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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Apr 28. 2024

3분상식| 블레셋인 = 팔레스타인 사람? 아니에요!

'일부' 기독교 종파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성경에 나오는 블레셋인의 후손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유대인 = 다윗은 선하고, 팔레스타인인 = 블레셋인 = 골리앗은 사악하다거나, 분쟁이 성경시대로부터 5천 년간 이어져 온 거고 그래서 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등의 괴담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블레셋인이라는 해석은 20세기 중후반에야 처음 등장했고, 성경을 현실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생긴 오류입니다. 왜 그런지 유래를 한번 살펴볼까요?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여러 토착 집단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널리 알려진 집단이 고대 이스라엘과 블레셋입니다. 고고학에 따르면, 서안지구 인근이나 요르단 지역의 유목민들이 서안지구 일대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정착한 집단이 고대 이스라엘이고, 블레셋은 지중해 너머에서 이주해 온 소수의 이주민이 가자 지역의 다수 토착민과 결합해 만든 정치체제입니다.


성경은 블레셋을 두고 유대인을 괴롭힌 사악한 집단으로 묘사하지만, 학자들은 정반대로 봅니다. 블레셋은 철기 문명을 가장 빠르게 도입한 선진 문명이었고 토양이 좋아 식량이 풍족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주위 집단을 침략할 이유는 없었고 그러한 증거가 발견되지도 않았습니다.


반면, 척박한 산악지대에 자리 잡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식량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을 침략하고 약탈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러나 청동기 문명으로 뒤처져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을 테고 이 때문에 성경에서 대항마로 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즉, 성경과는 달리 실제 역사에서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땅의 주인공 같은 게 아니었고, 위상도 매우 낮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블레셋이란 이름이 유럽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사용됩니다. 블레셋인들이 해양 무역으로 활약했던 게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블레셋(Peleset)은 그리스어로 필리스티아(Philistia), 로마어로 팔라에스티나(Palaestina)로 전해졌고, 이게 훗날 영어로는 팔레스타인(Palestine)으로 표기됩니다.


세간에는 팔레스타인 땅이 원래 유대라고 불렸는데 기원후 2세기에 로마가 팔레스타인으로 바꾸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 인물인 아리스토텔레스가 팔레스타인의 내륙지방을 필리스티아로 부른 기록이 남아 있으므로 팔레스타인이란 지명은 로마 시대보다 훨씬 앞섭니다. 로마는 기원전 1세기에 팔레스타인을 정복했는데 그때 이곳을 지배하던 유대인들이 세운 50년 역사의 하스모니안 왕조였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행정구역명에 '유대'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다 2세기가 지난 뒤 유대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원래 지명인 팔레스타인을 행정구역명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이후로 팔레스타인이란 지명은 오래도록 살아남아 현대에는 국명으로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걸 보고 현대의 기독교도들이 큰 착각을 하게 됩니다. 팔레스타인이 블레셋이니까 팔레스타인인은 그럼 성경의 블레셋인이구나! 라고...


그러나 기원전 6세기에 블레셋을 포함한 모든 팔레스타인의 토착 정치 집단은 멸망했습니다. 이후로 스스로를 블레셋인이라고 부르는 집단은 역사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여러 정치 집단은 서로 동화되었고, 교로 집단을 구분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대나 중세, 근세 유대인들의 기록을 모조리 뒤져봐도 '우리는 블레셋인과 싸우고 있다'거나 '블레셋을 무찔러야 한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현대 유대인들 역시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인들과 고대부터 싸워왔다는 멍청한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친이스라엘계는 1948년 이전까지 팔레스타인인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기록에서도 블레셋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십자군 전쟁 시기에도 블레셋인 죽이러 가자는 소리는 없었습니다. 당시 기독교도들이 팔레스타인인을 부를 때 사용한 이름은 사라센(=아랍 무슬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일부 기독교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 유대인, 팔레스타인인, 너네들은 5천 년간 싸워왔잖아. 이제 좀 그만하지?"

"쟤들은 답도 없어. 5천 년간 싸워왔잖아.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싸울 거야."

"블레셋 놈들이 예나 지금이나 이스라엘 괴롭혀서 그런 거잖아. 저 죽일 놈들"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는 이런 헛소리가 빠르게 퍼지게 된 것은 성경의 신빙성을 높이려는 기획 때문으로 의심됩니다. 어째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이 성경의 제물이 되어 조롱과 비난을 받아야만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기독교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조금만 똑똑해지면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그리고 왜 이스라엘은 이들이 20세기 중반에 만들어졌다고 하는지 알아봅시다. (관련 글 보기 : 4분상식| 팔레스타인인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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