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틈 May 24. 2023

아이와 함께 막춤을

feat. Beyond the blue horizon



신혼을 즐길 틈도 없이 첫째를 임신했다.

노래를 틀면 트는 대로 복도로 흘러나가는 중문 없는 반전세집에서 아이를 맞이했고,

시간만 나면 아이와 올드팝송을 듣곤 했다.


막춤과 함께.





자동차 시트 가죽냄새만 맡으면 멀미를 할 정도로 비위가 약했던 어린 시절, 장거리 여행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였다. 일, 창문을 연다. 이, 내가 차에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차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시원한 공기가 콧구멍을 쑤시니 답답한 차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일 번을 했으니 이제 이 번을 할 차례다.


"엄마, 나 그 노래 틀어줘."


초등이지만 올드팝송을 즐겨 들었다. 부모님과 여행길에 자주 들었던 음악이라 익숙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실력이었다. 하지만 당시 방영 중이던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 파도가 철썩 칠 때면 "그 음악"이 흘러나오곤 했던지라 Intro만 나와도 그저 시원하고 기분 좋았다. 이 네모난 공간에서 헛구역질하지 않으려면 지금 그 영덕 앞바다로 뛰어들어야 했다.


"엄마, 빨리! 차례대로 말고 딱 그 노래부터 틀어줘!"







엄마가 되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생기니 '집 밖은 위험해'가 되었다. 거기다 해외출장 한 달을 선물로 안겨주고 떠난 남편 덕에 날 좋은 봄에도 집구석에 박혀있어야 했다. 라디오 사연을 들으며 아이와 거실에 누웠다. 봄 바다로 떠난 가족들, 기분이 좋아 추억도 만들 겸 사연으로 음악을 신청했단다. 갑자기 빨려 들어가듯 멀미 나는 차에서 바다를 상상하며 들었던 그 음악을 떠올렸다. 이 집에서 나가지 못하면 이동 중인 차에 있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일까. 나는 지금 아이와 단둘이 바다로 가는 차에 있는 것이다. 아주 큰 차.


노래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초록창을 켰다. '그대 그리고 나 OST' Enter.


오, 이거 다! 제목 아래 "가사"도 보인다. 그렇지, 나 옛날에는 가사도 모르고 흥얼거렸지.

 

Beyond the blue horizon waits a beautiful day.

푸른 수평선 저편에 아름다운 날이 기다리고 있어요.

Goodbye to things that bore me.

지루하던 일들은 이젠 안녕

Joy is waiting for me

기쁨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죠.

I see the new horizon

나는 새로운 수평선을 보았죠.

My life has only begun beyond the blue horizon lies the rising sun.

나의 삶은 그 푸른 수평선위로 태양이 뜨자 시작되었죠.

(출처 : 네이버 뮤직)


가사를 보며 따라 부르는데 가슴 한 구석 어딘가 뜨거움을 느꼈다. 지금 아기를 데리고 바다로 가는 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하지만 갈 수 없었다. 아기를 안았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춤을 췄다. 아이를 안고 밀려오는 파도에 젖은 모래를 사뿐사뿐 거닐 듯 스텝을 밟았다. 아이는 살금살금 흔들리는 엄마의 품이 편안한지 연신 까르르 소리를 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아이를 보는 나도 웃고, 나를 보는 아이도 웃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오후에는 올드팝송과 춤이 자리 잡았다. 걸음마도 떼지 않은 아이와 추는 춤이 근사한 왈츠라도 되는 냥 분위기에 취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택견이 따로 없다. 앞뒤로 스텝을 밟아가며 덩실덩실 몸치라고 동네방네 소문 낼 기세였다. 아마 어릴 적 전국노래자랑 시작과 함께 걸레질도 멈추고 덩실거리던 우리 할머니에게서 배운 춤실력이 아닐까 싶다. 그런 시간이 하나 둘 쌓여 이제 내가 안고 흔들지 않아도 알아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엄마와 함께 <Moon River>, <Singing in the rain>,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등을 즐겨 듣는 멋진 아이들 말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띤다. 그리고 다시 노래를 튼다. 하지만 이제는 집 안에서는 아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영덕 강구항이다.


P.S. : 상체만 흔들며 춤추려니... 좀 힘들긴 하다. ㅎ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You mean everything to m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