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열흘 정도 머물 생각으로 평창에 내려왔다. 그사이 밭은 온통 초록으로 뒤덮였다. 작물보다 잡초가 더 무성하게 자랐다. 이 많은 잡초를 어이할까!
잡초로 무성한 우리집 감자밭
관행농을 하는 이웃에서는 제초제를 뿌려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물 수확도 안된단다. 이웃 감자밭에 가보니 고랑에 잡초들이 까맣게 타들어가 죽어있다. 세상에 얼마나 강했으면 저렇게 될까, 저렇게 뿌린 제초제가 잡초에만 영향을 미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편하게 더 많은 수확을 위해 농약 사용은 절대 할 수 없다고 마음을 굳혔다.
제초제로 고랑에 잡초들이 전부 말라버린 이웃집 감자밭
도착한 첫날부터 잡초를 잘라서 멀칭 하기 시작했다. 며칠을 해도 끝이 보이지 않고 그사이 잘라 놓은 잡초는 또 자라기 시작한다. 노동 강도에 몸은 지쳐가고 갈등이 생겼다.
작물을 살릴 것인가 땅을 살릴 것인가. 갈등의 영향은 이웃분들과의 관계에도 있다. 우리가 제거하지 않는 잡초는 이웃 밭에도 씨가 날린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곳과 우리처럼 화학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경우 실질적인 피해는 우리가 겪는다.
현대인이 잘 먹지 못해 병이 생기는 게 아니라 너무 과하게 먹어서 병이 생기는 것처럼 작물도 같은 원리다. 비료로 영양이 풍부해지니 벌레들이 생겨난다. 작물을 헤치는 벌레들을 잡겠다고 이번엔 농약을 살포한다. 그렇게 약을 뿌리면 벌레들은 약을 치지 않는 우리 밭으로 넘어온다. 이 원리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사과농에 성공한 일본의 기무라 아키노리의 책에서 알게 된 정보다.
잡초를 뽑아내지 않고 잘라서 멀칭으로 사용
이웃분들한테 이런 설명을 해봤자 감정만 상할 수 있으니 이런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지금은 비료를 줘야 하고 농약을 뿌려야 한다고 할 때마다 네네 대답만 하고 행동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이웃에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우리의 생각을 얘기해 드려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하루 저녁은 카레를 만들고 다음날은 삼겹살을 준비해 마당에서 이웃분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각을 전달했다. 아랫집 어르신은 30~40평 정도면 모를까 600평 규모의 땅에는 절대 할 수 없다고 하신다.
작물을 키워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면 어르신 말씀이 옳다. 둘이서 지난 일주일 내내 잡초 제거를 하고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덜 해진 온몸으로 느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처음 몇 년간의 고생을 각오하고 우선 관행농으로 죽어간 토양을 살리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 과실수와 식탁에 올라오는 먹거리, 농약이나 화학비료 대신 동반 식물을 키우려 꿈꾸고 있다. 너무 힘들어 잠시 갈등했지만 그렇게 다시금 마음을 굳혔다.
지치지 않으려면 즐겨야 한다. 지난 일주일간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밭에서의 노동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기로 했다. 집 앞으로 펼쳐지는 금당산에 반해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렇게 멋진 금당산의 속살을 보고 싶었지만 지금껏 마음뿐이었다. 산행을 결심한 날 비 예보가 떴다. 비오기 전 밭을 고르고 콩과 옥수수 씨앗을 뿌려야 했기에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일기 예보가 다 맞는 것도 아니니 일단 다녀오자며 산엘 다녀왔다. 다녀와서 씨앗 뿌릴 밭의 잡초를 자르고 고르는 일을 다 마치기도 전에 저녁이 되었다. 온종일 잔뜩 흐리기만 했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비야 내일 오전까지만 참았다 내려다오! 마음으로 빌었다. 다음날 새벽 빗소리에 잠을 깼다. 가뭄에 단비다. 목말랐던 대지가 촉촉하게 젖어들고 작물들은 생기를 찾았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어제 산행이 아니라 밭일을 했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와서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어제 밭일을 마쳤다면 오늘 산엘 못 갔을 테고 그러면 이번에도 또 산행 한번 못하고 돌아가는구나 하는 미련이 남았을 테지. 지난 일에 후회와 미련을 두지 말고 아침에 눈뜨면 그날그날에 충실하며 행복을 찾아야겠다. 촉촉하게 젖어든 초록의 대지와 운무에 휩싸인 앞산을 바라보며 온몸이 욱신 거리는 통증에도 마음은 평화롭다.날씨가 좋았다면 밭에 나가 열심히 일했을 시간! 차분한 빗소리 클래식 음악 삼고 커피 한잔 마시며 책을 읽는 여유로운 휴식은 지금 이 순간 축복받은 오늘의 선물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