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5코스는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포구에 자리한 제주올레 안내소에서 출발한다. 이 마을은 포구 바로 옆 지하에서 끌어올린 용암 해수로 풀장을 운영해 유명세를 얻은 곳이다. 용암으로 걸러진 청정한 해수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물놀이를 즐기는 독특한 풍경도 볼 수 있다. 봄날 제주 바다를 조망하며 아담한 숲길 마을을 누비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원하게 뻗은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난대식물이 울창한 큰엉해안산책로, 위미 동백 군락지를 지나 쇠소깍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전체 13.4kn로 예상 소요시간은 4~5시간이다. 난도가 높지 않아 누구나 도전해볼 법한 길이다.
해병대원의 도움으로 다시 이은 바당 올레길
포구를 뒤로한 채 걸음을 옮기면 제주 특유의 검은 용암과 바다가 펼쳐진다. 용암 때문일까. 바다 빛이 푸르다 못해 검푸른 빛으로 일렁인다. 해안가에는 바닷바람과 햇살에 오징어들이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다.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길손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평지로 이루어진 해안도로를 1km 남짓 지나자 숲길로 들어서는 갈림길이 나온다. 길 곁에 서 있는 간세(제주 올레의 상징인 조랑말 모양 안내판)가 큰엉에 대한 설명과 진행 방향을 알려준다. 바다를 끼고 걷는 건 같지만 그 맛이 걸어온 길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높이 15~20m에 이르는 기암절벽 위로 약 1.5km에 걸쳐 난대식물이 울창한 숲 터널을 이루고 있어서다.
큰엉은 큰 바위가 바다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언덕이라 하여 붙여진 제주어다. 바로 옆이 바다 위 절벽이라는 것을 잊게 할 만큼 숲이 빼곡하다. 중간 중간 숲에서 벗어나 전망대에 서면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진다. 생김새에 따라 이름 붙은 바위들은 이채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곳곳에는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체력 안배를 위해 잠시 발걸음을 달래기도 좋다.
바다와 맞닿은 절벽 위 아름다운 길을 이처럼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건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 해병대원들 덕분이다. 올레길을 만들 당시 끊어지고 묻혀버려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바당(바다) 올레길을 그들의 도움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길을 내는데 조건 없이 구슬땀 흘렸을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걷는다.
.
이곳에서 숲 바다 하늘이 만나 만들어내는 한반도 형상을 찾는 재미도 즐겨보자. 위치를 몇 걸음씩 조금씩 바꾸어가며 계속해서 셔터를 누르다 보면 제법 그럴싸한 그림이 나온다.
자연이 빚은 형상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자 만족감이 밀려온다.
오랜 나무가 모인 숲, 위미 동백나무 군락
겨울부터 봄이 드리우는 이맘때까지 SNS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제주 여행 사진은 바로 붉은 동백꽃이다. 위미리 역시 동백 명소 중 한 곳이다. 마을에는 동백나무 군락지와 제주 동백수목원 두 곳이 있다. 제주 동백 수목원은 입장료를 받고 운영하는 개인 농장이며 위미 동백나무 군락은 제주도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된 곳을 말한다.
.
제주올레 5코스를 걸으며 만나는 위미 동백나무 군락은 수령이 100년을 훌쩍 넘는 키 큰 동백 600여 그루가 숲을 이룬 곳이다. 지금의 울창한 숲이 만들어진 건 오래전 이 마을로 시집온 현맹춘 할머니가 한라산에서 동백 씨앗을 가져와 황무지에 심어 가꾸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진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심었던 동백나무는 여행객은 물론 올레꾼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근사한 숲이 되었다.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는 느긋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멋스러움의 절정을 펼쳐 보인다. 이곳의 키 큰 동백은 겨울철보다 봄이 되면 더욱 화려해진다. 제주올레 5코스를 3~4월경에 걷다 보면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길은 아직 반도 걷지 못했는데 동백 숲에 반해 이리저리 사진 담느라 한참을 머물렀다. 마침 마을에는 카페 식당이 몇 곳 있어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 마을을 지나 5코스 중간쯤에 자리한 위미항 주변에도 횟집들이 있어 제철 회나 매운탕 등으로 식사할 수 있다. 제주어로 '보말'이라고 불리는고둥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도 맛이 특별하다. 보말죽 보말칼국수 보말 미역국 등이 있으며 보말 짜장면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견과류와 보말을 얹은 짜장면 한 그릇을 맛있게 비우자 다시 길을 나설 힘이 생긴다. 한편 올레길 트레킹에 재미를 더하는 스탬프는 출발 중간 도착점까지 3번 찍어야 한 코스가 완성된다. 위미 동백나무 아래에 중간 스탬프 찍고 가라고 제주올레 이정표 중 하나인 간세가 올레꾼을기다리고 있다.
돌담 곁 풍경을 지나 쇠소깍에 닿다
위미 동백나무 군락을 지나 다시 해안가로 접어들면 '널 보면 빙삭이(온화하게 소리 없이 웃는 모양) 웃음이 나'와 같은 예쁜 글귀를 담은 액자가 눈길을 끈다. 액자들은 푸른 바다를 배경 삼아 쌓아 올린 돌담을 장식하고 있다. 데이트 코스로 거닐어도 그만이겠다 싶은 그 주변에 영화 <건축학 개론>에 등장했던 '서연의 집'이 카페로 거듭났다. 2층 테라스에 올라 바다 조망의 운치를 느껴보고 차 한잔 마시며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해안가 따라 이어지는 길에는 시와 사진 음악을 즐기며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개방형 갤러리도 있어 절로 걸음이 느려진다.
잠시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가 다시 해안가 숲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5코스 도착지점이다. 이곳에서 만나는 효돈천은 한라산 정상에서 발원해 서귀포시 하효동과 남원읍 하례리 경계지점에 이르러 바다로 흘러드는 강이다. 효돈천을 포함해 약 13km에 이르는 구간은 국가지정문화재이자 천연기념물 제182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한 2002년 유네스코 인증 제주도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도 선정돼 청정한 환경을 자랑한다.
쇠소깍은 효돈천 하구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해 바닷물과 만나 깊은 소를 이루는 곳을 일컫는다. 빼어난 비경을 간직해 명승 제78호로 지정된 곳이다. 지명인 효돈을 뜻하는 '쇠'와 연못을 뜻하는 '소', 끝을 뜻하는 '각'이 합쳐진 제주어로 '쇠소깍'이라 불린다. 쇠소깍이 있는 하례리는 서귀포시 남원읍 서쪽 끝에 있는 마을로 하천 오름 바다 숲을 두루 갖춘 생태관광지다. 효돈천 내창(건천) 트레킹을 비롯해 다양한 생태체험도 즐길 수 있어 오래 머무르며 자연에서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