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벨레 (The Wave, 2008)
Die Welle: The Wave : 물결
Ramones 의 Rock 'N' Roll High School (커버 버전)이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전혀 선생일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남자가, 절대 선생이 들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노래를, 심지어 따라 부르며 운전한다. 그런데 이 사람, 선생이다. 독일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이 영화는 과연 어떤 영화일까?
영화에서 나오는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프로젝트 기간'이라는 교육과정에 따라서 한 가지의 주제를 일주일 동안 한 선생님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레이너 벵거 선생은 전제주의 (독재)에 대해서 가리키고 아이들은 '쿨한' 선생님의 수업을 배우러 온다. 참 아이러니하다 - 전제주의와는 반대되는 Ramones의 노래로 영화가 시작되더니 말이다. 아니면 당연한 연출인가?
첫 수업에서 아이들은 수업 내용이 좋아서 온 게 아니라 그냥 쉬운 수업에 온 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들 '그냥 그런' 표정과 장난기 섞인 대답들, 수업과정에는 딱히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다. 수업에는 부자 아이도 있고, 예쁜 아이, 수업에 잘 참여하지 못하는 팀 (Tim)까지.. 다양한 사회계층이 존재한다.
레이너는 아이들에게 독재에 대해서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나오는 대화:
나치는 진짜 나쁜 짓을 했지만 독일이 어떻게 또 독재가 돼요. 불가능하죠.
이 영화에서 정확히 레이너가 자신의 수업을 언제부터 사회 실험으로 변형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추측해보자면 이 장면이 아닐까. 과연 독일은 또 한 번의 독재가 가능할까 - 영화 마지막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되는 질문이다. 또 한 번의 독재정권이 가능한가.
먼저 벵거 선생은 독재정권에는 리더가 필요함을 설명하고 아이들과 스스로를 리더로 지목한다.
또 아이들은 말하고 싶으면 무조건 일어서서 말을 해야 한다고 한다. 왜? 일어서면 운동도 되고 혈액순환이 되어서 집중도 잘 되니깐. 아이들은 자신을 레이너라고 부르지 못하고 수업시간엔 벵거 선생님 (Mr. Wenger)라고 불러야 한다. 이렇게 대화의 방식을 변형했다.
처음 아이들은 적응을 못하는 듯 하지만 벵거 선생의 말에 줄곧 아이들은 따라 한다.
이 영화는 사실 굉장히 지루한 영화이다. 하지만 지루한 만큼의 반전이 있다. 문제는 너무 지루하고 편안하게 독재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여준다는 거다. 벵거가 독재는 무엇을 필요로 하냐고 묻자 아이들은 아이디어, 믿음,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벵거 선생은 자신이 리더를 하겠다고 우긴 적도 답을 얻어낸 적도 없다.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아이들이 대답하고 자발적으로 인정하게 하는 것. 이 영화가 나치 독재정권과 연결 짓는 부분과 중요하게 작용하는 부분이다: 자발적인 충성심과 참여.
다음날, 벵거 선생은 아이들에게 하나의 공동체의 개념을 설명한다. 특히 이런 개념을 행동으로 실행한다. 집중이 더 잘되고 아래층에서 수업하는 "무정부 수업"을 시끄럽게 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에게 왼발 오른발을 맞추게 한다. 마치 군인들이 행진을 하듯 말이다.
그러고 그는 서로 하나가 되기 모든 학생과 본인이 흰색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와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벵거 선생은 한 번에 바로 우리가 독재가 될 거라는 말을 하지도 않고 이게 실험이라고도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진짜 이유와는 다른 그럴듯한 이유로 아이들을 동조하는 것.
팀은 수업에 잘 참여하지 못하고 놀림받고 아이들에게 마약을 무료로 주며 친구를 구매하는 아이이다. 겉으로는 잘 살사는 팀. 그는 부모님의 관심도 못 받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학생이다.
반에서 유니폼을 입기로 하자 팀은 자신의 옷장에서 흰색과 청바지가 아닌 모든 옷을 태워버린다.
옷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모티브이다. 아이들은 흰색 옷과 청바지를 입음으로써 사회계층을 섞어버린다.
흰 옷이 없는 친구에게 부유한 친구가 옷을 사서 나눠주고 여성 친구들은 똑같은 색상이라도 디자인을 맞춰보는 장면들이 나온다.
마르코는 반에서 가장 유명한 학생이다. 마르코의 여자친구인 카로는 애들이 설마 다 입었겠냐는 생각에 흰옷과 청바지를 입고 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다 임시 교복을 입고 왔고 이때부터 카로는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카로는 반항아이다. 남자친구 마르코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스페인으로 떠나자는 둥, 뭘 하자는 등.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라난 마르코에겐 카로는 사랑하는 여인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신경 써주지 않는 사람이다.
