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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 영혼 Jan 04. 2023

겨울비 내리는 날 걷고 싶은 제주 올레길

제주올레 5코스

제주 동백과 바다 멍이 끌린다면


겨울 제주 여행은 눈이 내리거나 비가 내려도 걷기 여행의 매력이 있는 곳이다. 몇 년 전 겨울 여행에서 폭설이 내렸던 날 동백나무 군락지를 찾았다. 순백의 세상에 툭툭 떨어진 붉은 동백에 매료되어 찾았던 곳이다. 그런데 이번엔 비가 내렸다. 부지런히 걷기만 하고 싶을 때가 있는가 하면 낭만의 정서도 느끼며 놀멍쉬멍 걷고 싶을 때도 있다. 이날이 딱 그랬다. 많이 걷기보다는 동백도 궁금하고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아 바다멍 하며 진한 커피 향에 취해보고 싶었다.


제주 올레 코스 중 겨울 설경과 비 내리는 날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올레 5코스다. 눈 내리는 날 찾으면 좋을 동백나무 군락지와 바닷가에 자리 잡은 영화 건축학 개론 촬영지인 카페 서현의 집이 있어서다. 코스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전에 올린 글이 있으니 이번엔 생략하고 같은 길 다른 느낌을 담아보고자 한다.


제주올레 5코스 상세 안내가 담긴  

https://brunch.co.kr/@binsuk8/5


올레 5코스는 남원포구에서 출발해 쇠소깍 다리까지 13.4km에 걸쳐 바당올레와 마을 올레를 만나며 걷는 코스이다. 올레코스 완주를 목표로 스탬프 찍고 다닐게 아니라면 굳이 코스 그대로 따라 걸을 필요는 없다. 버스를 타고 출발지인 남원포구로 향하다가 순간 착각으로 잘못 내렸다. 남원포구가 아닌 위미항에서 하차해 버렸다. 다시 버스를 타지 않았다. 걷고자 나선 길인데 잘못 내렸다고 다시 버스 타고 이동할 일은 없다. 먼저 내린 거리만큼 걸으면 될 일이다. 어차피 위미항도 5코스가 지나는 길이다. 역방향으로 걸었으니 남원포구로 향하는 길에 위미리 동백나무 군락지를 먼저 만났다.

설경속 동백나무
 틀을 벗어나면 새로운 즐거움이 따른다


두 곳의 포인트만을 생각하고 그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틀을 벗어나 걷고 싶은 대로 걷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즐거움이 따른다.


버스를 타고 제대로 내렸다면 남원포구가 출발지라서 바로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을 테다. 하지만 잘못 내려 역방향으로 걷다 보니 출발지에 도착한 시각이 점심시간이다. 포구에 여럿 있는 식당들을 뒤로하고 마을길로 들어섰다. 어슬렁 거리며 다니다가 오랜 전통의 현지인 맛집도 만났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현지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먹거리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음을 새삼 느꼈다. 점심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위미항까지 가서 5코스를 이어 걸으며 카페에서 느긋하게 쉬어갈 생각이었다. 그리곤 다시 걷고 싶은 만큼 걷다가 굳이 도착지인 쇠소깍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버스 타기 편리한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버스를 타고 위미항까지 이동했기에 얼마 걷지 않아 바로 카페 서현의 집이 나왔다. 전에 걸으며 외부에서만 바라보고 지나갔던 곳이다. 영화를 보며 루프탑에 초록 잔디가 깔려 있고 탁 트인 바다 뷰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계절적으로 잔디는 누렇게 변해 있었지만 그 모습 그대로 느껴볼 수 있어 좋았다.


1층 내부는 마치 거실 공간처럼 테이블이 여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넓은 창의  폴딩도어는 활짝 열어 바다를 끌어들였다. 사람도 북적이지 않으니 그야말로 편안하게 멍 때리기 좋은 분위기다. 우리는 잠시 카페 내부를 둘러보고 주문한 커피와 주스를 들고 나왔다. 바로 건너편에 있는 승민의 작업공간 창가에 자리 잡았다.


 한동안 다른 사람이 없어 둘만의 공간으로 누렸다. 벽에 걸린 TV에서는 건축학 개론 영화를 틀어 놓았다.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잠시 감상했던 영화는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찾아 주어 추억에 잠기게 했다.


무엇보다도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정해진 틀로 걸어야겠다는 목적이 없으니 한 끼의 먹거리를 찾는 즐거움도 카페에서 쉼표도 여유롭다.


같은 길이지만 계절에 따라 기분에 따라 혹은 출발지와 도착지를 바꾸어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번처럼 날씨에 따라 어떤 마음과 방법으로 걸을지에 따라서도 그 길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한 번 걷고 스탬프 도장 찍었다고 그 길을 다 걸어보았다 할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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