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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May 04. 2024

4분상식| 팔레스타인인은 누구? 아랍인하고 차이는?

제가 1921년에 이스라엘 (땅)으로 왔을 때 팔레스타인인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팔레스타인 국가를 가진 독립적인 팔레스타인 민족이 언제 존재했나요? ...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을 팔레스타인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팔레스타인 민족이 있었는데 우리가 와서 그들을 쫓아내고 땅을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369쪽)


이스라엘의 제4대 총리 골다 메이어가 한 말로, 오늘날까지도 친이스라엘계에서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관입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나 정답은 아닙니다. 팔레스타인 인구의 변천사부터 살펴보며 공부해 봅시다.


1. 팔레스타인의 인구 변천사


고대 팔레스타인에는 다양한 토착 집단이 어우러져 살았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들을 포괄적으로 가나안 부족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이외에도 이주민 집단으로 묘사되는 고대 이스라엘인이나 블레셋 등도 사실은 토착 집단입니다. 이들은 기원전 6세기경에 외세의 침공으로 모두 멸망하게 됩니다.


기원전 2세기에 유대인들은 하스모니안 왕국을 건국합니다. 하스모니안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정복했고, 주민들을 유대교로 강제개종시켰습니다. 그러나 겨우 반세기 만에 로마에 항복합니다. 강제개종 당했던 주민들 중 일부는 원래의 종교(=다신교)를 되찾았고, 일부는 유대교 신자로 남아 유대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학자들은 보통 종교에 따라서 팔레스타인의 인구를 분류합니다.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의 지배가 시작될 무렵에 팔레스타인 인구는 다신교도와 유대인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러다 로마가 4세기에 기독교를 국교로 삼자 박해를 피하고 세금 감면 등의 특권을 위해서나 포교(+일부 강제개종)의 영향으로 기독교 개종자가 급격히 늘어납니다. 유럽에서 온 이주자가 늘어난 것도 기독교 인구의 증가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 결과, 7세기 무렵에는 기독교도가 다수 인구가 되거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7세기부터는 무슬림 왕조의 지배가 시작됩니다. 중간에 십자군 시기를 제외하고 20세기 초까지 약 1천2백 년 동안 많은 주민들이 주로 세금을 적게 내고 박해를 피하려 이슬람으로 점진적으로 개종했고, 빠르면 11세기 늦으면 13세기경에 이르러서야 무슬림이 다수인구가 됩니다. 19세기 말경에 팔레스타인 인구의 약 85%는 무슬림, 10%는 기독교, 나머지 5%는 유대인이었습니다.


2. 아랍인으로서의 팔레스타인인


아랍인들은 원래 아라비아반도에서 사는 사람들, 특히 유목을 하던 베두인을 의미했습니다. 아라비아반도가 대부분 사막지대이다 보니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아랍 인구는 무려 5억 명에 달하고,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지역 곳곳과 북아프리카 일대에 널리 걸쳐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7세기에 아랍 무슬림들이 아라비아반도 너머를 침략해 팔레스타인과 다른 여러 지역을 정복하자, 이곳의 주민들은 지배 집단의 언어이자 이슬람 경전 꾸란에 사용된 언어인 아랍어를 모국어로 받아들입니다. 또한, 아랍인과 어울려 살며 문화적 특징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아랍인의 정의는 아랍어라는 언어를 중심으로 여러 문화적 특징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변하게 됩니다.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은 종교와는 무관합니다. 그래서 이슬람 시기 이전부터 아랍인에는 다신교도, 기독교도 등이 포함되었고, 이슬람 발원 이후에도 기독교도를 포함했습니다. 다만, 중세 중기 이후로 대부분의 아랍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자 아랍인은 때때로 무슬림만을 의미하는 용어로 한정되어 사용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일반적으로 아랍인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나, 기독교와는 달리 자신들만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비교적 독립적인 공동체를 구축했던 게 주요 원인입니다.


중세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을 제외한 팔레스타인의 주민들은 무슬림과 기독교도, 또는 이 둘을 합쳐서 아랍인으로 불렸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정체성은 오직 19세기 말부터 발견됩니다.


