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일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

복직을 결심한 7가지 이유

by 킹맘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저의 첫 연재 글입니다.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행복 가득하시고, 많은 응원부탁드립니다.


둘째가 언어발달이 늦었다. 코로나베이비였기도 했고, 둘째 출산 이후 빠른 복직으로 둘째에게 관심을 많이 주지 못했다.


둘째에게 들어가는 자극이 당연히 적기도 했지만
무던하고 순하다고 생각해서 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느 순간 불러도 호명반응도 없고,
눈 맞춤도 잘 되지 않는 것 같고
말도 잘 나오지 않고
말을 삼키는 듯한 발성...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확인해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영유아검사 결과 언어, 인지 발달에서 심화판정을 받았다.
나는 그대로 좌절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가
일인가 자녀인가

그렇게 한 동안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진료를 잡기 바빴다.

대학병원, 장애인센터 언어치료를 예약하고 순번을 기다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언어치료를 더 늦추면 발달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 나는 다시 육아휴직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주 3회 언어치료를 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아버지는 택시운전기사이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하신 아버지는 한 쪽눈이 불편하시다고 하셨다.
은행열매를 만지고 눈을 비빈 후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는 말씀에 나는 단순히 알레르기라고 생각하고 예전에 처방받은 안약을 눈에 넣어주었다.

내일이면 괜찮을 거란 나의 생각과 달리 아버지는 다음 날 더 빨리 퇴근을 하셨다. 한쪽 입도 잘 움직이지 않아 오전에 동네 대학병원을 다녀오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을 불편하게 했던 병명을 듣게 되었다.

"구안와사(안면마비)"


청천벅력같았다. 늘 건강하고, 체력 좋은 아버지였는데...
더군다나 택시운전을 업으로 하는 아버지가 운전대를 잡을 수 없게 되니 하루 벌어먹고사는 우리 집의 생계가 참으로 걱정이 되었다.


나보다 더 많은 걱정과 근심, 두려움으로 하루를 보내는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위로는
"걱정 마, 내가 복직해서 돈 벌러 갈게"라는 말 뿐이었다.




복직은 선택이 아니었다. 아이의 치료도 중요했고, 우리 가족의 생계도 절실했다. 다행히 아이의 언어치료가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 회사로부터 복직 의사를 묻는 전화가 걸려와 나는 생계를 위해 다시 일터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복직일은 3월 24일로 정해졌다.

하지만 복직을 앞두고 큰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우리가 평생 살던 지역을 떠나 타지로 이사를 가야 했다.


고향은 더 이상 미래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들 교육 환경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결국 구미를 떠나, 대구로...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첫째는 9살, 새로운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고

둘째는 5살,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겨야 했다.


특히 둘째 유치원 선택은 정말 고민이 많았다.

언어와 인지 발달이 또래보다 느린 아이였기에 학습 위주의 유치원은 피하고 싶었다.


어쩌면 지금도 학습 결손일지도 모르는데, 무리한 선행은 단 한 번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의 담임 선생님, 원장선생님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고민 중이던 두 곳의 유치원에 대한 고민을 원장선생님께 전했다.


역시나 경험치 만렙 원장선생님답게 나의 고민을 단번에 정리해 주셨다.


"아이들은 앉아서 배우는 것보다 놀이, 경험을 통해 몸으로 체화하는 게 훨씬 중요해요.
지금 고민 중인 유치원이 아이랑 잘 맞을 거예요."


정말 맞는 말이었다. 길을 잃었을 땐,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게 정답이다.

예전에 언어 치료를 받을 때도 그랬다.

유명한 언어치료 센터에 오후 시간은 자리가 없어서 오전 수업이라도 잡아볼까 고민했을 때 원장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오전 언어치료는 비추천이에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어린이집에서 또래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언어 발달엔 훨씬 효과적이에요.
친구들과 함께하는 사회성수업이 아니라
오전에 선생님과 1:1 언어치료 수업을 하는 것이라면 저는 굳이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 한 마디에 고민했던 내 마음이 정리되었다. 명확한 답을 얻었고, 고민하던 시간도 절약됐다.


유치원에 대한 고민은 해결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걱정이 많았다.

새로운 도시, 새로운 직장.

경력은 많지만...

사람도 낯설고

육아휴직 사이 바뀐 회사 시스템도 막막했다.


그리고 정시 퇴근은 가능할까?

아이들 하원은 제시간에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외로워하지 않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복직을 포기하자니 너무 아쉬웠고, 도전하지 않고 미리 물러서는 내 모습도 꼴 보기 싫었다. 하지만 일과 육아를 병행할 자신도 없었다. 엄마라는 자리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결국 나는 회사에 복직 의사를 무려 두 번이나 번복했다. 회사도 상사도 나에게 엄청 실망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믿고 결정해 주셨는데 복직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복직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회사에 전했다.


타지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낯선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고 싶었다. 퇴근이 늦어져 아이들이 엄마를 기다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은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늘 응원해 주셨다. 하지만 새로 전학 간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까지 내가 곁에 있어 주는 게 가장 든든할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는 주말부부이기 때문이다. 당시 아이 남편은 제주도에 있었다.


그런데 복직 거절 의사를 전했음에도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나의 상황을 이해하며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시간을 준 것이다. 인력이 급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를 믿고 연락해 준 회사에 고마움이 생겼다.


그 순간 나는, 누군가가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믿고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느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내가 지난 1년 반의 휴직 동안 품어왔던 수많은 생각들을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난 1년 반의 육아휴직 시간을 돌아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다시 일터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1. 경력 단절에 대한 아쉬움 – 몇 년 뒤 돌아보았을 때, ‘그때 이어갔다면…’이라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2. 경제적 필요 – 외벌이로도 살 수는 있지만 여윳돈이 없었다. 저축이 힘들어지고, 양가 부모님을 챙기기에도 부담이 컸다. "효도에도 돈이 필요하다..."


3. 아이들의 독립심 – 하루 종일 붙어 있다고 더 잘 키우는 건 아니었다. 초등 1학년만 되어도 혼자 등하교가 가능하고, 어려운 순간을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길러야 했다.


4. 시간의 효율성 – 전업 주부로 지낼 경우 하루 3시간 정도 시간이 더 주어졌다. 그 시간을 집에서 보내든 일터에서 보내든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5. 본보기로서의 엄마 – 열심히 살아가는 내 모습이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과서가 될 거라 믿었다.


6. 도전 정신 –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면 된다.


7. 안정적인 수입 – 투자나 다른 수입원이 없는 지금, 월급은 우리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렇게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내 삶의 다음 장을 열기 위해.

나는 복직을 선택했다.


가만히 있는다고 고민이 해결되진 않는다.

사람의 뇌는 본능적으로 불안정한 변화를 싫어한다.

그렇기에 때론 환경을 먼저 바꾸고, 맞춰나가는 도전정신도 필요하다.


복직을 결심한 나.

정시 퇴근을 꿈꾸며

눈 뜨는 아침 순간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내 시간을 설계하기로 했다!


"한 번 해보는 거야. 나는 잘할 수 있다. 불가능은 없어."

그렇게 내 마음에 주문을 걸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