벵거 선생은 소속감과 공동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말을 법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모임명을 정하기 시작한다. 카로가 제시한 이름을 떨어지고 마르코가 제시한 "The Wave" (물결들)이라는 이름이 정해진다. 이렇게 하나의 사회가 설립되었다.
여기서 이들은 자신들의 특기사항을 살려서 이 공동체의 설립을 돕는다. 어떤 친구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어떤 학생은 로고를 만들고.
불과 며칠 사이에 아이들이 얼마나 소속감에 심취되었는지 알 수 있다. 팀(Tim)이 패거리에게 마약을 요구받자 팀은 거부한다. 싸움이 날 즈음에 한때 팀을 놀렸던 버머 (Bomber)와 인도계 독일인 시난이 팀을 도와준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단체를 알리고 싶어 한다. 한 부자아이는 5천 장의 스티커를 구매해서 반 아이들이 동네 상점과 공공기물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웨이브'의 로고를 그리며 스티커를 붙인다. 모두 자발적인 아이들의 행동이다. 벌써 소속감과 존재감으로 하나가 되었다.
벵거 선생은 부인과 행복하고 건강한 사랑을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수업을 가르치고 자신만의 실험을 하면서 아이들 뿐만 아니라 본인의 삶도 바뀌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벵거가 집에 왔을 때 갑자기 팀이 튀어나와서 본인을 경호원이라고 말한다. 리더에 대한 자발적인 충성심. 팀은 벵거 부부와 불편하지만 저녁까지 먹고 눈치 없이 계속 있으려고 한다. 벵거가 팀을 반 강제로 집 밖으로 보내고 다음날 팀은 하루 종일 집에 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얼마나 소속감에 심취된 인간들이 자신의 리더에 대한 허망한 충성심을 가득하게 하는지 보여준다.
카로는 웨이브를 반대한다. 학교 신문을 이용해 반대 포스터지를 만들고 뿌리기 시작한다. 물론 웨이브원들이 포스터들을 회수하고 카로의 남자친구를 시켜 카로를 더욱더 소외시킨다. 영화 '더 웨이브'에는 정말 크고 작은 일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가 독재로 자연스럽게 변화게 되는지 보여준다.
벵거 선생은 일주일의 수업이 끝나는 금요일 아이들이 도시를 스티커와 그라피티로 쑥대밭을 만들어 놨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아이들에게 일주일간 느끼고 배운 것을 쓰라고 지시한다.
벵거 선생은 수중 폴로 코치이다. 마르코는 선수인데 웨이브원들에게 언제나 경기 참석을 부탁했다. 웨이브가 시작되기 전에는 4~6명 밖에 오지 않던 경기에 웨이브가 만들어지자 경기장이 꽉 찼다. 문제는 '웨이브 서포터즈'는 너무 당연하게 그들의 제복 (흰 티와 청바지)을 입어야 하고 입지 않은 카로는 관람을 거절당한다.
하지만 어느 독재에도 민주주의를 위해 외치는 자들이 있지 않은가 - 이 영화에서는 카로가 운동권을 표현한다. 문제는 영화를 보는 시청자들은 오히려 카로를 더 귀찮고 시끄러운 존재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만큼 영화는 자연스럽게 인류가 어떻게 독재로 변화되는지 보여준다.
카로와 친구는 자신들이 만든 포스터를 경기장에 난입해서 뿌리며 웨이브 단체를 반대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싸움이 벌어진다. 경기는 결국 마르코의 소원과는 달리 최악으로 변한다.
벵거 선생은 자신의 부인, 앙케와 한바탕 싸우고 혼자서 아이들이 쓴 글을 읽는다. 이 장면은 굉장히 고독해 보이지만 동시에 권력을 갖고 있는 리더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후에 동일한 구도가 보임).
아무도 없는 보트 집에서 그는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말 자신도 변해가는 걸까? 권력에 맛을 본 걸까? 글을 읽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찾아왔다.
손님은 마르코. 마르코는 자신의 여자친구 카로와 한바탕 싸웠다. 카로가 자신의 경기를 망쳤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다 본인도 모르게 카로에게 손지검을 한 것. 마르코는 주방에 들어와서 그녀를 사랑하지만 벵거 선생의 가르침이 자신을 변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고 마르코는 말한다: 이건 파시즘이에요!