3. 토착민으로서의 팔레스타인인


19세기 이전까지 아랍인은 공동체로서 결집된 성격이 약했습니다. 혈연적 특성을 매개로 한 정체성이 아니다 보니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그래서 단일한 집단적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못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아랍인 간의 싸움이 잦았습니다. 특히 베두인이라 불리는 아랍 유목민들은 도시나 마을에 정착해 사는 아랍 주민을 빈번히 약탈했습니다.


그러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부터 여러 아랍 지식인들이 유럽으로부터 전해진 민족주의를 받아들여 공동체의 결집을 시도합니다. 그들은 유럽이 급격하게 발전한 배경에 민족주의가 있다고 믿었고, 유럽 열강의 식민 지배의 위협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아랍 지역을 민족주의로 통합해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1차 세계대전 메카의 지도자 후세인이 이끄는 아랍 독립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팔레스타인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비슷한 시기에 출현했습니다. 19세기 말에 팔레스타인은 아랍 무슬림과 아랍 기독교도, 그리고 아랍 유대인들이 대체로 평화롭게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럽 유대인들이 유대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침략해 옵니다.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의 지식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의 토착민이자 주인인 '팔레스타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즉, 팔레스타인인은 예로부터 팔레스타인에서 정착해 살아온 토착민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고대의 가나안인이나 유대인, 블레셋인 등을 시작으로 로마와 십자군 시기의 유럽 이주자들과 아라비아 반도에서 온 아랍 이주자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19세기말을 기점으로 팔레스타인인에서 제외된 집단은 1880년대 이후에 이주해 온 (유럽) 유대인이 유일합니다. 그 이전에 이주해 온 유대인들은 아랍어를 생활언어로 사용하고 아랍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개념은 없었다는 친이스라엘계의 주장과는 달리, 여러 학자들은 20세기가 시작된 직후부터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었음을 문헌으로 밝혀냈습니다.


1913-14년에 대중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상상하지 않았더라도 ...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은 이미 민족의식을 각성했거나 그런 과정에 있었다. 그들은 신문이나 시, 일기, 단체명 등에서 “팔레스타인 땅”, “우리 땅”, “팔레스타인인”, “팔레스타인 주민” 등을 사용하며 향토애를 강조했다. 1908-1914년 사이에 보도된 신문 기사 110개 이상을 분석한 엠마뉴엘 베슈와 재커리 포스터의 최신 연구는 “팔레스타인인”이 약 170번 사용된 것을 발견했다. 또한, “팔레스타인 민족”이나 “팔레스타인의 자손들”도 수십 개가 확인되었다. (정환빈,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370)


팔레스타인인들은 1936년부터 1939년 사이에 영국을 상대로 대규모 항쟁을 일으킵니다. 저항 운동은 전국을 망라했고 남녀노소 모두가 지지하고 또 널리 참여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늦어도 1936년부터는 '팔레스타인 민족주의'가 존재했던 것으로 봅니다. 이때 이후의 팔레스타인인은 오직 아랍인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아랍-유대 간의 민족적 갈등이 심각해진 결과, 어떤 유대인도 아랍인과 같은 공동체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총정리


아랍인 : 아랍어와 아랍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

팔레스타인인 : 팔레스타인 땅의 아랍 토착민. 처음에는 1880년대 이전에 정착한 유대인 포함했으나 나중에 제외됨.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 팔레스타인인은 없었다는 친이스라엘계의 주장은 그 자체로도 틀렸지만, 민족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침략과 정복, 그리고 인종청소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매우 그릇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토착민은 유럽인처럼 민족이 아니었으니 땅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의 식민화를 정당화할 때 유럽인들이 사용하던 논리입니다. 일본의 조선 통치를 유럽인들이 지지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관련해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쓴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제3장 369~374쪽을 읽어봐 주세요. 5월 현재 전국 공공도서관 보급률이 20%니까 대여해서 보시기도 편할 겁니다. 만약 동네 도서관에 없으면 희망도서로 신청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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