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의 일부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유치하지만 학창 시절 내손 편지 속 사연과 함께 단골로 담겼던 시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 멀리 전학 간 친구, 날마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한 친구, 좋아하는 선배에게도 편지를 썼다.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으로 유학 간 남자 친구와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러고 보니 나의 손 편지는 결혼전까지 이어졌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니 그런 감성을 간직할 수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같다. 새삼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 실감 나게 한다.
문학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리는 윤동주 이상 염상섭 현진건의 문학 전시 소식을 접하자 문득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시가 떠올랐다. 1930년대 서촌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문인들을 주제로 책 작가 초상 원화 사진 신문 자료 등의 전시품을 만날 수 있다. 놓치고 싶지 않은 특별한 전시 마지막날을 붙잡았다.
청와대 관람
사전 예약을 하고 긴 꼬리줄을 이어 기다리며 청와대 관람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전시가 청와대에서 열리니 가는 김에 청와대까지 둘러보자며 사전 예약을 했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경복궁역에서 하차해 버스로 갈아타지 않았다. 세 정거장 정도면 걷고 싶었다.걸어도 20분 정도면 청와대 정문에 이른다.
며칠 계속되던 1월의 봄날은 가고 하필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날이었다. 알싸한 찬기운이 얼굴을 휘감는다. 바로 옆 차도에서는 분주한 출근 차량의 소음이 들려온다. 따뜻한 겨울 햇살이 소중하고 고마웠던 아침! 그 햇살 품고 몸과 마음의 온도가 오르는 사이 청와대 입구에 도착했다.
혼잡하지 않을 때 청와대 관람부터 하고 전시는 여유롭게 돌아보기로 했다. 사전 예약 때 받은 바코드 인식으로 간단하게 입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자동차 소리 대신 고요함 속 낭랑한 새소리가 들린다. 마치 혼잡한 도시에서 조용한 숲으로 순간 이동한 느낌이다. 관람 동선 따라 곳곳에 안내원이 배치되어 있다.
겨울이라 초록의 잔디는 펼쳐지지 않았지만 대정원을 옆에 끼고 천천히 걸었다. 그리곤 청와대 중심 건물로 이동한다. 유일하게 실내 관람을 할 수 있는 본관 건물이다.
대통령 집무실과 외빈 접견실 영부인이 사용하던 공간 등 각각의 공간에 안내원이 배치되어 있다. 안내원들은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샹들리에 모양, 벽 바닥 문양 등의 설명으로 관람자들의 이해를 도와준다.
분위기는 초호화판인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에 비하면 소박하다고 해야 할 정도다. 게다가 주인 없는 빈 집은 책상 소파 정도가 놓여 있을 뿐 가구가 다 빠져 휑한 느낌이 든다.
본관을 나서면 다음 코스는 관저로 이어진다. 관저는 외부만 관람할 수 있다. 길 가다 남의 집 열린 대문 안 마당에 들어가 집 모양만 구경하고 가는 격이다. 관저를 나와 우리나라 전통 가옥 양식으로 의전 행사나 비공식 회의 등을 진행했던 상춘재와 녹지원을 지나면 청와대 내부 관람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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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관저
대통령의 기자 회견 및 출입 기자들의 기사송고실로 사용했던 춘추관은 청와대 밖으로 나와 있다. 청와대 정문을 바라보고 왼쪽 밖으로는 사적으로 지정된 칠궁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춘추관이 있다.
칠궁은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 씨, 영친왕의 어머니 귀비 엄 씨 등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칠궁과 춘추관
어쩌면 나에게는 청와대 관람 중 가장 좋았을지도 모를 산책로를 거닐어보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겨울철 기온이 떨어지는 날은 빙판으로 사고가 날 수 있어 정자가 있는 산책로는 그날 개방하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청정한 숲을 거닐고 있는 듯 맑은 공기와 새소리 고요한 아침 청와대 산책은 서울 도심에서 느끼는 특별한 힐링이었다. 거기에 시간 여행을 떠난 문학전시도 더해져 뿌듯했다. 청와대를 벗어나 서촌으로 향하며 이곳을 거쳐 간 역대 대통령 부부는 청와대의 이 좋은 기운을 평화로운 마음으로 온전히 다 누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