠습니다.


아버지, 우리의 인연이 윤회를 거쳐 다음 생이 온다면, 그때는 우리 순서를 바꿔서 아버지가 저의 아들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저는 전생의 기억으로, 울며 보채는 아버지를 안아 다독거릴 것이고, 배밀이하고, 일어나 걷고, 옹알거리고, 말하기 시작하는 모든 순간을 눈여겨볼 것입니다. 자전거를 가르치고, 매듭 묶는 법을 가르치고, 등산하는 법을 가르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전생에 이루지 못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도록 제 혼신의 힘을 다해 응원하고 지지할 것입니다. 그것으로 아버지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의 10분의 1이라도 보답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아버지 제사를 지내는 일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 돌아가신 날을 잊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는 슬픔을 기억하는 날이 아니라, 아버지의 기일을 기준으로 자식들 다 모여서 아버지를 추억하고, 형제들 간의 우애를 다질 수 있는 축제의 날로 만들고자 합니다. 아버지께서도 흔쾌히 허락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곳에서 많이 외로우시더라도, 어머니는 저희 곁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머물러 계시다 가시도록 해주십시오.


아들의 편지는 여기서 매듭을 짓겠습니다.

아버지, 부디 좋은 곳에서 윤회하시고 다음 생에 꼭 저의 아들로 다시 만나십시다.


2024년 12월 2일, 음력 11월 2일

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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