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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박정미, <0원으로 사는 삶>을 읽고

by 빈땅

제천에서 농촌 마을운동을 이끌고 계신 한 분의 페이스북을 팔로우하다 알게 된 책, 박정미 님의 <0원으로 사는 삶>. 평소 좋아하던 류의 책이라 재미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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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여군 장교이기도 했던 저자는 해외 취업에 성공해 영국으로 간다. 하지만 곧 직장에서 해고되고, 물가가 높기로 소문난 런던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면서 우연히 '돈 없이 살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게 되고, 영국을 시작으로 '0원 살이 프로젝트'에 돌입. 유럽 여기저기를 떠돌며 대안적인 삶을 지향하는 커뮤니티를 경험하게 되는데...


저자는 말한다.

사는 것이 참 좋다.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충만한 삶을 살았지만, 남은 삶도 모조리 다 즐겁게 살아내고 싶다.


대한민국에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예전에 <오래된 미래>란 책을 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라는 분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잠시 뵌 적이 있는데, 그녀는 당시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도시와 컴퓨터를 떠나 시골로 이주해 소규모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야말로 자기가 알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이 분의 말이 종종 생각나는데, 박정미 님의 깨달음도 어쩌면 이것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사실 원하는 것을 포기하면 삶에서 정말 필요한 건 그렇게 많지 않다. 거기에 자급자족과 생활 기술이 더해지면 생활비도 크게 낮출 수 있고.


하지만 생각과 실천, 그리고 현실은 다른 법. 아직 나는 거기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랜 고민 끝에 지방으로 내려왔으나 여전히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고, 여전히 컴퓨터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마다 처해진 상황에도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으로 가는 길에 정해진 답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젊은 날 등골이 빠지도록 고생하며 돈을 모아서 나중에 언젠가 이런 삶을 누르겠노라고 꿈꾼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꿈같은 삶'은 그저 꿈으로만 끝난다. 삶의 풍요와 여유는 돈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언젠가 오겠지' 하고 기다리기만 한다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꿈같은 삶은 오직 '지금'에 사는 자, '가난'을 축복으로 삼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가난'하게 살고 싶다는 건 아니다. '얼마가 있어야 충분한가'에 있어 생각에 차이가 있을 뿐. 돈이 생기는 것 또한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한 말처럼 죽은 물고기가 되고 싶지는 않다. 저자처럼 나 또한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 살되, 그 안에서 나만의 자유롭고 위엄 있는 방식을 찾아 살고 싶다.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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