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만에 내려와 보니 밭은 온통 풀로 뒤덮였다. 그동안 태풍도 지나가고 비도 많이 내렸다. 지난번 다녀갈 때 고추는 지지대를 세우고 줄도 매주었는데 여기저기 고추대가 부러져 버렸다. 고추가 주렁주렁 열렸는데 따주지 않으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 버린 것 같다.
열매가 열리기 시작한 참외 수박 호박은 땅에 닿아 무르지 말라고 생수 페트병과 우유통 아래 부분을 잘라 받쳐 주고 갔었다. 이리저리 길게 뻗어나간 덩굴 식물들이 풀숲에 엉겨 있으니 조심스럽게 헤치며 풀베기를 했다. 숲에서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다. 노랑이와 초록이를 발견할 때마다 반갑기 그지없다. 큼직하게 커버렸지만 온전한 상태로 자라 있는 참외, 한창 커가는 초록 수박, 호박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다 지쳐 물러버렸다. 토마토며 가지고추도 풍성하게 열렸고 옥수수도 푸짐하게 수확했다. 호우와 폭염 속에서도 이만큼 견뎌 주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가장 손길이 많이 가야 할 시기에 한참을 그냥 방치해 두었기에 작물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풀들이 작물에 해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번엔 오히려 풀이 폭염과 강한 비로부터 작물들을 보호해 주어 자연이 일을 해준 셈이다. 농약이나 화학 비료는 물론 비닐 멀칭도 하지 않는 자연농은 풀을 적당히 키워 멀칭용으로 사용한다. 가장 왕성하게 자랄 시기였기에 폭풍 성장한 풀은 숲을 이루어 동물들의 서식처가 되기도 했다. 아침에 도착해 밭으로 들어서니 인기척에 놀란 고라니 두 마리가 콩밭에서 뛰쳐나왔다. 어린 녀석들이다. 순식간에 망을 뛰어넘어 쏜살같이 내달려 산으로 올라갔다. 작년에도 우리 밭은 고라니들의 천국이었다. 콩이며 고구마 등을 몽땅 먹어치워 버렸다. 잎이 광합성 작용을 해야 하는데 열매도 맺기 전에 몽땅 따먹어 버렸으니 아예 수확을 하지 못했다. 올해는 주변에 망을 쳐 놓았다. 2미터 정도의 높이 인데도 가뿐하게 넘어가는 게 아닌가. 그래도 이번엔 콩이 열리기 시작한 상태에서 잎을 따먹었다. 땅콩은 두더지 소행인지 고라니인지 알 수 없다.
가을이 되어 일정 부분이라도 수확할 수 있을 정도면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 여기리라. 농사지어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것처럼 동물들과도 나눠 먹는다 생각하면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동물들의 영역을 자꾸 침범하다 보니 생겨나는 일이지 않은가.
어쨌든 드디어 우리 밭이 자연이 일을 하는 밭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