마르코는 카로를 사랑하지만 화가 나고 나쁘게 변해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말한다: 멈추셔야 해요! 지금 멈춰야 한다고요!
벵거는 변했다. 독재자에게 반항이 아닌 의견조차 허용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벵거는 책상에 앉아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아이들이 강당에 모이고 벵거는 무대 뒤에서 아이들을 보고 있다. 자신의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팀이 그에게 다가와 말한다: "벵거 선생님 약속시간 15분이나 늦었어요." 그러자 벵거가 말한다: 문을 잠가. 방해받고 싶지 않다. 벵거가 집에서 혼자 아이들의 과제를 읽으며 보였던 구도와 비슷하다. 리더의 모습.
그가 무대에서 나오자 아이들은 모두 "훈련"된 자세로 일어선다.
학생들이 제안한 그들의 경례 방법으로 벵거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한다. 그는 정말 변해 버린 건가?
벵거는 아이들이 쓴 글을 읽기 시작한다. 한 부자 아이는 자신의 삶이 지루했지만 웨이브에 들어와서 정말 달라졌다고 하고, 다른 아이는 사회계열이 무너져서 너무 좋다고 말한다. 가족도 돌봐주지 않는 자신을 공동체원으로 들여보내 줘서 좋다고 쓴 학생도 있다.
아이들은 그런 벵거의 연설을 들으며 "저거 내가 쓴 건데!"하며 기뻐한다. 그리고 벵거는 그의 포부를 밝힌다.
"지금 우리 독일은 규탄받고 억압만 받았다! 우리는 일어서야 하고 웨이브는 전 독일로 퍼저야한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우리가 독일을 바꿀 것이다!"
열정과 혼을 다해 벵거는 독재자로 변형된다. 마르코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일어선다: "이건 말도 안돼! 무슨 소릴하는거야 당신!"
다른 학생들은 모두 마르코를 비난하고 제압하기 시작한다.
벵거: "저 배신자를 끌고 와라!"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벵거 선생은 물어본다: "우리가 이 배신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버머 (모자 쓴 학생),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네가 끌고 왔잖아?"
버머:... 저는 선생님이 끌고 오라고 해서 끌고 왔는데요?
...
벵거: 넌 그럼 내가 마르코를 죽이라고 하면 죽일 거니?
벵거 선생은 이 또한 연기였다.
벵거: "마르코, 괜찮니?... 우리가 처음 수업시간에 했던 질문이 뭐지? 독일이 다시 독재가 될 수 있을까? 우리의 모습을 보렴. 이게 독재란다."
(생략)
자, 이제 웨이브는 끝났다. 해산이야.
(생략)
팀: "말도 안돼! 웨이브는 내 삶이었어! 이렇게 끝낼 수 없어!"
그리고 팀은 총을 꺼낸다.
버머: "팀 그 총 내려놔 그거 공포탄만 쏠 수 있는 거라며"
팀은 버머를 쏜다.
팀이라는 캐릭터가 영화에 소개될 때부터 정신장애가 있는 듯한 아이로 표현됐다. 좋은 집에 살지만 그의 부모님은 관심을 주지도 않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팀. 그에게는 웨이브가 전부였다.
그러며 팀은 말한다. 난 네가 나 엿 먹이는 거 알고 있었어. 너희들 모두!
아무도 팀을 존중하지 않았다.
팀: "한 발자국만 더 가까이 오면 쏠 거예요."
벵거: "팀.. 리더인 내가 없어지면 웨이브는 어떻게 하니"
영화에는 여러 가지 캐릭터들이 존재하고 그 캐릭터들을 통해 스토리가 발전된다. 하지만 가끔은 주인공은 누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분명 영화는 주인공이 누군지 말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과연 누가 진짜 주인공일까 싶다. 이 영화에선 벵거와 마르코가 주인공인데 어쩌면 팀 혹은 벵거와 팀이 주인공이 아닐까. 팀이 눈물을 흘리는 이 장면에서 이 영화의 참 주인공은 팀이 아닐까 싶어 진다.
팀은 자살한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벵거가 순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하는듯한 표정 같다. 그리고 그의 후회.
<디 벨레>는 참 간단하고, 지루하고, 자연스럽게 독재의 형성과 참혹한 마지막을 보여준다. 독일의 나치 정권 또한 당시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독재자를 향한 충성심이 작용했고 한국도 수많은 독재가 폭력 (훈육)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가 깊었듯 말이다.
독재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독재는 어떻게 일어나는지 과연 누가 아는가?
<디 벨레>는 독재를 여러 관점에서 (부자, 가난한 사람, 운동선수, 사회 부적응자, 등등) 잔잔하게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