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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 영혼 Dec 29. 2022

설경 속 청정 숲길 한라산 둘레길

추억의 숲길과 한라산둘레길 4구간 동백길


한라산 둘레길은 한라산(1,950m)을 두르며 천연림과 임도를 활용해 높이 600~800m 구간을 오르내리는 트레킹 코스이다. 산림청에서 국가 숲길로 지정한 숲이기도 하다. 한라산국립공원 보호를 위해 탐방 예약제를 실시하고 한라산 탐방에 집중되는 인원을 분산하기 위해서 한라산둘레길을 조성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는 불편을 겪으면서도 한라산 정상 설경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 같다. 덕분에 둘레길 숲길은 고요하기만 하다.

출처: 한라산 둘레길 홈페이지
추억의 숲길에서 출발

겨울철 눈 내린 한라산 탐방이나 둘레길 트레킹을 하고자 한다면 스틱 아이젠 스패츠는 필수로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아무 계획 없이 떠났으니 필수품을 갖추었을 리 없다. 제주도에 도착한 다음날 한라산 둘레길을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둘레길 코스를 살펴보니 대중교통으로 접근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동안 제주 올레길을 걸어본 경험치로 우리들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굳이 정해진 출발지와 도착지에 맞추어 다닐 필요는 없었다. 버스를 이용해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서 출발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올 수 있는 위치까지 이동하면 된다. 그날 가고자 했던 한라산 둘레길 4코스 동백길도 무오법정사 입구가 버스 정류장인데 그곳에서 둘레길 출발지인 무오법정사까지도 약 40분을 걸어야 한다. 게다가 버스도 60분~80분 간격이다.


숙소에서 버스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점을 찾았다. 서귀포 치유의 숲길 입구다. 전에는 아예 버스가 다니지 않아 대중교통으로는 갈 수 없었던 곳인데 버스 노선 하나가 생겼다. 치유의 숲길에서 4구간 둘레길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하여 출발지를 치유의 숲길로 잡았다.

한라산 둘레길 4구간 동백길 /츨처:한라산 둘레길 홈페이지

막상 치유의 숲길 입구에 도착하니 위로 올라갈수록 눈이 많이 쌓여 입장할 수 없다고 한다. 더군다나 아이젠도 스패츠도 없는 우리 차림으로는 어렵단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나가려고 해도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멍하니 서서 버스를 기다릴 수는 없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왕복 약 11km에 이르는 추억의 숲길이 있다. 서홍동 마을 자치단체에서 선조들이 다니던 한라산 옛길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며 주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만든 숲길이다. 그야말로 마을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다. 현지인만 아는 이런 길을 발견하는 것도 뚜벅이만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눈 위에 남겨진 발자국 따라갈 수 있는 곳까지만 다녀와보기로 했다. 입구에 나무 가지로 만든 건강 지팡이가 우리를 기다린 듯 딱 두 개 남아 있다. 그날 이 지팡이가 스틱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고마웠어 건강 지팡이

숲으로 들어서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숲의 매력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고 고요한 숲은 청정한 공기가 서늘하게 온몸을 감싸고 머리는 맑음으로 이끈다. 숲길 이정표도 잘 돼 있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숲길. 앞서 걸었던 사람 발자국 따라 앞으로 전진한다. 그 옆을 가로지르며 야생 생명체들의 발자국도 곳곳에 눈에 띈다. 이 엄동설한에 그들은 무엇으로 견디어 낼까. 역시나 마지막 도착 지점에서 노루들이 떼 지어 길가까지 내려와 있다가 우리가 지나가니 동시에 위로 달아난다. 먹거리를 찾아 내려왔을 텐데 묘지만 줄지어선 곳이라 특별히 숲 속과 다를 게 없을 텐데 안타까웠다.

한라산 둘레길을 만나다

누군가 지나간 발자국은 계속 남겨졌고 숲의 매력에 빠진 우리는 되돌아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러다가 유턴하는 지점까지 이르렀다. 앗! 기울어진 표지판 하나를 보는 순간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환희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라산둘레길 이정표다.

일정 구간을 표시하고 경계를 만든 건 사람이지 숲도 길도 어디서건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치유의 숲길도 추억의 숲길도 한라산 둘레길도 결국 모두 한라산 자락의 숲이다.

쭉쭉 뻗은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 곳곳에 동백나무가 무리 지어 있다. 산동백은 봄이 되어야 붉은 꽃을 피워내지만 간간히 피어난 꽃들과 반갑게 눈 맞춤도 한다. 도착지인 돈내코 탐방센터까지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계곡 구간이 여러 번 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눈에 덮여 형체를 알 수 없으니 잘못 발을 디디면 쭉 미끄러지고 물에 풍덩 발이 빠지기도 해 위험하기도 하다. 앞서 남겨진 발자국이 그토록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진 것도 처음이다.

숲길 트레킹은 물과 비상식 준비 필수

편백나무 숲을 지나서부터는 특별히 쉴만한 곳이 따로 없다. 하늘이 열리고 햇살이 잘 스며들어 눈이 녹은 계곡 바위 하나를 찾아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갔다. 숲길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안내된 예상 소요 시간이 짧더라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비상식과 물은 꼭 챙겨가야 한다. 조금 지쳐갈 무렵 우리는 목적지인 돈내코 탐방센터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약 1km 떨어져 있다. 그날 전체 3만 보 정도를 걸었다.

돈내코 탐방로로 향하는 길 서귀포 시내와 바다가 시윈스레 펼쳐진다

그 숲길이 너무 좋아 다음날도 도착한 지점에서 출발해 또 다른 둘레길 코스를 이어서 걸어보자며 숙소로 돌아왔다. 길 위에 서면 모든 것이 알 수 없는 미래로 펼쳐진다. 다음날은 하늘이 허락하지 않았다. 눈 예보로 한라산 둘레길은 갈 수 없었다.

출발지와 도착지에 맞추어 한라산 둘레길 4구간 동백길을 다 걷지 못하면 어떤가. 우리는 충분히 눈 덮인 겨울 숲에서 기쁨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냈다.

뚜벅뚜벅 걸어 다니며 만나는 제주는 여전히 사계절 언제라도 매력 가득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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